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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Feb 25. 2017

나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걸. 영화 <내 심장을 쏴라>

ㅡ  살아가기 힘겨운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밀려오는 무력감과 허무감에 머리가 멍 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읽어두려고 찜해두었던 책도,

보려고 다운 받아놓았던 영화도

눈에 제대로 들어오는 게 없다.

이런 마음으로는 밖에 나가 누굴 만나도 편가 않다.

금요일 저녁인데 어쩌다보니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게 됐다.

평소에 잘 보지도 않는 TV를 틀었다.

뭔가 활력소가 될 만한 영화 없을까.

무료 영화관을 뒤적거렸다.

너무 잔잔한 거 말고, 너무 잔인한 거 말고, 너무 슬픈 거 말고, 단순히 웃긴 거 말고, 남녀 사랑 얘기 말고..

한참 이리저리 고민하다 마침내 <내 심장을 쏴라>(2015)에 리모컨 OK버튼을 쐈다.


오래전부터 이 영화의 원작인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를 먼저 읽어보려 했었는데 《7년의 밤》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음에도 이 책은 몇 페이지 읽지 못한 채 도서관에 반납했었다. 바보..이야기의 진짜 내용을 확인도 못해보고.

하긴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서도 이민기, 여진구

두 젊은 남자 배우에게서 공감이 얼마나 갈까 확신이 없어놓구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길 잘했다는 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반에서 중반 넘어가면서 멈춰버린 것 같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아무 걱정거리 없는 곳이 있을까.'


아무 걱정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고 생각하는 '수명'(여진구).

그가 6년째 지내고 있는 곳은 '수리희망병원'

(정신병원)이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이 곳에서 그는 자신의 성격과 정반대인 '승민'(이민기)을 만난다.

소심한 자와 거침없는 자,

안으로 도망치려는 자 밖으로 도망치려는 자.


수명(여진구)와 승민(이민기)

'승민'이 이 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수명'은 그에게 '미쓰 리'라 불리며 그와 얽히게 되고 병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병원 관리자들은 난동을 부리는 자들에게 여지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폭력으로 제압한다.

환자들 보고 미친 xx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미친 짓은 그자들이 한다.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승민'은 왜이렇게 전화 한통에 목매는 걸까.

'수명'이 머리카락에 목숨 거는 이유는 뭘까.

(알고보니 가위를 무서워해서 머리를 자르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의 트라우마와 공황장애의 이유이기도 한 '지난 날'의 참혹한 사건은 한참 뒤에 나온다)


틈만 나면 탈출을 시도하고,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존재인 승민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다.


"시간이 없어. 그래서 미치겠어"


라던 그의 말이 뒤늦게 이해간다.


그럼에도 승민(이민기)은 유들유들한 눈웃음을 날리고 유머와 활기가 넘친다.


'여기 정신병원 너무 진지해' 라며, 우울한 분위기를 띄우고자 노래하고 트위스트 춤을 추는 장면은 무척 유쾌하다.


"내일 아침 일어날 땐 한결 기분 좋아질거에요."


라는 그의 말대로 내일 아침은 그리 됐으면 좋겠다.


"연기 진짜 괜찮았어?"


그가 수명(여진구)에게 묻는 말에 내가 대신 대답해주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이민기의 연기는 진짜 괜찮았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동갑내기로 나오는 두 사람의 캐미, (실제로는 12살 차이) 브로맨스도 보기 좋았다.

이 영화는 그 어떤 로맨스도 여자 주인공도 없다.

그런데 다 보고 나면 훈훈하다.


둘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승민이 수명에게 묻는다. '대체 누구냐'고.


"숨는 놈, 대충 견디는 놈, 그런 놈들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있기는 하냐."


어쩐지 나한테 묻는 거 같다.


나에게도 '도망치는 병'이 있기에.


세상에서 도망치는 병, 자기한테 도망치는 병..


숨으려만 하고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의 숨통을 승민이 터준다. 폐쇄된 병원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시원스럽게 모터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에 답답했던 내 심장이 두번째로  뚫린다. 그들처럼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심장을 쏴, xx들아!"


그와 함께 긴 머리 휘날리며 환호성을 내지르는 수명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하늘에 있을 땐 내가 진짜 살아있다고 느껴지거든"


크락션을 마음껏 울려대고 철문을 박차고 둘은 또다시 세상 밖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 하는 게 아니야.

내 시간 속에 온전히 나일수 있는 .

그게 나한텐 이야."


병원에서 그저 시간이 흘러가주기만 바랬던 수명에게 그가 말한다.


"니 시간은 이제 니꺼야. 더이상 뺏기지마."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오르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뭉클하다.


수명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날아오를 '활공장滑空場'이 필요하리라.


아직 이렇게 심장이 뛰고 있으니 말이다.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나지만 살아가기 힘겨운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살아갈 기운을 실어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비록 이따금 비가 와서 축축한 땅에 살지만, 항상 안나푸르나의 하늘 같은 꿈을 잊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고 하신 문제용 감독님의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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