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시심(詩心)을 심다
시(詩)를 붙잡아 보겠다고 볕 하나 들지 않는 책상에 앉아 고심(苦心)만 하고 있다
시상(詩想)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고 답답한 속은 이내 울렁거린다
의자를 밀치고 창을 활짝 열어 젖힌다
일순간 기다렸다는 듯 바깥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파란 하늘 아래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뙤약볕을 등지고 묵묵히 서 있다
정자에서 들려오는 할머니들의 도란도란 말소리 사이로 휘오휘오 새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야트막한 산등성의 능선이 굴곡진 마음을 어루만진다
가만 보니 이 세상 만물(萬物)이 다 시(詩)다
어디선가 날아 온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시가 되어 너울거린다.
누렇게 뜬 얼굴을 햇볕에 말리고 다시, 연필을 잡는다
하얀 종이에 시심(詩心)을 심는다
시다운 시를 짓기란, 내겐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작(詩作) 연습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
'새로 쓰는 시는 이전에 쓰여진 시가 낳은 오류에 대한 반성의 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반성을 자꾸 덧칠하는 일이다. 자기 자신이 떨어진 줄도 모르는 꽃잎 위에 또 꽃잎 쌓이듯이.'
ㅡ 안도현 《그런 일》 中 시작 노트 2
라 했으니 매일 한 편의 시로 반성의 꽃을 피우면 그 꽃잎이 쌓이고 쌓여 내 안에, 그리고 누군가의 가슴 속에 거름 되어 작은 꽃 하나 또 피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