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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Jul 19. 2021

현실판 슬의생이 되려면

2021.07.08 일기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대략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비몽사몽 상태로 눈이 떠졌고 난 일기를 메모장에 적어내려 갔다.


오늘 무슨 일인지 평소보다 2배 이상의 환자가 접수를 했고, 설상가상으로 응급실에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 이렇더라.


짧게는 10분, 길게는 40~50분씩 소요되는 정신과 진료이다 보니 접수시간보다 2시간 넘게 기다려야 나를 만날 수 있는 환자들도 있었다.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내 몸도 느끼고 있었지만 잠깐의 휴식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퇴근시간이 넘어서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한마디라도 더 들어주고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싶었다.


진료실 밖 환자들도 오늘 유독 사람이 많다는 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을 터.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들어오는 환자들은 “고생하십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말 한마디씩 던졌고, 나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고맙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라며 진료를 이어나갔다. 평소보다 두 시간 반이 지나서야 진료가 다 끝났을 때 웃프게도 슬의생 드라마에 한 장면이 생각났다.


전날 당직 근무를 하고 하루 종일 저녁 늦게까지 외래 진료를 하는 조정석, 극 중 이익준 교수는 마지막 환자까지 최선을 다해 진료한다. 30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는 그는 끝까지 친절하고 위트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나는 어제 그래도 잠을 잤으니까 이렇게 버텼지.. 전날 밤을 새웠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진료가 가능했을까. 어쩌면 진료 양이 많아질수록 기계적으로 변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고 꼼꼼히 설명해주고 집중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으니까..


똑같을 수 없는, 완벽할 수 없는 의사생활..

그럼에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나오는 극 중 인물들이 언제나 따뜻하게만 그려지고, 슈퍼맨처럼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는 하루였다.


친절은 편안한 몸과 마음에서 나온다. 이는 사회 모든 조직과 구성원에게 해당된다. 쉴틈 없이 몰아치며 쫓기듯 일하는 이에게 배려를 기대할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 사회는 서로를 보듬는 여유라는 완충 장치를 지니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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