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인상깊었던 천명관작가님의 <고래>.
어떤 이에게는 막장드라마 혹은 삼류비디오로 느껴질만한 요소가 다분한 소설이지만 나에게는 '한국문학다운 문학을 읽은 느낌은 왜일까'라는 생각을 들게한 충격적인 이야기. 마치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논하는 느낌처럼..
<고래>라는 작품은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당선됐던 작품인데 청라국제도서관에서 빌려 새책같은 따끈따끈한 느낌으로 읽어서 소설내용이 더 생생하게 와닿은걸까.
문학평론가조차 가장 소설적이지 않은 소설이라 할 만큼 기이한 매력의 장구한 규모의 이야기.
저자 소개를 보니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으로 되어있을만큼 천명관작가님은 이야기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의 기존틀로는 해석불가능한 자유분방함, 때로는 무성영화시대의 변사처럼, 달변가의 화법으로,
능청스러울뿐더러 다분히 재기넘치는 서술자의 어조, 그 안의 힘있는 서사.
이 소설 속에서가 아니고서는 드라마나 영화로 절대 구현할수 없을 것 같은 인물 춘희.
p. 525 춘희와 벽돌에 관련된, 봇물처럼 쏟아져나온 서적과 드라마의 제작. 원래는 주인공의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이 넘지만 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십팔 킬로그램으로 줄여야 했던 방송작가의 고민.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벽돌보다는 도자기가 더 예쁘지 않느냐고 해서 할수없이 춘희를 도자기를 굽는 주인공으로 바꿔야 했던 대대적인 윤색 작업. 다시 이름이 촌스럽게 춘희가 뭐냐고 해서 마지못해 주인공의 이름을 애니로 바꿔야 했던 대대적인 수정 작업.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직업이 씨팔, 가오 상하게 트럭 운전사가 뭐냐고 해서 어쩔수없이 다시 재벌2세 사업가로 바꾼 대대적인 밤샘작업. 그렇게 해서 결정된 사십팔 킬로그램의 가난한 도예과 여대생과 제벌2세의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슬픈 로맨스. 시청률과 대중성의 법칙. 이미 예정된 드라마의 대히트와 대중들의 무의미한 눈물...
ㅡ소설 끝 '에필로그 하나'中
장진 감독도 영화화하려고 했는데 절대로 영화로 가늠이 안나온다는 작품.
읽고나면 이 말의 의미가 수긍이 되는 작품.
천명관의 <고래>.
p. 393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