당신이 몰입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by 기운찬

몰입이란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들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라고 한다.


최근 F1 더 무비를 봤다. 주인공 소니는 레이싱을 사랑하는 천생 드라이버인데 그 이유가 중간에 나온다. 소니는 레이싱을 통해 '하늘을 난다'라고 표현한다. 소니가 말하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자유'. 그리고 이 자유의 상태가 아마 '몰입'이지 않을까?



나는 언제 몰입을 경험했을까?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 일에 집중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기억을 더듬거려 보았다.


- 어린 시절 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지었을 때

-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할 때 (온라인 게임, 방탈출, 보드게임 등)

- 미술학원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입시 미술을 할 때

- 디자인 작업이 긍정적 피드백을 받고 잘 풀려나갈 때

- 친구들과 합숙을 하며 전시 준비를 할 때

- 할 일들을 쪼개어 계획하고 하나씩 처리해 나갈 때

- 내가 만든 수식들이 동료들의 업무 환경과 생산성을 높여줄 때

- 오프라인 부트캠프를 다니며 동기들과 함께 개발할 때

-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슬랙봇(또봇)을 개발할 때

- 편안한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

- 공감이 가거나 가슴 뛰는 콘텐츠를 볼 때

- 개발이 뚝딱뚝딱 잘 풀릴 때

- 일기나 독서를 하며 나 자신과 대화할 때


당장 떠오른 기억은 이 정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고 작은 몰입을 자주 경험하는 편인 것 같다.


이런 몰입 경험들의 맥락을 살펴보고 공통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명확한 목표와 규칙이 존재할 때


나는 목표와 규칙이 명확할 때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레고 블록의 경우 제한된 블록 수가 있었다. 단순히 설명서대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블록을 가지고 내가 상상하는 것을 조립할 때 몰입할 수 있었다. 게임과 입시 미술, 디자인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디자인의 경우 실무를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평가 기준이 모호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합숙, 부트캠프, 계획을 처리해 나가는 활동들도 마찬가지다. 목표와 규칙이 있고(여기서 규칙은 어느 정도의 틀이나 범위를 말한다. 오해가 없기를, 나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 안에서 내게 권한이 주어지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때 나는 그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2.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추구할 때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을 느낄 때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입시 미술과 디자인 작업, 전시 준비와 부트캠프, 심지어는 대화나 개발, 일기, 독서를 할 때에도 도전과 성장을 느낀다. 대부분의 활동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드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기존의 나를, 상식이라고 여기던 생각들을 부수고 더 나은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나의 최애 애니는 블루록이다. 블루록은 축구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인데 나는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주인공 이사기 요이치에게 푹 빠져 최애 애니로 선정했다. 이사기 요이치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평범한 스트라이커이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적응하는 능력'이다.


적응력은 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능력이다. 하지만 적응력의 무서운 점은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블루록에서는 퍼즐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이사기 요이치가 계속해서 무너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무너진 퍼즐조각들을 다시 새롭게 맞추며 이사기 요이치는 전에 없던 자신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적응력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더 나아지는 변화 속에서 몰입을 느낀다.



3.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을 때


게임이나 입시 미술, 할 일 처리 등은 모두 빠른 피드백을 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의 수준과 위치를 금방 인지하고 빠르게 수정이 가능했다. 나는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 몰입을 깬다고 생각한다. 의문이 들었다면 혼자서 끙끙댈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피드백은 그런 의문점에 해답을 제시해 준다. 몰입이 깨지는 걸 막아주고 바로 다음으로 이어지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런 공백을 줄이는 것이 몰입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개발을 좋아하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개발은 디자인과 다르게 피드백이 매우 빠르고 명확하다. 특히 코딩의 경우 초 단위 피드백을 제공한다. 내가 코드를 잘못 짰다면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테스트 코드를 사랑한다)



4. 결과보단 의미와 연결을 우선 할 때


외적 동기가 커지면 오히려 동력을 잃고 몰입이 깨진다. 예를 들어 스스로 잘하고 있던 일도 돈을 받고 책임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나 하기가 싫어진다. 순수한 기쁨으로 움직이던 내가 돈이라는 요소로 움직이는 나를 보며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돈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건 적절한 답이 아니다. 나는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의 균형을 맞추고 함께 가져가는 방법, 나아가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를 조화시켜 동기를 더 강화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내가 몰입했던 순간들을 다시 살펴봐도 결과나 외적 동기와는 관련이 적다. 설령 관련이 있더라도 모두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때 일어났다. 내적 동기는 필수이지만 외적 동기는 선택이다.


