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Emotion sensory bottles
내가 요즘 이런 기분이었을까. Emotion Bottles를 실험하는데 왠지 저런 표정들이 나온다. 잘 안되어도 그냥 묵묵히 열심히 해야지 했다가, 흥 내가 어떻게든 해볼거다 했다가… 으... 진짜 못하겠다… 너무 피곤하고 지친다고 했다가... 좌절과 무력감이 연속으로 늘어져있는 요즘이다. <미러링-와이-초이스>의 와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또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표현적이고 표출적인 자기 독백형식의 일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 뭔가 이거 아닌데 하며 도돌이표가 되는 느낌이 든다.
사실 내가 경험해 왔던 심리치료의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단점과 어두운 감정, 잘 안 되는 일에 집중하여 파헤치기. 그러다보면 점점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를 인정하는 지경에 이르른다. 아 그거 아닌데… 인생에서 딱 떨어지는 일 같은건 없지만, 뭔가 딱히 치료적인 효과가 없었다고기억되는 건 그런 이유들이다. 자꾸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들여다 보라고 강요받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고…
물론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것들이 분출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있다. 그런 감정들을 평소에 꾹꾹 눌러 담다가 말해도 괜찮구나, 표현해도 안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두운 것들이 분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닝페이지의 의미는 아직 내 멋대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라 분명하지는 않지만, 모닝페이지라는 이름을 빙자한 그저 독백형식의 일기만이 된다면 그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경험이 리마인드 되는 시점이다.
"왜가 아닌 무엇" 혹은 "무엇을 위해"
"왜"라는 질문은 과거를 향하는 속성이 있고 무엇은 미래를 향하는 속성이 있다. 자기 통찰이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왜?'라고 묻기 시작하는 순간, 피해자의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 심리치료를 받게 되죠.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거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오가고 있지?" "어떤 다른 시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지?" "더 나은 대응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지?"
자기 통찰, 어떻게 원하는 내가 될 것인가, 타샤 유리크
그렇다고 해서 왜라는 질문을 이제부터 그럼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결론에 이를 필요는 없다. 왜 와 무엇은 균형감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할 질문인 것이다.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기업이 '어떤' 회사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고 '왜' 지금에 이르렀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 사라질 위기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왜가 아닌 무엇을 질문하라는 규칙에 예외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왜'라는 질문은 우리 주변 상황의 이해를 돕고 '무엇'이라는 질문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다시 일기로 돌아가보면, 일기는 표현적 글쓰기다. 표현적 글쓰기의 다양한 혜택은 기술하려는 사건의 사실적 측면과 감정적 측면 모두를 쓸 때만 나타나고, 한 가지만 포함된 일기 쓰기는 통찰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없다. 만약 일기를 감정의 배출구로만 쓰게 된다면, 한 가지 생각에만 잠기게 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버릴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반추과정이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는데, 그야말로 그렇다.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런 현상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해롭다고 여기게 된다. 다시 들춰본 이 책에서도 '일시정지'나 '사고정지'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직 모른다' 하는 순간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매일 리서치를 하고 주제를 정해 써나가기는 것이 아직은 좀 어렵다 보니 그냥 우선은 익숙한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뭔가 자기 독백만이 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늘 고민이 된다. 익숙한대로 하다보니 글은 쌓이는데 발전적인 느낌이 없다.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사건은 잘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다 보니 뭔가 나에게 익숙한 생각들만 자꾸 적게 되는 것 같은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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