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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 내려와서 내려놓는 [까마귀]

드디어 나도 땅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되었어!

by 마음이 동하다

아침 일찍, 평소에는 보기 힘든 까마귀 한 녀석이 눈에 띈 것이다. 녀석은 처음에는 나무 낮은 가지에 조심스레 앉아 있더니, 이내 조금 더 낮은 울타리로 자리를 옮겼다. 망설이는 듯하더니, 결국 잔디가 깔린 땅바닥까지 내려오는 모습이 신기했다. 주변에는 이미 비둘기와 참새 여러 마리가 잔디밭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평소 위엄 넘치던 까마귀가 어색하게 까치발을 하며 다가가는 모습이 어찌나 낯설고 웃기던지.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 들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 순간을 담아낸 사진을 보니, 오늘 하루 글로 풀어낼 이야기가 생겼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려오는건 언제나 까다로워

놀고있는 친구모습 까칠하다

비둘기와 참새들이 까발리니

그모습에 내마음은 까마득

구석에서 재롱떨며 까불고

조심스레 다가가는 까치발

내가먼저 손내밀지 까지것

내려와서 내려놓는 까마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건 언제나 까다로워. 괜히 폼 잡는다고 하늘 높이 날아다니긴 했지만, 사실 나도 땅에서 뒹굴뒹굴하고 싶을 때가 많다고! 그런데 문제는, 땅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 모습이 어찌나 까칠한지. 텃세 부리는 건지, 째려보는 건지, 괜히 심기가 불편해진다.


드디어 용기를 내서 땅에 내려왔더니, 비둘기 녀석들과 참새 녀석들이 "어휴, 드디어 납셨네!"라며 있는 대로 까발리니, 아, 괜히 내려왔나. 갑자기 내 자신이 너무 커다랗고 험악하게 느껴져서 내 마음은 까마득해진다. 젠장, 역시 나는 하늘에서 혼자 고고하게 지내는 게 어울리는 걸까?


하지만 포기할 순 없지! 구석에서 혼자 재롱떨며 까불고, 녀석들의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나, 나랑 같이 놀 사람! 밥이라도 같이 먹을 사람!" 조심스레 다가가는 까치발, 제발 누가 나 좀 반겨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자존심 센 까마귀고 뭐고, 내가 먼저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까지것, 이라는 생각으로, "얘들아, 같이 놀자!"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녀석들의 경계심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쭈뼛쭈뼛 서 있었을까, 드디어 용기를 낸 참새 한 마리가 내 옆으로 폴짝 뛰어왔다. 그래, 이거야! 드디어 나도 땅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되었어! 역시 내려와서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니,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까마귀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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