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생명은 다시 움튼다.
담장 아래 핀 둘레
흔들리는 작은 벌레
언제나 있는 듯 으레
피고 지는 덧없음 굴레
얼굴 감추고 사라짐 되레
기억을 품으며 계절의 치레
손 닿기도 전 사라지는 지레
그래도 다시 피어난 하얀 찔레
*치레: (명사) 잘 손질하여 모양을 냄. [네이버 어학사전]
햇살이 잠시 머물다 간 담장 아래, 조용히 핀 꽃이 둘레에 있다. 사람들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자리는 어느새 작은 생명들의 보금자리처럼 되었다. 그 곁을 지나가는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작은 벌레 하나, 생의 가벼움과 유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꽃과 벌레는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마치 항상 거기 있었던 것처럼, 그저 그럴 듯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으레 그런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피었다 지는 꽃들의 순환 속에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삶의 덧없음이라는 굴레가 조용히 감겨 있다.
그런데도 찬란한 순간은 그 모습을 감춘다.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이 사라지는 건 안타까움이 아니라 되레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작별처럼 느껴진다. 계절의 끝자락에 남겨진 기억 하나하나가, 그 이별을 준비하는 조용한 치레처럼 마음을 다독인다.
아직 손 닿지도 못했는데 먼저 멀어지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 아쉬움에 지레 마음을 접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생명은 다시 움튼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피어난다. 햇살 아래,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하얀 찔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