그러니 몰입을 더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나만의 내적 동기, 의미를 가지는데 더 우선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으려면 앞서 1번과 2번처럼 목표와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방금 과정을 즐겨야 한다면서 왜 목표를 말하냐고? 목표는 수단이다. 지금 이 순간의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수단. 나는 그 일을 왜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공감할 수 있어야 몰입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 중에는 연결도 있다. 내 몰입의 순간들을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타인과 함께, 타인을 돕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고, 일기와 독서조차도 나 자신과 대화를 하며 몰입을 한다. 이처럼 나는 연결과 교류의 과정에서 의미를 얻는다.



5. 공동의 목표를 통해 시너지를 얻을 때


입시 미술, 합숙, 부트캠프, 동료들의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작업은 모두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주는 고양감이 있다. 부트캠프 첫날의 그 떨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직장 동료들이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그때는 두근거림이 반년 이상 지속되었다. 일이 너무 행복했고 주 52시간 제한이 야속할 정도록 일에 몰입했다.


단순히 상대를 돕고 타인과 함께 한다라는 것만으로 몰입이 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시너지가 나느냐이다.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상대도 나도 모두 윈윈을 할 수 있을 때, 그런 확신을 가질 때 내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번외로, 흔히 동료를 도우면 내 일을 그만큼 못하니 성과도 줄고 손해가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정반대다. 방법이 올바르다면 동료를 도울수록 내 성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동료들의 성과 총합이 내 성과가 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정말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은 자기 일만 하지 않는다. 동료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어떻게 동료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6. 잃을 게 없다고 느낄 때 (무조건 더 나아질 때)


이것은 위의 나열된 경험들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면 모든 경우가 잃을 게 없는, 무조건 더 나아진다는 확신이 있던 순간이었다.


부트캠프를 처음 상담했을 때였다. 매니저분의 한마디가 이후 몇 개월간 몰입을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그 한마디는 '개발자로 무조건 커리어 전환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었다. 지금이야 좀 의심이 들법한 말이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개발자 붐이 꺼지기 전이었기에 그 한마디만으로 반년 넘게 나를 괴롭히던 의심이 사라졌다. 설령 그것이 빈말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말 한마디 덕분에 걱정 근심 없이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반대의 상황을 떠올려봐도 마찬가지다. 내가 심한 좌절과 무기력을 겪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에는 온통 머릿속에 잃은 것, 잃고 있는 것, 앞으로 잃을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태였다. 무엇을 해야 나아질지, 그것을 정말 해도 되는지, 또다시 실패하는 것은 아닌지.. 손실 회피 편향과 자기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때에는 아주 작은 무언가조차도 몰입하지 못한다.



몰입 패턴


위에서 나의 6가지 몰입 패턴을 분석하고 정의했다.

이러한 패턴들이 내가 경험한 몰입의 순간들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래는 그 결과표이다.

Monosnap 몰입의 순간들 - Google Sheets 2025-08-12 20-56-33.png


표로 정리하고 나서 가장 놀랐던 점은 내가 생각했던 행복한 순간들과 순서까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몰입의 패턴이 얼마나 일치하냐에 따라 그 행동의 행복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이 깨달음은 의도치 않은 수확이었다. 몰입과 행복은 비례한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내 삶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참고로 나는 이 글을 통해 몰입의 순간들을 덩어리로 묶어 패턴을 뽑아내는 작업을 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몰입의 순간들(특정 시간의 특정 작업)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설명을 조금 더 해보겠다.

