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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Sep 05. 2021

글들 속에서,,,

 살아가는 날들

이런 느낌을 아는가.

세상의 소리가 들리는 이런 느낌을.


내 목소리가 중요했고 어쩌면 혼자서 말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는데 자신만 말하고 있을 때가 있지 않은가.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어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어떤 내용일지라도 타인이 말하는 건 대부분 듣기 싫어한다고 한다. 들을 필요성이 큰 학교 수업에서도 보통 7, 80퍼센트 이상 학생들이 듣지 않는다고 하니 일반적인 (생활) 수다에서는 더욱 듣지 않는다 할 수 있다. 당연히 나도 그랬다.


“Listening is Loving.”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제 글쓰기 예찬을 하련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예민한 내가 더 예민해졌다. 김영하 작가가 어느 동영상에서 제시한 모 작가들처럼 점점 몸을 혹사하고 있다. 작가는 평균 수명이 짧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아프고 싶으면 일찍 죽고 싶으면 글을 쓰라고 하지 않던가. 앉아서 장시간 글을 쓰면 허리가 아파 오기 마련이다. 그 후엔 다리도 당기고 집중해서 쓰다 보면 굶어서 입에서 쉰내도 난다. 그뿐이랴, 오래 앉아 있어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엉덩이 속 어느 부분까지 아프게 된다. 이처럼 글 쓰는 작업은 고시생 수준의 체력이 소모된다. 이 정도로 그치면 그래도 그만이건만, 요즘은 글 쓰는 도구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그리고 갤럭시 탭이나 아이패드 등과 같은 제품이어서 전자파를 유발한다. 전자파에 노출되면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붉어지고 수면 장애 등이 일어난다. 거기에다 식욕 부진으로 이어지고 산만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련다.”


이유는 뭘까. 그래도 굳이 쓰려는 이유가 있다.

뭉클하던 맘으로 시작했던 ( 쓰기) 기본 강의가 심화 과정으로 진행하면서 점점 더 지루했다. 매일  쓰는 습관을 들인  겨우 10개월째였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쓰고 있었는데  쓰기 강의를 들으면서 쓰는  중단했었다.  수가 없었다. 과제에 허덕이다 보니, 지금껏 읽었던 글쓰기 책 내용과 다른 냉용으로 뭐가 제대로 쓰는 거지, 글쓰기 기본을 다시 잡아야 하나, 등등 잡념들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9월부터 전문 과정에 돌입했다. 이제 나를 자극하여 완수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시작했으면 끝을(결과를) 내고 싶은 사람이다.”


 쓰기 과정에서 원래 쓰고 싶었던, 아니 책을 내고 싶었던 분야는 철학자와 나에 관한 (은밀한) 내면 이야기였다. 거창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심오한  아니다. 단지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감정을 그저 다루었을 뿐이다. 조화로운 듯하면서도 아리송한 인간관계  카오스를 철학자와 연계했을 뿐이다. 그런데 페이지 수를 줄이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그래, 그럼 다른 주제로 하지 , 하고 재밌었던 추억 이야기를 적기로 했다.  마이 그마저도 분량이 많단다. 한숨 쉬며 고개 돌려, 가볍게 적었던 소량의 짧은 글모음을 내기로 결정했다. 요즘은 얇은 책이 대세라잖아, 하면서 말이다. 풀이 죽은 나를 끌어 오려야 한다. 여러 번의 변경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세우는 주최 측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리고  쓰기를 완수하기 위해서.


짧은 글모음을 빨리 편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글쓰기만 초보가 아니라 편집도 초보다(내 기준에서). 그래도 한다. 하고 싶으니까. 하흐, 그런데  편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 쓸래? 편집할래?” 고르라고 하면 “ 쓸래요.”라고 말할 테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면 하는 스타일이다. 여러 자료를 참고 삼아 어느 정도 편집을 하던 중에, 갑자기 책의 느낌이 궁금해졌다. 노트북  전자 텍스트와 전자 판형에서는 우리가 말할  종종 쓰는 ‘feel’ 오지 않았다. 나는 해결해야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전공 덕분에 문제 해결력은  몸에 배어 있다. POD센터로 달려갔다. 가기 전에 물론 책의 형식을 그나마라도 마무리하기 위해 굶어 가면서 편집했다. 흐흣, 조금 날씬해졌을 정도로  몰입했다. , 나를 위한 거잖아. 몸은  상해도 마음은 기분은 좋아질 테지, 하면서 완성한 파일을 들고 POD센터로 갔다.


어머, 내가 공들인 시간은 무려, 무려 1년 하고 3개월인데… 오 마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하면 무려 1년 3개월 이상을 소요했는데, 책 한 권을 만드는 데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슴은 ‘찡’ 했다.


1 샘플북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친 나는 저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센스 있는  신랑이 외식을 하자고 했고  덕분에  (내 기준, 20퍼센트 완성일지라도) 책의 기운을  느꼈다.


자, 이제 오늘 아침의 느낌으로 돌아온다. 거실 장식장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난 요즘 ‘Listening’을 잘하는 편인 것 같다. 바람소리, 차 소리, 매미 소리, 사람 소리, 흐음 이런 소리들이 마구 들렸다. 내가 사는  곳은 26층인데 말이다. 원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보통 문을 조금만 열어 두기도 하지만 (대체로 창문을 3센티미터 정도 열어둬서) 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잘 들린다. 샘플북을 보고서 피드백해 줬던 지인의 말도 속속 잘 들렸고 딸의 의견도 귀 기울일 필요 없이 잘 들리고, 아들의 의지도 그냥 보이고, 신랑의 마음은 으, 아직은 신랑의 마음은 보일까 말까로구나. 그래도 이 정도면 발전했다. “Speaking”이 강세였던 내가 이제는 “Listening”이 된다. 또 언젠가는 반대로 된다 하여도 지금은 잘 들린다. 지금은…


“모두 글쓰기 덕분이다.”


글을 쓰면서 관찰력이 더 좋아졌다. 지금은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저절로 스스로 꼼꼼히 본다. 글을 쓰면서 또한 사람들 표정을 읽는다. 상황에 맞춰 말하고 있을 뿐인 표정들까지도 읽힌다.


“참, 난 나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문명을 이용할 생각만 했었구나.”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싶어서 빅데이터 공부를 하지 않았던가.

나를 알면 타인을 알 수 있는 걸 그때는 몰랐다.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글 쓰는 날들 속에서 나를 느끼면 되는 걸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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