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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Feb 18. 2023

[100-48] 시애틀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_10

(feat. Olympia Washington)



인상적이다




내가 인상적으로 느끼는 건 무엇이 있을까.


사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에는 오랜 시간 겹겹이 시간을 들여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기계들 장치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세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진기라는 걸 만들어 냈다. 이 때 젊은 화가들을 적잖이 당황했다. 이제부터는 대체 무엇을 그려야 하는 걸까를 고민하고 좌절했다.


무엇을 그려야 하나. 그리고 어떻게 그려야 하나.

많은 화가들은 여전히 고민한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의 이런 고민과 좌절 역시 커다란 줄기 속 인류의 역사 과정을 일부씩은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를 그림에 비유해보자면, 손에 크레파스 같은 도구를 잡을 수 있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냅다 그냥 그린다. 그러다가 점점 형태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이 형태들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나, 엄마 아빠, 내 동생 내 주변에 보이는 타인들 일상들 물건들 풍경들을 어느 정도 묘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대체 어떻게 하면 잘 묘사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주변에서도 사실적으로 묘사가 잘 된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그림을 그리면 ‘너 잘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칭찬하기 시작한다. 이때 묘사하는 기술을 잘 습득한 아이들은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며 그림 그리기를 즐기기 시작하지만, 또 동시에 많은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는 기점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던 몇몇의 젊은 화가들도 고민했다. 완벽하게 잘 묘사하는 것이 잘 그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찍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묘사된다. 굳이 그림으로 오랜 시간을 공들여 그려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그때 풍경을 그리던 화가들 중 몇몇은 빛과 바람, 공기 그 찰나의 순간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포착하기를 열망하기 시작했다. 빛의 순간. 색의 감각들이 오묘하게 변해가는 순간.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던 그 순간.

 

이 느낌을 대체 어떻게 해야 화면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주 모네의 그림을 한참 보고 있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 는 인상주의라는 단어가 시작된 계기가 되었던 그림이다. 이전의 그림들과는 달리 너무 대충 그린 것 처럼 보이는 그림. 눈높은 비평가들이 ‘밑그림만 그린거 아녀?’’아니 그리다 만 그림을 왜?!?!‘ ‘어쩌라는 거임?!‘ ’저게 대체 뭐임?!‘ 할만 하지 않은가. 이미 문화적 사회적으로 잘 그려진 그림들에 눈과 머리가 익숙해져있는데 얼마나 당황했을 것인가. 어떻게 대응했어야 좋았을까. 아니, 우리들의 이토록 대단한 모네를 조롱했다던 루이 르로이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오명을 이 시대에 뒤집어 쓰고 있는데(덕분에 후대에 이름이 알려지는 아이러니함)솔직히 누구였더라도 ‘저거 참 인상적이구나야…‘ 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지 않았겠는가.



지금이야 모네의 그림들이 대단하다고 하니 다시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으로 익숙해지면서 대단한 줄 알게 되는거 아닌가. 어쨌건 이런저런 가십들은 뒤로하고, 모네의 그림들을 모며 찬란한 빛과 생동감 넘치는 터치들. 그리고 같은 사물, 풍경이라도 시간과 바람과 공기와 그 순간의 마음에 따라 변하는 그 찰나의 순간, 변화무쌍해지는 색들에 홀릭되어 그 색들을 어떻게든 잡고 싶어 하던 모네를 보았다.




지금 나는 시애틀에 있다. 핸드폰의 사진기를 이곳저곳에 들이대고 있지만 이 순간순간의 느낌을 한 컷에 담아 둘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 일까. 소중한 것은 시간의 한계를 느낄 때 비로소 인지가 되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인류의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발명(?) 발견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던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떠올린다.



워싱턴 주의 주도 올림피아. 바다와 바다 위에 떠 있던 많은 수의 보트들 옆 로컬 갤러리가 있었다. 그리고 만나게 되었던 그림. 아주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였지만, 무엇을 그린 것인지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었지만, 저것이 들판이겠구나. 저것이 물이겠구나, 저것이 하늘이겠구나 짐작한다.



야외활동을 좋아한다는 Katherine Ransom 은, 땅, 공기,불, 물의 네 가지 요소를 주제로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적인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한 장소의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을 포착하여 표현하려 한다. 그녀는 예술이란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순간을 환기시키는 것이라고믿는다.


큰 사이즈의 그림은 그 사이즈의 위엄때문에 무엇이 그려져 있던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만난던 그림은 아주 작은 화면 안에 있었다. 작은 캔버스 속 모호한 형태들이 대범하게 다가온다. 이 작은 화면 안에서 들려오던 고요한 공기, 고요한 바람 소리를 따라 홈페이지를 찾아가니


어느 곳,

어느 때,

그 풍경 속,

찰나의,


그 순간들.


이 있었다.



https://ransomfinearts.com/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인상적인순간



추가수정예정

내가 붙잡고 싶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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