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임] 138화 - 피지 않고 견뎌내는 [섬]초롱꽃

그 손길이 조용히 땅을 어루만지듯, 꽃은 묵묵히 자연을 섬기다.

by 마음이 동하다

아침 일찍? 새벽 같이? 6시가 되자마자 아파트 경로당이 투표소라서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투표소에서 한 표 행사하고 나온 후 다시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데, 계단 모퉁이에 꽃을 보고 잠시 멈칫.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래도 살면서 몇 번 본 꽃이지만, 이 꽃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그저 다른 꽃들처럼 하늘을 바라보거나, 활짝 피지 않고, 묵묵히 땅을 향해 꽃을 틔우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고는 생각했다. 게다가 새벽 빗줄기로 인해 더욱 더 생기 있어 보이는 녀석.

그래, 오늘의 글감은 너다!

찰칵~





138-1[꾸미기].jpg


빗속에 떨리는 자태 참

홀로 고개 숙인 채 좀

고운 결 따라 흩날린 섬옥수

그 손끝 닮은 마음은

빛결 속 떨리는 숨결

잎 위에 맺힌 달빛은

말없이 바라보게 돼

피지 않고 견뎌내는 초롱꽃



*섬섬하다: 가냘프고 여리다.

*섬서하다: 지내는 사이가 서먹서먹하다.

*섬섬옥수: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이르는 말.
*섬삭: 번쩍하고 빛나는 모양.




여름 초입, 가는 빗줄기 속에서 섬초롱꽃이 조용히 피어 있었다. 다른 꽃들이 햇살을 향해 고개를 들 때, 이 꽃은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었다. 그 자태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릴 만큼 연약하고 고와서, 참으로 섬섬하다. 하지만 주변의 활짝 핀 꽃들 사이에서 홀로 고개를 숙인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섬서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흰 꽃잎은 마치 고운 손길처럼 곱고 정갈하여, 옛사람들이 말하던 섬섬옥수를 닮았다. 그 손길이 조용히 땅을 어루만지듯, 꽃은 묵묵히 자연을 섬기다.


그 속엔 번지는 듯 아른거리는 감정이 있다. 바람에 살짝 떨리는 그 움직임은 마치 순간의 빛처럼 섬삭, 곧이어 잎 위에 고요히 내려앉은 달빛은 은은한 섬광을 드리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감정이 스며들고, 결국 조용히 섬망하게 된다. 소리 없이 계절을 건너며 고개 숙인 채 피어난 그 꽃, 이름조차 낮은 목소리로 불러야 할 듯한 섬초롱꽃.



138[꾸미기].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