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터널 안 지독한 생존기
8월 10일 개봉 첫날 보게 된 김성훈 감독, 하정우 주연의 <터널>
밀폐되고 고립된 단 하나의 공간에서 배우 하정우가 2시간여 동안 이끄는 힘이 대단하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장면이나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특유의 진지함 속 냉소적인 유머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부산행>처럼 재난을 소재로 현실을 풍자함과 동시에 <터널>에는 해학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전 영화들 중 제일 충격이었던 <추격자>의 연쇄살인범 역할부터 <국가대표> <범죄와의 전쟁> <더 테러 라이브> <베를린> <암살> 그리고 최근의 <아가씨>까지 내가 본 굵직굵직한 영화들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하정우.
특히 이번 <터널>을 보면서
생중계되는 상황이나 1인 재난 영화라는 점, 하정우 홀로 고립된 상황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더 테러 라이브>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의 첫장면
자동차 영업 대리점 과장인 하정우(정수 역)가 하도 터널 가는 길에 들른 주유소.
주유원 할아버지의 실수로 3만원만 주유하려던 게 full로 주유하게 된다.
3만원만 주유했으면 못 받았을 생수 2병.
그랬다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구조대장 오달수가 몸소 보였던 방법을 처음부터 사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일인 딸의 케이크를 싣고
하도터널을 앞두고
아내와의 통화 이후 고객과 통화 중인 하정우.
터널 위 간판에
'행복가득 안전한 국토건설!'
이 쓰여진 터널 안으로 진입한다.
잠시 후 이를 무색케 하는 재난이 발생한다.
개통된 지 한 달도 안된 터널이 순식간에 처참히 무너져내리는 광경 후 잠깐의 정적.
이어 분진더미에 뒤덮힌 회색빛 얼굴의 그.
제일 먼저 핸드폰을 잡아쥐고 119에 전화한다.
완전히 고립된 급박한 상황에서 들려오는 황당하고 답답한 질문, 그리고 하정우와 관객을 더 어이없게 만드는 한마디.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주세요"
많이 듣던 레파토리에 담긴 현실 풍자
-이내 방송되는 뉴스의 한 장면
"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다시 무너졌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라'는 대통령 말씀..
"대통령님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생존자 단독 전화 연결에 흥분한 기자 왈,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하정우처럼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구조대장 오달수(<암살>에서 하정우와 콤비를 이루었던 그는 이 영화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다.)는 참다 못해 분노의 한마디를 던진다.
지금 방송이 중요합니까?
생명이 중요합니까?
수수한 모습으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터널에 갇힌 남편의 아내 역할을 맡아 준 배우 배두나.
그녀는 남편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동시에 끝내는 사회의 압박에 절망을 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녀가 남편이 갇혀있는 터널에 넋이 나간 상태로 도착했을 때도 초췌한 그녀를 사이에 두고 방송과 정부 관계자들은 사진 찍기 바쁘다.
어처구니 없는 행태
-터널의 실제 공사와 다른 엉망인 설계도면.
-기껏 땅 파놓고 '이 산이 아닌가보다, 철수!'해버리는 식의 무책임함.
나 아직 살아있는데..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하도 제2터널' 공사 문제로 도룡뇽 취급을 받는 생존자.
풍자 속 해학
급박한 상황에도 끝까지 자기네 입장만 생각하고 달려드는 언론 사회 정부 관계자들에게
오달수가 하정우 대신 전하는 속 시원한 한마디ㅡ
'다 ㅇㅇ! xxx들아!"
그를 향한 하정우의 '엄지척'
그런데,
'정부 구조 노력에 엄지 척'이라고 뜨는 방송 자막.
이와 동시에 들리는 개 짖는 소리의 절묘함에
'엄지척'을 들어주고 싶었다.
우리는 통계보다 희망을 믿겠습니다
'나오시는 날 뵙겠습니다.'의 약속을 지키는 오달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는 하정우.
영화 <터널>은 두 배우를 통해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님 바람처럼
무너져내리는 현실 속에서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 추억의 노래
거북이의 '비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