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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23. 2022

첫 직장 그만두던 날, 괜찮아! 처음이니깐.

접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직의 사유는 다양하다. 첫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 또한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처음을 그만둔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 이유가,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는 공무원준비였으니까.

    아무런 준비도 않았다. 보통의 삶을 지냈던 나였고, 적은 급여지만 병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방사선사라는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그러하듯이 직장에 다니다보면 조금 더 안정된 직장, 높은 급여, 평생직장을 꿈꾼다.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공무원이 그러해 보였다. 방사선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보건직 공무원과 의료기술직 공무원에 도전할 수 있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취업한 스물여섯의 사회초년생은 스물여덟 가을이 되어서야 생각하게 되었다. 미련은 없었다. 직장생활에 문제가 없었기에 넉넉히 한 달 전에 사직의사를 밝히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그해 가을에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빌라 2층 베란다 사이로 손을 흔든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슬프지만 아버지다. 살다보면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머니’라는 단어보다 가슴 뭉클할 때가 있다. 어쩜 그렇게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만 하다가 이세상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던 걸까? 오직 가족생각과 자식생각으로만 가득찬 듯 했다. 내겐 아버지가 그랬다. 내가 공무원준비를 위해 첫 직장을 그만 둔지 두 달여 만에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었다. 아버지 잘못은 아니다. 그해 경제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는 중국발 저가제품에 밀려 문을 닫아야 했다. 실업자인 아버지와 아들은 며칠간 같이 아침밥을 먹었고, 아버지는 고시학원으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했다.




    첫 직장을 그만 둘만큼 공무원에 대한 열정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수로 계산하면 약 100일 정도다. 그해 10월 31일 그만뒀고, 이듬해 2월 14일 취업했으니 대충 그러하다. 그 백일동안 낮에는 서면(부산)의 공무원 고시학원을 다녔고, 저녁을 집에서 먹고 난 후 근처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다. 그렇게 스물여덟이 가고 스물아홉이 되었다. 세밑 한파가 기승을 부렸고, 신정을 넘어 구정이 올 때까지도 열심히 했었다. 그러던 내가 공무원에 대한 꿈을 접고 다시 취업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아버지이다. 아버지라는 핑계를 댔지만, 아버지는 내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매일아침 아버지랑 밥을 먹고, 설거지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 배웅하는 손짓, 내색 없는 웃음에 어깨가 무거웠다. 어머니는 더 일찍 일하러 나가시고, 아버지는 가끔 일용직으로 집안에 보탬을 주셨다. 삶의 무게가 현실로 다가옴을 느꼈다. 이제 다시 취업해야 될 때구나.     


    20년이 다되어가는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구정이 지나고 나서 확실히 재취업에 대한 마음을 굳혔던 거 같다. 두 번째 직장에 면접을 봤고, 어렵지 않게 직장을 구했다. 11월 12월 그리고 1월의 온전한 세 달간의 공무원 준비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물론 후회는 없다. 미련 없이 내 의지로 첫 직장도 그만두었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해봤기 때문이다.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낫다지 않은가. 젊은 날의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공무원 학원을 혼자 다녔던 터라 점심해결이 힘들었다. 그 당시 혼자 식당 갈만큼의 배포가 없었던 나였기에 점심끼니는 늘 고민이었다. 서면을 돌아다니며 고민하다가 마주친 길거리 포장마차. 겨울에 더욱 빛이 나는 서면 포장마차에는 떡볶이와 튀김 그리고 어묵이 즐비했다. 혼자 서서 먹으니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약 3달간의 점심은 포장마차 분식으로 서서 해결했다. 그러던 아주 추웠던 어느 날, 떡볶이와 어묵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 상황을 시로 적었다. 한때 시인을 꿈꾸기도 했던 터라 어설픈 자작시이지만 적어본다.




冬友(겨울 벗)


딱딱한 겨울에 기지개를 펴고

새벽같이 검은 외투 챙겨 입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나는 가오.


인생의 꼬챙이 끝자락에 내 몸 깊숙이 맡기고

치열한 삶의 늪에 내 몸을 적시오.


굳어 있던 내 육신은 느슨해지고

내 몸 점점 황폐한 물로 얼룩져가오.


나 태어나 죽는 순간이 찰나이거늘

이렇게 마냥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노라하면

날 찾는 외로운 이 저기 오는구려.


인생은 백치(百輜)이거늘

꼬챙이 끝자락에 서서 발버둥 쳐보기도 하지만

나 백치(白齒)속에 뜯겨지고 흙탕물에 몸을 담기고

붉은 용암 속에 상처 나기를 몇 차례 하노라면

우리 인생은 백치(百輜)이거늘

나 이렇게 태어나 어디 갈 곳 없는 외로운 이의

따뜻한 한 끼가 된다면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로세.


나 오늘 또 다시 태어나

이 엄동설한

갈 곳 잃은 내 벗 기다리오.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닌 평가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볼 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판단이다.
_김수현《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미국 심리학교 교수 닐 로스가 주장했다. 그렇다. 후회하지 않는 삶은 없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후회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미뤄왔던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가 미쳐 시작하지 못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접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안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수현 작가의 말처럼 후회가 아닌 평가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걱정이 아닌 판단으로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지만
그해 점심은 유난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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