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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Jan 15. 2023

[100-15] 우직한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

(feat. 알렉스 카츠)



우보천리(牛步千里) 마보십리(馬步十里):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가고
말의 걸음으로 십리를 간다.


말을 빠르게 갈 수는 있지만, 빨리 뛰다가 십 리 정도 가서 지치고 만다. 하지만 소는 느려도 그 느리고 우직한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이다. 어릴 적 듣고 자란 라 퐁텐의 이솝우화 속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구절이기도 하다.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시작했는데, 토끼는 빠르고 거북이는 느리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경주를 했던 건지?) 그래서 토끼가 아주 여유롭게 당근도 먹고 낮잠도 자고 그러는 동안 거북이는 그냥 쉬지도 않고 한눈팔지도 않고 꾸준히 열심히 걸어가서 결국 토끼를 이겼다. 는 이야기다.


무모하리만큼 현실성이 없는 데다가 천성적으로 게으르기까지 했던 나는, 늘 내가 닿을 수 없는 꿈을 향해 허우적대며 괴로워했다. 지난날 내가 했던 일이라고는 자기 자신의 지옥을 열심히 창조해 낸 일이다. 스스로를 벌주는  정신고문기술들을 나름대로 참 잘도 고안해 내던 날들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그 지옥이 끝나지는 않은 듯하지만, 돌아보면 스스로 만든 괴로움 속으로 자진하여 빠져들어 놓고는 괴롭다고 괴롭다고(소심해서 소리도 꽥꽥 지르지는 못하고) 그냥 혼자 끅끅거리며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보려고 또 열심히 발버둥 치고… 그랬던 것 같다… (뭐 한 거임?)


이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던 이유는, 백일 동안 백장의 글을 쓰는 백백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떠올렸던 구절이 일보우일보(一步又一步)였기 때문이다. 현실은 허접하나 꿈이 당돌하여 말이 잘 앞서고, 호기심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이리저리 산만하고, 내 밥도 못 챙겨 먹는 주제에 입바른 소리로 오지랖부리기를 잘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늘 나에게 묵묵함을 강조해 왔다. “묵묵하게, 끈질기게, 꼼꼼하게, 무심하게, 끝까지. 말은 제발 결과 보충설명용으로 하는 거임”  


대충 요약하면 일보우일보(一步又一步)쯤 될까. 그런데 이 말은 또 어디서 주워 들었나 찾아보니 돈도 없이 영어도 할 줄 모른 채로 미국에 가서 전화기 2대, 직원 2명으로 시작한 회사를 미국 전체 경량 철골분야 6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회사로 키워냈다던 ‘패코스틸’의 백영중 회장님이 언젠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다던 말이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입니다. 부족한 것은 노력입니다. 현명한 목표를 세우고 일보우일보(一步又一步) 자세로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그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

- 패코스틸, 백영중


사서삼경 중 <대학>에는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하루를 새롭게 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며 또 새롭게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으로 줄여서 잘 사용되는 말이다. 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과 “우보천리(牛步千里)”를 합쳐 일보우일보(一步又一步) 매일매일 우직하게 현명한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일이 바로 매일을 새롭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그의 통찰은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현명한 목표(분명한 방향성)와 그곳을 향한 꾸준함이다.  


방향 없는 꾸준함만으로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열심히만 한다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당장의 방향이 없다 하더라도 생각만 하고 있기보다는 일단 어디로든 걷기 시작하면 또 가면서 방향이 잡히기도 할 일이다. 원래 가려고 생각했던 방향이 어쩌면 가다가 바뀔지도 모른다. 혹은 좀 더 디테일하고 명확한 표적을 찾아내 초점을 맞추기가 좀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


사실 최근에 지인에게 피드백을 좀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공간에는 글을 올리기가 좀 무섭기도 했고, 올린다 해도 내 글은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 읽어도 온라인상으로는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기도 어렵다. 좋아요 나 싫어요 정도로는 좋은 피드백이나 가이드가 되지 않는다. 온라인상에 믿을 만한 좋은 정보나 글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시는 분들은 이런 현상을 개탄한다. 너도나도 글을 쓴다 하니 제대로 된 글이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글을 찾는 안목도 제대로 된 글을 쓰는 기술도 자꾸 쓰고 봐야 는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쓰면서 보면서, 욕하면서 욕먹으면서 서로 그렇게 성장해 가는 과정을 함께 견뎌내어야지.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늘 가면서 멈칫거린다. 이런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닌데 쓰다 보면 산으로 가고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고 갈피는 안 잡히고 마치 내 인생처럼 내 글도 방황한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이대로 간다고 글이 나아지긴 하는 걸까. 괜히 시간낭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시점에 내가 여기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게 맞나.’


가이드라인이 분명한 글쓰기 워크숍이나 강의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지금은 그럴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뭘 매번 배우기만 한다고 하니 그것도 참 한심하기만 하다. 그래서, 일단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생각과 글부터 모으고 있는 중이다.


워낙 오래 알고 지내던 분이지만 글을 보여드리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글쎄 ….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냥 지껄임의 수준이다. 예술과 연결시켜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사실 어느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하루하루 써보긴 하는데, 의심과 불신과 자책들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던 차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래서 백백프로젝트를 보자마자 얼른 나를 여기에 묶어 놓은 거였다. 이럴 때마다 난 아마 다시 일단 스탑 한 채로 자기 연민에 좌절하며 한동안 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어버렸을 거다. 누가 뭐라든 말든, 잘하든 못하든, 욕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우직하게 할 일을 해나가는 멘탈 강한 사람들이 나는 그래서 너무나도 부럽다.


100일 간 나는 묶여있다.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자기 독백이든 뭐든 간에 늘 일보우일보(一步又一步). 매일매일 포기하지 말고 묵묵하게 딱 100일만 걸어보자. 잘하고 있는 거다. 나에게, 또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다른 분들께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용감해지자. 뻔뻔(FunFun)해지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인 도스토예프스키는 40대 중반까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글을 써왔지만 그때까지도 평론가들에게 ‘너저분하게 쌓인 잡동사니 같은 글만 쓴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소 그림을 좀 찾아보려 했는데, 이중섭의 소 밖에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이중섭의 소는 간신히 간신히 온 힘을 쥐어짜서 버티고 있는 모습이라 그 그림과 링크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난 그림은 대지예술가로 알려진 리처드 롱의 물줄기들이었다. 인내와 관련하여 내 머릿속에서 자주 링크되는 이미지이다. 그는 걸으면서 길을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길을 만든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도 지금 이 글과 링크시키기엔 너무 클리셰 하다. ‘노력과 인내와 고통과 실패.’ 그러면 결국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니,


나는 그냥 순진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냥 내 갈길을 갈 뿐. 오늘 내 할 일을 할 뿐.


Alex Katz, Cow, 2004  출처:Artsy



#음메~~?!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funfun하게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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