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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Apr 15. 2021

가슴이 답답해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요

익숙한 진료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젊은 남성이었다. 예약한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료 기록을 보니 오랜만에 찾아온 재진 환자, 마지막 진료일이 1월이었다. 대략 6개월 전에 초진을 하고 두 번 정도 왔다가 그 뒤로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환자는 상당히 화가 나 보였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컴퓨터 모니터를 넘어서 내 몸 위에 올라타더니 목을 조르는 건지, 내 가슴을 압박하는 건지 두 손으로 나를 짓눌렀다.


너도 얼마나 답답한지 느껴봐


그러고 잠이 깼다. 가슴이 턱 막혔다. 너무 답답했다. 꿈을 다시 떠올리며 바디 스캔을 해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지는 신체 감각은 오로지 상복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체한 듯한 이 느낌은 분명 소화불량을 의미하고 있었고, 어제 저녁 송어회 무한리필과 매운탕을 배불리 먹고 집에 오자마자 졸려서 9시쯤 바로 잠이 들었던 나였기 때문에 충분히 소화가 안될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보니 새벽 두 시, “아 지금 일어나면 또 못 잘 것 같은데..” 이내 다시 잠이 드려고 시도해봤지만 답답한 느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불을 켜고 위장약을 챙겨 먹고 휴대폰으로 끄적이고 있는 지금, 조금씩 속이 편해지고 있는 중이다.


평소에 꿈을 잘 꾸는 편도 아닌데, 유독 오늘 꿈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day residue를 떠올려본다. 여기서 day residue는 “낮에 경험한 여러 가지 경험들의 잔상”을 의미한다. 어제 무슨 일을 경험했는지 생각하면서 꿈속에 나왔던 인물이나 상황을 짚어보는데, 퍼즐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


만약, 환자가 이런  내용을 들고 왔다면 자유연상 하며 그럴싸하게 꿈의 해석 해줬으려나. 물론 해석은 섣불리 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유연상 정도만 시도해봤을  같다.


꿈속에 나왔던 젊은 남성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는 얼굴은 아니었다. 실제로 진료했던 인물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는 나를 공격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이 곳을 떠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서운해하는 환자들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acting out까지는 아니었을 터이니.


그렇다. 나는 내일이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고 이사를 앞두고 있다. 맞다! 꿈속에서 그 인물이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오늘 낮에 내가 인수인계를 해준 후임 정신과 군의관이었다.


이 곳에서 생각보다 하는 업무가 많았기에, 후임자에게 하나하나 빠짐없이 설명하면서도 내가 그동안 일을 줄이기보다는 늘린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는 곳마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아쉬워하는 여러 간부들에게 후임자를 소개했고, 잘 부탁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인계를 마무리했을 때 그는 한마디 했다.


선생님, 열정이 넘치시네요


순간 멈칫, 열정이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자”라는 삶의 모토를 갖고 왔을 뿐인데, 열정이라고 표현을 해주니까 괜스레 부끄럽고, 칭찬이라기보단 원망스러워하는 건가 싶고, 내가 너무 부담을 준 것 같았다.



꿈속에서 나를 짓누르던 그가
혹시 나 자신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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