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방송되었던 KBS 스페셜 '앎' 2부
<서진아, 엄마는>의 주인공 김정화씨는 7살 아들을 하나 둔 39세의 엄마였다.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이라 더욱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하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중학교 음악 교사였던 그녀는 직장 생활 중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다.
병이란 놈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녀는 결혼 5년만에 시험관 아기로 아들 서진이를 힘겹게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횡경막 탈장 등 선천적으로 아프게 태어나 4,5년간 병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무엇보다 엄마없이 남겨지게 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녀는 엄마 손이 필요한 초등학교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살고 싶다고..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서진아 엄마는, 서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기뻤고 행복했어.
서진이를 낳은 것이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고 값진 일이야.
서진이 등굣길도 함께 하고, 준비물도 챙겨주고,
모든 엄마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을 엄마도 다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게 되어서 너무 속상해.."
아이가 즐겁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함께 그녀의 아프고 힘겨운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그녀가 첫 항암 치료를 받고 서진이를 부탁한다고 남편에게 얘기했을 때 남편은 편지로 그의 마음을 전했다.
"내 인생의 동반자, 사랑하는 서진이 엄마에게
결혼하면서 변변한 예물도, 변변한 집 한 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작은 집에서 같이 페인트칠 하고 냄새가 심해도 묵묵히 있어주던 당신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되고 감사해하고 있어요. 내가 직장이 정규직이 아니어서, 당신을 힘들게 했던 기억들, 싸움할 때 모진 소리해서 당신 마음에 상처준 일들이 후회되고 미안해요.
서진이 엄마, 힘들고 아프면 내 품에서 안겨 울어.
같이 울어주고 같이 얘기하고 같이 힘들어하자.
내가 약해지면 당신과 서진이를 지킬 수 없기에
이제 나는 절대로 약해질 수 없어.
사랑해요, 여보.
나의 사랑하는 동반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을 같이 이겨내요."
2016년 1월. 대장암 발병 17개월 후 암세포는 뼈로 전이되고 그녀의 유일한 바람은 2, 3년 정도만 버텨주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지금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이에게 아픈 엄마가 아닌 따뜻한 엄마로서의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그녀의 마지막 가족 사진이 되었다..
2016년 7월. 항암치료도 힘든 상황이 되고 그녀는 의사에게서 이제 3개월도 채 안 남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숱한 항암 치료도 꿋꿋하게 버텨왔던 그녀는 어느새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녀는 의사의 말에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여보, 꿈만 같아. 못 믿겠어.."
남겨질 아이가 눈에 밟힌다.
"서진이가 제일 맘에 걸려요.."
그녀는 가족들 곁에서 보내고자 병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엄마를 본 아들은 엄마 얼굴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엄마, 살 빠진 것 같아. 엄마는 살 쪄야되는데. 아빠는 뚱뚱하니까 살 빼야 되고."
그녀가 후회되는 건,
체력이 됐을 때 서진이랑 좀더 놀아줄 걸,
가족이랑 시간 더 많이 보낼 걸..하는 거다.
누워있는 지금은 이렇게 식구들 움직이는 거 바라보는 것도 행복이라고..
남편은 "서진이가 내 인생의 마지막 해야 할 일이니까 걱정 말라"고 서진이를 걱정하는 그녀를 안심시킨다.
그녀와 남편은 서로에게 '나중에 만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가정 호스피스를 받으며 집에서 서진이와 16일을 함께하고 생애 마지막 3일은 호스피스 병원에서 보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가족들이 함께 한다. 아이는 침대에서 마지막 숨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노래를 부른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노래가 끝나고 '엄마, 사랑해' 라고 말하는 서진이, 엄마의 죽음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아이는 이내 아빠와 할머니에게 묻는다.
"아빠, 엄마 어디 가?
할머니, 엄마 얼굴이 너무 깨끗해요."
아이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남긴 그녀의 목소리가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울린다.
서진아, 엄마는 많이 아파서 서진이보다 일찍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어. 서진이랑 떨어져 있지만 엄마는 서진이 곁에서, 마음 속에서, 꿈속에서 함께 있을 거고 늘 응원하고 격려하고 함께 할 거야.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해, 서진아.
서진이 아빠, 날 만나주고 결혼해주고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요.
먼저 하늘나라로 가지만 나중에 다시 만날 걸 알고 있기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랑해, 여보..
친지분께서 엊그제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최근에 찾아뵙지 못한 게 몹시 죄송스럽고 후회됩니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암도 죽음도 더이상 남의 이야기일 수 없습니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낄수록 지금 이 순간이,
내곁에 있는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이
더없이 소중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