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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22. 2022

당신이 느끼는 봄의 시작은 언제인가요?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이, 잃어버린 일상에도 봄은 오겠지.

    우리들의 반복되는 일상속에 변함없이 변하는 게 있다면 바로 계절의 변화다. 물론 이 계절도 봄-여름-가을-겨울의 반복되는 변화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새 옷을 갈아입는다. 그 중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봄이지 않을까 싶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속에서 파란 새싹이 싱싱하게 고개를 내미는 순간, 겨울의 혹한을 이겨낸 버들강아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의 숨결소리, 살랑대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 등에서 봄을 느끼곤 한다.



    사실, 요즘은 스마트폰 속 SNS에서 봄을 먼저 느낀다고들 한다. 친한 친구에서 일면식도 없는 팔로워들까지 모두들 저마다의 일상에서 봄을 느끼고, 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화면 속 사진은 하나같이 전문사진 작가이며 프로 모델 빰친다. 온전한 봄소식을 알리는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 속 주인공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어딘가 바라보는 장면으로 찰칵, 수줍게 고개를 숙이면서 찰칵, 뒤돌아 찰칵,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연스럽게 웃으며 찰칵, 그렇게 저마다의 각자 모습이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으로 SNS를 장식한다. 그렇지 못하고 정면을 보고 웃으면 십중팔구 나와 같은 세대이다. SNS속에 봄이 왔다. 봄을 느낀다. 봄을 표현한다. 따로 똑.같.이.




    봄이라는 계절은 유난히 사람을 설레게 한다. 도전하게 하고, 시작하게 한다. 그래서 ‘봄’이라는 단어는 꼭 계절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행복한 미래, 꿈꾸는 희망, 성장한 모습 등을 비유해서 표현한다. 나 역시 매년 신정이나 구정보다는 봄에 어떤 일을 시작하고, 무엇에 대한 꿈을 꾸며 도전했던 것 같다. 이미 날씨는 따뜻한 봄날인데, 먼 훗날 더 멋지게 성장한 또 하나의 봄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그럼 정말 내가 ‘앗~ 이제 진짜 봄이구나!’라고 느꼈을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건 개나리, 진달래도 아니고 매화나 벚꽃도 아니었다. 바로 ‘냉이된장국’이다. 엄마표가 아닌 아침 일찍 직장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먹는 ‘냉이된장국’이다. 딱히 내가 냉이에 대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건강히 살아계신 나의 어머님이 끓여준 기억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식당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 처음 접하는 ‘냉이된장국’을 먹으면 ‘아~ 봄이다.’라고 느낀다.


    산과 들의 식물들이 초록으로 몸단장함을 시각적으로 느끼는 봄이 아닌, 숟가락 위에 오른 국물 한 모금에서 미각으로 느끼는 봄이다. 시각적 봄은 짧게 지나가거나 묻혔다면 미각적 봄은 혀끝을 통해 식도를 통과하고, 위벽을 적시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냉이를 직접 만져보지도 않았고, 본 기억도 잘 없는데 왜 이럴까? 오히려 봄에 올라오는 쑥, 그 쑥으로 끓인 국이라면 더 많이 먹어봤고, 더 많이 접해봤는데, 쑥의 향과는 또 다른 느낌의 냉이된장국이 내겐 봄의 시작이 되었다.



    올 해는 벌써 봄의 변화가 주위 깊숙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냉이된장국을 먹지 못했다. 없던 오늘을 살고 있는 요즘, 내 직장 식당에도 코로나는 찾아왔고. 봄의 길목에서 약 2주간 아침식사를 제공받지 못했다. 그 사이 냉이된장국은 내 혀끝을 스치지 못하고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가혹한 코로나의 시대에 너무 많은 빼앗겨버린 우리. 당연한 게 당연하지 못함을 실감하는 오늘. 나는 올해의 봄내음을 빼앗겨 버린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을 절실하게 표현 한 시이자 노래. 민족적 울분을 가슴으로 토해낸 시인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백 년 전 역사적 사건에 비할 순 없겠지만, 시적 표현에 비교해보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우리에게도 ‘빼앗긴 일상에도 봄은 오는가.’


    춘색이 완연한 봄입니다. 봄은 그 긴 인고의 동면에서 깨어나 울창한 여름의 성장을 거쳐 가을의 결실로 향하는 ‘출범’의 계절입니다.
_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혹한 추위를 견뎌낸 고목 위에 살짝 고개를 내민 새순, 저마다 연한 꽃입술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정말 춘색이 완연한 봄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이 넘게 잃어벼렸던 긴 시간에서 깨어나, 그리운 일상으로 가는 출범의 계절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벚꽃이 산화하기 전

냉이된장국으로

빼앗긴 봄을 먼저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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