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책만 읽다가 책의 다른 세계도 속속들이 알게 된 한 해를 보낸 마지막 날에 출판인 한 분을 만났다. 지혜의 숲 1층 카페에서 “왜 책을 만드시나요?”라고 나는 질문했다.
“책 속에서 여행을 한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런 후 내게 책의 기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셨다. 책의 필요성이 뭘까, 내게 그리고 모두에게? 책은 어떤 기능으로 존재하는 걸까?
나는, 내게는 책이 해소였고 쉼터였으며 편안함을 주는 거였다고 당장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그럼 모두에게는 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그러다가 그분은 본인은 어떤 책이든 한 번만 읽는다고 말하셨다. 어어???
나는 소설책인 경우엔 예를 들어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오래>>같은 경우는 술술 잘 넘어가는 내용이어서 한 번만 읽었지만, (소설은 한 번만 읽어도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같은 소설은 20대에 처음 읽었을 때 단번에 이해되지 않아서 30대에도 다시 읽었다고 말했다. 그때도 만족스럽지 않았었기에 근래에도 펼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거기에다 나는 더 추가하여 말했다.
“저는 그렇네요.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방법서설>>도 (맘속으로 <<철학적 탐구>>는 말하려다 말았다.) 아직도 소화하지 못한 부분은 다시 읽어요.”
그래, 내 전공은 한 번에 익혀지지 않는 이론들이어서 우리는 정의에서 시작하여 정리 내용을 참으로 여러 번 깊이 있게 공부해야 했다. 이런 이론 저런 이론에서 헤매는 순간에는 전공서가 아닌 다른 책들을 만나면 편안하고 힘이 났다. 한두 번만에 이해되는 책을 만나면 반갑고 기뻐서 푹 빠져 읽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해소하고 나면 전공서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내 전공 덕분에 나는 여러 번 읽어야 하는 책이 친숙하다. 그런 어려운 책을 읽다가 멈추어 가만히 책 내용을 생각하다가 관련 시대를 상상하거나 멍하니 있는 순간도 책이 주는 묘미였다.
그분에게 책이 여행이라면 내게는 책이 “휴식이고 상상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