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사랑도 여전히 진행중
<이터널 선샤인>
원제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미셸 공드리 감독과 찰리 카우프만 각본가의 궁합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터널 선샤인>.
우리나라 개봉 시기는 2005년 11월.
10주년 기념으로 2015 년 11월 재개봉.
러닝 타임 90분 남짓의 멜로 영화.
멜로와 SF의 조합이 이토록 개성적이고 아날로그적일 수 있을까.
개봉 당시에도 재개봉 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영화이니만큼 이미 빛나는 후기들이 많다.
그럼에도 난 이제야 쓴다.
오래 전에 봤지만 또 보고 나서의 감회를 쓰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난 이 영화를 얼마전에서야 봤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 말라버린 탓일까.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잠갔다.
멜로 영화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새드엔딩이건 해피엔딩이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울고 웃으며 공감하다가도 내 현실로 돌아오면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혀 영화같지 않음을 절감하기에.
마음을 비우고 봤다.
이성간의 사랑에 관해 내가 감히 무어라 얘기할수 있을까.
사랑의 감정에는 취약하지만 남들과 조금은 다른 감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 톰 윌킨슨, 제인 아담스..낯익은 배우들이 출현한다.
짐 캐리의 진지한 감정 연기에 서서히 빠져든다.
자꾸 눈앞에 나타나는 그녀.
왠지 자꾸만 끌리는 그.
우연일까 필연일까
사랑했던 이가 어느날 갑자기 타인처럼 대한다면?
갑자기가 아닐 것이다.
점진적인 과정을 못 느낀 내 탓이리라.
사랑이 식었거나 다른 누군가가 생겼거나
기억에 이상이 생겼거나..
상처로 얼룩진 아픈 기억을 지우다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오래된 연인. 다툼. 권태로움. 상처.
그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다.
너도 지웠으니 나도 지운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
책, 사진, 일기장, 그림..
그녀에 관한 모든 기억들을 지워나간다.
최근의 싸우고 헤어진 안 좋은 기억부터
사랑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우고 싶은 마음 vs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지울수록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나는 사랑의 기억들.
사랑했던 기억이 하나하나 지워질수록
이별의 순간보다 더 아프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기억의 저편에 그녀와의 기억을 숨긴다.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포스터에 적힌 카피처럼
기억은 지워졌어도 무의식적으로 다시 그 사랑에 반응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묻혀 지나칠 뻔한 매리의 사연.
개인적으로 그녀의 사랑이 더욱 안쓰럽다..
현실로 돌아온다.
사랑에 대한 결론이 나지않아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후기를 적어야하나 말아야하나 며칠간 고민 끝에 적고 있다.
그러다 도달한 결론.
삶도 사랑도 여전히 진행중이며
(이성과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정리가 아닌 과정의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또 권태가 찾아올지도, 싸우고 또 헤어질 수도 있다.(이 영화의 감독판에서는 몇 십 년 후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이 또다시 병원을 찾아가
'기억을 지워달라'고 한다고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음악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벡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
(모두들 언젠가는 배워요)
Change your heart(마음을 바꿔 봐요).
Look around you(당신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Change your heart (마음을 바꿔 봐요.)
It will astound you
(그것이 당신을 놀라게 할 거예요).
I need your loving like the Sunshine
(나는 햇살 같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
(모두들 언젠가는 배워요)
사랑을 배우지 않을 때,
종종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
ㅡ이승우 장편소설 《生의 이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