몰입의 지속기간을 '6개월', '2개월'처럼 긴 기간으로 표현한 이유는, 그 기간 동안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24시간 매 순간 몰입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 기대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몰입이 일상화된 날들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몰입의 지속기간을 '간헐적'으로 표현한 것은 그 일을 할 때에는 몰입이 일어났지만 매일 혹은 특정기간만큼 연속적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강렬한 몰입을 경험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그 기간이 짧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어 있으며 재현 난이도도 높다.






몰입 설계


나의 몰입 패턴을 알았으니 이제는 다시 몰입할 시간이다.

내가 앞으로 몰입을 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목표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테마 시각화 작업이 이 역할을 해줄 거라 기대한다. 2025년 테마와 가슴 뛰는 목표를 설정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삶의 방향을 잡고 가장 효과적인 옵션들만 추리고 있다.

Monosnap 분기 회고&목표 세우기 – FigJam 2025-08-12 23-26-37.png 2025년 테마와 그에 따른 목표를 시각화한 모습이다


몰입을 유지하려면? 목표와 액션을 늘리기보단 오히려 줄여야 한다. 각각의 목표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연결하고 효과가 낮은 목표들은 제거하자.



두 번째는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해야 한다. 기존의 나를 유지하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지속할 것. 물론 그냥 시도만 해서는 안된다. 액션을 통해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나를 바꾸지 않는 액션은 하지 말 것.


몰입을 유지하려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을 하더라도 약간의 변화를 주자.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고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확인하자.



세 번째는 피드백을 통해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모호하다면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사용자 피드백과 데이터 수집, 내 감정과 강박까지 들여다보자. 그러한 신호가 나를 다음 행동으로 이끌 것이다.


몰입을 유지하려면?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가장 중요한 신호는 감정이다. 내 감정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그 정보에 귀를 기울이자.



네 번째는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이기심과 이타심을 모두 갖는 것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상호보완 관계이다. 이기적일 때 더 이타적일 수 있고, 이타적일 때 더 이기적일 수 있다. 나와 상대 모두가 이익이 될 때 그 일의 의미와 연결은 더욱더 단단해진다.


몰입을 유지하려면? 나를 희생하여 남을 도우면 안 된다. 내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다. 함께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실행에 옮겨라.



다섯 번째는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가장 난이도가 어렵다. 나는 1인 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혼자 일을 한다. 하지만 1인 개발이라고 꼭 혼자서만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인 사업가들은 공식적으로 속한 조직이 없을 뿐이지 오히려 더 자유롭고 열정적인 팀을 꾸릴 수 있다. 당장은 그런 팀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이런 팀을 만드는 게 나의 꿈이다.


대신 지금은 느슨한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모임도, 스크럼 모임도 그런 의미에서 나의 몰입을 도와주는 안전지대다.


몰입을 유지하려면? 관계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외로움은 시야를 좁히고 특정 관계에 매몰되게 만든다.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몰입할 대상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대상을 관계가 아닌 것으로 바꾸어라. 물론 목표와 규칙 내에서.



여섯 번째는 내가 점점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잃을게 많을수록 걱정과 두려움은 커진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 나이에 비해 책임질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점을 상기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5년 후, 10년 후의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겠는가?


무엇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더 나아지게 만들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인드 셋과 실질적인 근거를 수집해야 한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베스트이다)


몰입을 유지하려면? 막연하게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안된다'가 기본 값이고 안되었을 때 어떻게 시도할까를 대비해 두어야 한다. 비즈니스는 불확실성이 크다. 그렇기에 불확실성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들어오는 정보를 줄이고 범위를 좁혀야 한다. 목표와 규칙이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내가 경험한 몰입을 바탕으로 패턴을 분석하고 앞으로 적용하기 위한 규칙까지 정리를 해보았다. 그전에는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보다 명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 여섯 가지 항목들을 기반으로 내가 하려는 일들을 점검해 보자. 이미 잘 지키고 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아닌 것이 많다면 오히려 좋다!


자, 나를 부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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