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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Feb 21. 2023

[100-52] 시애틀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_14

(feat. Raven)

30대때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꿈에 까마귀 떼가 나왔더랬다.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기억나는 장면은 까마귀들이 웬 보자기에 나를 태워 시장 같은 곳으로 데려다주던 장면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걸까.


문득 그 꿈이 기억이 났다. 나는 까마귀를 좋아한다. 아니 까마귀뿐 아니라 웬만한 동물들은 다 좋아하는데, 한라산에서 실제 까마귀들을 보았을 때 참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큰 몸집의 윤기 나는 까만 털을 가진, 그냥 마냥 까맣던 아이들.


문득 다시 생각이 나 꿈해몽을 검색해 본다. 까마귀 떼가 나오는 꿈은 좋은 꿈이 아니란다. 나는 가끔 이 꿈해몽들에 대해서 어이없어하면서도 무슨 꿈인가를 꾸게 되면 의례히 칮아보곤 하는데, 집단무의식에서 바탕한 상징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이해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가진 상징성도 함께 살펴봐야 하지 않나. 개개인이 가진 상징성을 살피는게 프로이트나 융의 꿈해석 기법일 것이다. 뭐 그러나 꿈은 잘 꿔도 꿈의 상징이나 해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므로 의문과 질문은 일단 계속 가지도록 하고,


가지 최상단 꼭대기층에 자리한 새 한 마리. 까마귀가 비둘기처럼 길에서 많이 보이는 곳이라 까마귀 녀석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우연히 캐치된 가지 꼭대기의 그 녀석의 모습에 어쩐지 부러운 마음이 되기도 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날고 싶다. 훨훨. 내 삶을 위해.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두루 살피며 비전을 그려보고 싶은데… 나는 내가 정말 이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갈 자격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아니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어쩔 텐가.


나는 달랑 몇만 원의 비상금만을 가진채로 잠시 미국에 와있다. 엄청난 행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매우 딱하다. 여기서도 나는 늘 그렇듯 내내 분주하고 바쁘게 뭔가 일을 하고 있는데, 나의 생존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고상한 일들이다. 나는 내 힘으로 먹고 마시는 일도, 내가 만든 빚을 내 손으로 갚을 수도 없다.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돈을 벌 수가 없는 어떤 저주에라도 걸린 것만 같아 보이는데, 앞으로도 별로 희망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 점이 매우 두렵고 벅차기만 하다.


관계에는 일종의 역학관계가 만들어지는데, 주체적인 힘이 없으면 그 관계가 틀어져버리면서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지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 된다. 이때 보통 ‘돈’은 그런 역학관계를 아주 쉽게 만들어내는 아주 베이직하지만 아주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시야가 탁 트인 높은 가지 위에서 언제든 날아오를 준비가 된 저 아이를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나는 시애틀에서 정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오늘은 줌수업이 있는데 전기까지 나갔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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