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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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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Jul 19. 2020

기차를 타면

우리의 감정은 기억과 함께 기록된다

기차가 일상이 되던 때가 있었다.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보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 같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기차 안은 편한 장소가 아니라 업무의 연속으로 느껴졌다.


퇴근 후 중요한 회의나 약속에 참석해야 하는 날에는 기차를 놓칠까봐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쉴틈 없이 정규 업무를 빨리 끝내야만 했고, 그러다가도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올라간 서울이지만, 밤늦게 일정이 끝나면 또 다음날 출근을 위해 막차를 타고 내려와야만 했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는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밀려오는 적적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기차를 타고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마음은 늘 달랐다. 긴장의 연속, 그리고 긴장이 풀리면서 몰려오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말하고 있었다. 환자 상태가 좋아지고 있거나 회의 결과가 좋은 날은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은 충분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지쳐있는 몸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공허감이었다.


우울해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진료실에 앉아있던 소녀의 긴 침묵 끝에 이어진 말 한마디. 며칠이 지나도 변함없이, 치료자로서 많은 고민을 했던 그 때.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탔던 기차 안에서 고스란히 환자의 말이 하루 종일 귀에 맴돌았던 그 날. 아직도 생생하다.


기차를 타면 문득
그 날의 감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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