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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Apr 27. 2016

《채식주의자》

인간을 껴안는 일

한강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후보에 올라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는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읽다.


이미 10여년 전에 차례대로 발표되었던<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구성된 연작소설,

하나의 책으로 2007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고통스럽게 읽히면서도 생생한 느낌이 너무나도 강인하게 각인돼 선뜻 그 진한 여운을 글로 옮기기 어려워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소설이 이리 강렬하게 와 닿을 수 있다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이나 거부감이 드는 장면도 담담하고도 진지하게 서술하는 작가님의 필력에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할 수 없이 점점 더 깊은 내면으로 빠져든다.


 영혜 남편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채식주의자>

소설에서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 폭력성을 다시 마주하다.


...아버지는 녀석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면서 두들겨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도 함께 달려. 동네를 두 바퀴, 세 바퀴, 같은 길로 돌아. 나는 꼼짝 않고 문간에 서서 점점 지쳐가는, 헐떡이며 눈을 희번덕이는 흰둥이를 보고 있어. 번쩍이는 녀석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난 더욱 눈을 부릅떠.


유년 시절의 어떤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어느 순간 고통스럽게 현실에 파고든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직 어렸을 때 공포스러운 욕정이 급습하여 괴로웠던 기억을 잊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로 인하여 정말 무섭고 괴로웠기 때문이다."


에곤 실레의 말처럼..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나'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몽고반점>


영화화되면서 다소 외설적으로 변질된 감이 있지만 3부작 중 인간의 욕망과 예술성에 대해, 추악하면서도 측은한 인간의 본성과 갈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이다.


그는 전율했다.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이와 대비되어 꽃처럼, 식물처럼 이 모든 것이 비워진 주인공 영혜의 순수하리만치 강렬한 존재감은 빛을 발한다.


그녀는 베란다 난간 너머로 번쩍이는 황금빛 젖가슴을 내밀고, 주황빛 꽃잎이 분분히 박힌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흡사 햇빛이나 바람과 교접하려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자리에 못박혀 서서,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활활 타오르는 꽃 같은 그녀의 육체, 밤사이 그가 찍은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번쩍이는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무 불꽃>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런 동생을,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언제부터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막을 수 없었을까. 그의 행동을 미리 예측할 만한 단서를 놓친 적은 없었을까. 영혜가 아직 약을 먹는 환자라는 사실을 그에게 더 강하게 인식시킬 수는 없었을까.


그녀의 계속되는 삶에의 질문들


아무것도 문제될 것 없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언제까지나 살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어떤 다른 길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다시 책 표지를 본다.한강 작가님이 직접 고르셨다는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들>

스산함을 주는 배경색에 비슷한 듯 각자 조금씩 다른 나무들,

그 안에 몇 안 되는 잎만 남겨져  유난히 벌거벗은 나무..


무성한 나뭇잎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애정이 가는,

타인들 속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길,

당신의 모습이길,

우리의 모습이길..

'인간을 껴안는 일'이란 그런 것이기를

그래서 공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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