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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Aug 28. 2023

[135•20-14]

말없이 나를 떠난 친구에게

말없이 나를 떠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잘 지내고 있니?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너는 어느 날 참 고요히도 떠났더라. 우리와 함께 했던 그 시간 동안 너는 행복했을까? 네가 떠난 자리에서 나는 이제야 생의 태도를 깨닫는다. 너 만큼만 살다가 가면 참 좋겠다고.


짙은 갈색의 얌전한 털뭉치, 엄마 가게 앞에 주차된 차 안에서 너를 처음 만났어. 그날이 2007년쯤이었는지 혹은 그 이 전이었는지 우리 가족은 네가 떠나던 날에도 실랑이를 했었어. 엄마 아빠는 네가 스무 해 넘도록 오래 잘 살고 있다고 꽤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지.


처음 왔을 때 꼬물거리다가 풀썩풀썩 미끄러지기만 하던 작고 조심스러운 아이. 동생은 니가 못생겼다고 하얗고 예쁜 아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 그렇게 한 식구가 된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갔고, 한동안 나의 기억은 그곳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에 머물러 있었단다. 어쩌면 그 때가 너에겐 가장 행복했을 때 일 거라고.


함께 동네를 산책했고, 강아지 친구들이 함께 갈 수 있는 까페 며 신나게 뛰놀 수 있던 운동장에도 같이 갔었지. 그 때는 내가 예쁜 옷도 간식도 사줄 수 있었어. 하지만 그 이후 엄마아빠와 너 셋이만 다시 이사했던 곳에서 너랑 부모님은 이곳 저곳 또 많이 다녔더라고. 그러니 네가 이사하기전 동네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거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던거야. 마지막 몇 년 간은 너를 자주 보지 못했거든. 그래도 부모님댁에 가면 너를 볼 수 있어 한편 기쁘기도 했어. 엄마가 전에 이야기 했었지. 나를 집에 오게 하기 위해 너를 데려왔다고. 그래. 집에 가면 언제나 우리들의 불편하고 어려운 분위기를 사르르 녹여주는 네가 있었으니까.


네가 떠난 후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너는 그저 얌전히 존재했지만, 어쩌면 참 묵묵히 우리 마음을 안아 주었다는 걸. 무엇보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는 우리 엄마를 위해 엄마 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크게 아프지 않아 병원비도 많이 안들었던것도 엄마한텐 정말 컸을거야. 늘 조용하고 얌전했던 아이. 우리식구들을닮아 사회성도 없어, 밖에 나가면 부들부들 떨며 무서워 하기만 하던 아이.


우리 마지막 여행은 참 좋았어. 오랫만에 모두 바닷가에 가서 들리지 않는 귀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절뚝거리는 다리로 마지막 콧바람을 쐬는 너를 보며 활짝 웃었어. 사진 속에서, 할머니가 된 너는 햇살에 눈이 부셔 어쩐지 화알짝 미소짓는 것 같았지.


너의 그 은은했던 사랑, 닮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 우리 해피, 예쁜 강아지, 언젠가 우리 엄마 가는 날, 꼭 마중 나와 줄거지?


“나는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뭔가를 그리고 싶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잔다. 나는 항상 여기에 그들과 함께 있다. 그들은 내가 없으면 아무데도 가지 않고, 내가 그들을 떠날 때에만 간다. 그들은 나에게 있어 작은 사람들 같다. 주제는 강아지가 아니라 작은 생물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 Dog Painting 22, 1955, The David Hockney Foundation.


브리튼 리비에르Briton Rivière(1840~1920) 좌) Sympathy, 1877 우) Naughty boy or compulsory education, 1887


브리튼 리비에르Briton Rivière(1840~1920), Fidelity, 1869


노트:

긴 편지를 가까운 누군가에게 써본적이 언제였을까. 오해가 있거나 길게 설명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주로 메일을 쓰곤 하는 것 같다. 그 이전 사춘기때는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았고, 초등학교시절 모아두었던 손편지들을 어느날 무엇때문이었는지 엄마가 태운다고 협박했던 날도 기억이 난다. 감동스러웠던 고3때 친구의 걱정스러운 편지, 대학교때도… 친구의 걱정스러워하는 편지… 그러고보니 왜 다들 나를 걱정했던거지?


이래저래 떠올리다보니 짧은 엽서정도 보내고 받았던 기억이 최근에도 있긴 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노트2.

유명한 학자들이 개인적이면서도 꽤 멋진 내용의 서신을 주고받은 내용들이 담겨있는 책을 보다보면 나도 저런 편지를 주고 받을 수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곤 했다.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학문에 대해 고민하며 그러나 개인적인 애정을 잊지 않은 그런 편지들. 최근에 봤던 책은 존버거와 그의 아들 이브버거의 편지책이 있었다.



노트3.

말없이 나를 떠난 친구에게… 라는 문장을 듣는 순간 보통은 내가 말없이 떠나는데… 라며… 또 한편 안쓰던 감성적인 글을 써야 하나 싶어 간질간질, 구질구질?! 하다는 생각을 한다. 참 메말랐다… 겨우 그렇게 헤매다가 떠올린건 역시 동물친구, 결국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언젠가는 내가 만났던 소중한 동물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보면 좋겠다.


노트4.

우리 해피에 대한 기록을 해두지 못했는데, 잘 정리해놓고싶어진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흠… 역시 남는건 기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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