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하나씩 덧입히고 간 감정의 결은 점점 더
직장 식당 나오는데, 하얀 꽃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꽃잎은 활짝 핀 것 같은데 안에 또 뭔가를 감싸고 있었다. 이게 꽃봉오리가 두 겹인 건지 아니면 이미 다 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신기해서 얼른 사진 찍고 검색해보니 치자꽃이었다. 살면서 치자꽃도 처음 보는 건가 싶어서 좀 머쓱했다. 활짝 피었는데도 뭔가 숨기고 있는 모습.
치사한
치자꽃ㅋㅋㅋ
고요한 그늘속 숨결은 치밀한
꽃잎틈 비집고 햇살이 치솟다
은은한 향기 바람끝에 치근덕
덜익은 아름다움 겉만 치장함
한낮의 열기를 가만히 치르다
낙엽진 마음 먼기억도 치우다
계절이 쌓아온 감정의 치밀도
피어날듯 말듯 흰숨결 치자꽃
고요한 그늘 아래에서 여린 숨결이 조용히 퍼진다. 그 숨결은 마치 치밀한 계획처럼, 차분하게 주변을 감싼다. 꽃잎의 조밀한 틈 사이로 강렬한 햇살이 스며들며 치솟아 오르는 듯하고, 빛은 생명을 깨우려는 듯하다. 순간 퍼지는 은은한 향기는 바람의 끝에 실려와 사람의 마음을 치근덕거린다.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아름다움은 속보다 겉을 먼저 꾸며내며 치장함을 선택하고,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도 조용히 견디며 시간을 치른다. 그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쌓였던 낙엽 같은 감정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치우다. 그렇게 계절이 하나씩 덧입히고 간 감정의 결은 점점 더 치밀도를 더해가며, 마침내 피어날 듯 말 듯 한 흰 숨결 속에서 치자꽃이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