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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Aug 28. 2017

책과 꽃을 든 지하철 풍경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지하철에 고단한 몸을 싣는다.

자리에 앉아 혼자 종이책을 꺼내 읽고 있으면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권미선 작가님의 신간 에세이 《아주, 조금 울었다》를 읽다보면

곽재구 시인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가 나온다. 지하철 안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이나 꽃, 둘 중의 하나를 손에 들고 있는데,  그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한 청년이 '책'을 읽고,
그 옆의 아가씨는 '꽃'을 한아름 안고 있고,
한 할머니가 '책'을 읽고,
그 맞은편 아주머니는 '꽃' 한 다발을
무릎에 올려 두고 있는 식이었다.

"꽃 책 꽃 책, 또다시 꽃 책..."

사람들은 꽃향기가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그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꽃과 책 덕분에
피곤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제적인 상황은 팍팍하지만
마음은 견딜 만한 것이라고.

ㅡ 《아주, 조금 울었다》 p.190~191 발췌


상상해본다.


너도 나도 스마트폰이 아닌 책이나 꽃을 들고 있는 풍경을.


간혹 지하철 안에서 책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슬쩍 훔쳐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면서.


무언의 질문을 건넨다.

무슨 책인가요?

그 책 재밌어요?

저는 요즘 이런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스마트폰 액정 위로 무심히 손만 까딱까딱 움직일 뿐이다.

사각 종이책 넘기는 소리와 은은한 꽃향기가 지하철 칸칸이 퍼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맞은 편에서 누군가 읽고 있는 펼쳐진 책 사이에 가을꽃 한 송이 살며시 놓아두는 상상을 하며.

팍팍한 마음을 잠시나마 말랑하고 온화하게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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