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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Sep 04. 2019

'친구가 필요한가요? 지금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레이첼 보츠먼의 [신뢰 이동]을 읽고

자동 친구 생성 서비스 '앤드닷'


'친구가 필요한가요? 지금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자동 친구 생성 서비스 '앤드닷'의 슬로건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sns 계정으로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개인의 sns 활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향, 거리, 평판 등을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최적의 친구를 만들어 준다. 여기서 만들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친구를 소개하거나 추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챗봇 같은 ai는 더더욱 아니다.) 서비스 약관에 동의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놀랍게도 내 스마트폰에 상대의 연락처가 저장되고 관계 형성에 필요한 서로의 정보들이 양측에 제공된다. 심지어는 서로의 스케줄을 분석하여 적절한 시간에 서로가 만족할 만한 장소로 오프라인 약속까지 잡아준다.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초만에 이루어진다. 사용자는 그저 이 서비스를 신뢰하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설령 그 친구가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더 이상 '친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까?' 혹은 '그 친구가 나와 잘 맞을까?'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앤드닷을 이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친밀한 관계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아니 만들어 준다! 앤드닷의 CEO 오스카 아일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서비스 범위를 친구에서 연인, 반려동물, 더 나아가 배우자, 입양과 같은 가족관계로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외로움'이 지구 상에서 듣기 힘든 단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모든 게 '기술의 발달'과 '무한한 신뢰'로 이루어낸 값진 결과다.




자동 친구 생성 서비스 '앤드닷'은 내가 지어낸 가상의 서비스다. 왠지 그럴싸해 보이지 않은가? 우리가 '기술'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얄궂게도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우리가 너무 빠르고 쉽게 믿어버린다는 데 있다.
[신뢰 이동] p161


책 [신뢰 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친구와 가족과 낯선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온라인 다리를 설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신뢰 기술자'라 지칭한다. 그들은 우리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지도 모르는 지점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이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우버나 틴더 같은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자들을 우리가 지나치게 신뢰하는 나머지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까지 믿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2012년 코넬 대학교와 크레이머의 페이스북 연구팀이 공동으로 '감정 전염'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방법은 일주일간 페이스북 알고리즘을 수정하여 무작위로 선정된 68만 9,003명의 뉴스피드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페이스북 이용자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에 상관없이 이 연구방법은 큰 논란을 불러왔다. 많은 사람들이 실험쥐 취급을 당했다는 불쾌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받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저 주변 친구들이 어떤 내용을 올리든 페이스북 시스템에서 당장 공유해주는 줄 알았다는 얘기다.


페이스북 이용자의 절반 가까이가 자신이 접하는 뉴스의 일부를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통해 전달받는다. 이것은 페이스북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 모두가 한 명의 유권자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는 나라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디지털 꼭두각시놀음에서 조종하는 사람, 곧 신뢰 기술자들이 우리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조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을 통제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신뢰 이동] p168


자동 친구 생성 서비스 앤드닷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손쉽게 만드는 기술은 매우 편리하다. 하지만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또 어떻게 수정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관계'가 전혀 다르게 바뀐다. 예를 들어 내가 평판을 높이지 못하면 난 더 나은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 내 성향이 남들과 유달리 다르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친구들을 사귈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싸가 되기 위해 남들과 비슷한 성향, 가까운 거리, 높은 평판을 갖기 위한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앤드닷이 어떤 의도로 내게 나쁜 친구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서비스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이용자라면 나쁜 친구로부터 받는 고통마저 나 자신의 문제로 돌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신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책 [신뢰 이동]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질문의 해답을 찾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 오류가 전혀 없는 시스템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신뢰를 판단하는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알고리즘', '발전된 기술', '권위자 혹은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길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직접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의심과 신뢰의 스펙트럼>, 판단은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우리는 '의심과 신뢰라는 스펙트럼' 안에서 대상을 판단한다. 이는 곧 의심 없는 신뢰는 존재할 수 없고 신뢰 없는 의심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신뢰와 의심은 빛과 그림자 같은 것이다.


미래에 등장할지 모르는 앤드닷, 앞으로 다가올 자율주행차, 그리고 현재 보고 듣는 각종 미디어들까지, 우리는 의심하고 있는가? 의심함으로써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한한 신뢰'라는 이름으로 판단을 외부에 맡긴 채 그들에게 복종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복종이 효율적이고 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레이첼 보츠먼은 신뢰 휴지(trust pause)를 통해 '잠시 차분히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신뢰 휴지의 순간에 우리는 판단을 보류하고 대상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렇게 '분석한 결과로 대상을 신뢰하는 습관'은 우리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도와주는, 소박하지만 강력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체인지그라운드 #씽큐베이션 #신뢰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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