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진정한 자유란..

by 책사이

<그리스인 조르바> ㅡ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이윤기 역


고전을 좋아는 하나 읽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외국 고전 소설들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이방인, 자기앞의 생,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안나 카레니나, 호밀밭의 파수꾼,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올리버 트위스트,데미안 등

분명 젊은 날에 분석했던 소설들임에도 불구하고 감흥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거나

그 중엔 제대로 읽기를 여러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소설들도 있다.


요즘 미친듯이 책을 읽으면서 한 권씩 다시 도전하고 있다.

어느 정도 삶의 시련을 겪고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무조건 기록하는 습관 때문일까.

재도전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 와닿는 부분도 많고..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놀랍게도 재미있게 읽혔다.


60대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조르바의 거침없는 원초적인 대사들에서 시원스런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소위 '책벌레'또는'먹물'로 칭해지는 '나'가 조르바를 만나면서 변화되는 모습에서 뜨끔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끄적거린 내용들

처음~p84

위험에 처한 수천만 동포를 함께 가서 구하자는 친구,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라고 설교했던 나.

친구의 '안녕, 이 책벌레야!'

내 내부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며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다.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자리.

나는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겨드랑이에 산투르를 낀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냉소적이며 불길같이 섬뜩하고 강렬한 시선.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한 영감.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나'가 조르바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품는 의문들과 사유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 무엇이 맞을까.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물, 여자, 별, 빵이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강인했기 때문에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그를 나는 존경했다.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조르바의 시원스런 대사들ㅡ

"시덥잖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임금이니, 민주주의니, 국민 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거니까 하는 소리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 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웃겨. 자유라니!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니."


"나는 아무도,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p94~p211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풀어낸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르고 있는지도, 우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 거예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당신 책을 한 무더기 쌓아 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이 바보를 면할지.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시편들이 그날 아침에는 느닷없이 지적인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문명의 사양[斜陽]은 그렇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p 447 끝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르바의 춤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했다. 나는 조르바의 인내와 그 날램, 긍지에 찬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기민하고 맹렬한 스텝은 모래 위에다 인간의 신들린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요, 조르바. 당신 덕택이에요.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 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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