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연못 Bliss pool, Donna Huanca, 스페이스 K
절망의 늪에 대해서만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불안과 절망은 그 심리적인 크기가 상당하여 기쁨이나 행복한 순간이 와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부린다. 어쩌면 어두운 색들이 밝은 색들을 무심하게 삼켜버리는 것처럼.
기쁨 혹은 행복의 연못, 혹은 웅덩이라니...
마곡역에 위치한 스페이스 K 에서는 3월 9일부터 6월 8일까지 볼리비아계 미국인 작가 도나 후앙카(Donna Huanca, b.1980)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그녀는 조각, 설치, 퍼포먼스, 회화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한다. 남성중심적인 미술계에서 남성의 시각으로, 연약하거나 혹은 성적으로만 바라보게 되던 여성의 존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유도한다. 여성의 신체와 피부를 반영하며 퍼포머들과 작품들 그리고 각각의 관람객들이 모두 주체가 되어 비언어적, 유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그야말로 총체적인 소통의 장을 구현하고자 한 전시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하얀 벽과 전시 초기에 진행되었던 퍼포먼스들의 흔적들인 듯한 푸른 흔적들이 시야를 환하게 열어주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형태로 덩그러니 서 있던 조각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중에 제목을 보니 [긍정적인 일기(청색), 2022]라고...
안쪽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회화작품과 역시나 알 수 없는 형태의 조각들이 놓여있었다.
반대편에는 흰색과 푸른색이 뒤엉켜 있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거대한 푸른색들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다. 돌아와서 다시 보는데… 그러니까 이것이 기쁨과 행복감들이뒤엉킨 늪인 셈이다. 늪…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정화되는 연못 같다고 하는 편이 더 좋을까.
과거 진행했던 퍼포먼스의 사진 위에 모래등을 섞은 오일페인트를 손으로 채색한 화면이다. 작가의 이전 작업은 현재작업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시간, 표면, 정체성등을 퇴적시키고 레이어링시키며 순환시킨다.
퍼포머의 푸른 움직임이 유령처럼 자국을 남겼는데… 이브클랭이 리마인드 될 수밖에…
중간중간 서 있는 방울들이 피어싱 되어 있는 거울들과 설치물…
에너제틱한 주황이 화려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의 인터뷰영상이 있었는데, 사실 머릿속이 복잡해서 나중에 자세히 찾아봐야지 하고 대강 흘려듣긴 했지만… 교실처럼 책상까지 같이 배치해 두어 좀 더 집중력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작업 의도와 방식, 재료등을 대강대강 흘려듣고 다시 내려왔다. 관람자의 공감각적 경험을 극대화시키고자 설치한 거울들 페인팅들과 내 모습들과 주변의 것들이 다양한 각도로 파편화되어 비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런 색이 저렇게 보면 저런 색이 요렇게 보면 내 모습의 일부가 조롷게 보면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들도 들린다.
무엇보다 놓치기 쉬운 것은 향이다. 전시장 내에서 묘한 향이 계속 감돌고 있었는데 인터뷰영상을 보고 나서야 전시장에 계신 분께 물어보았다. 이 향은 혹시?! 작가는 향을 기억의 표식으로 활용하는데 이 전시에서는 팔로 산토 나무와 태운 머리카락등을 혼합한 향을 직접 만들었고 그것을 기계로 지속적으로 내뿜게 설치를 해두었던 것이다.
들어가면서 나오면서 아무래도 무당집 같구먼….이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는데… 아직 사실 촘촘히 생각들이 정리가 잘 안 되는 탓에 우선 기록을 해둔다.
건물 밖에 있던 옹기종기 모여있던 작은 오리들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참고: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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