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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Mar 14. 2023

[100-72] 달항아리에 대한 그림노트 중

아… 글을 써야 하는데, 시간을 깜빡 놓쳤다. 내내 생각이 끝도 없이 밀려드는 데다가 다른 글도 써야 하는데 너무 멍한 상태라 지난 글로 대체한다.


無에서 無名으로 혹은 vice versa, Ayla J 2022.09


달항아리가 좋았어요. 저에게는 사실 '특별히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사실 별로 없어요. 무언가 결정되는 것이 싫고, 누군가로 정의되는 것이 싫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이것저것 돌려 말하고, 이거 말하면 저거 말하고 저거 말하면 이거 말하는 반항심이 '꽤' 가득한 사람이에요. 아, 그래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무언가로 누군가로 박제되어 버리는 것이 싫은 사람. 그래서 무언가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매번 마음이 이리저리 산만스럽게 변덕을 부리기도 하니까요.  


제가 처음 만났던 달항아리는 그냥 항아리였어요. 울퉁불퉁 못생긴 달항아리, 유물 항아리들? 사실 관심 없었어요. 조선시대에 그냥 막 쓰여서 막사발로 불렸던 사발이 일본에 가서 보물급으로 칭송받는 이도다완이 된 것처럼. 저도 항아리? 그냥 유물이네...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 생각했어요.


달항아리의 원래 이름은 백자대호, 조선시대 백토도 크게 만들어 올리기 버겁게 좀 약한 편이고, 물레질 스킬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큰 항아리를 만들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사발을 두 개 만들어서 붙였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항아리가 백자대호.


해방 이후가 되어서야 화가 김환기(1913~1974)와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가 달항아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대요. 이후부터 달항아리가 달항아리가 되었는데, 그 이름도 학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2000년대 초까지는 그냥 문화예술인들끼리 나누는 이름이었다고 해요. 2005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관 첫 전시 제목을 공식적으로 '백자 달항아리 전'으로 하게 되고, 2011년이 되어서야 국보의 명칭이 '백자대호'에서 '백자 달항아리'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어요. 인식이 바뀌는 지점들 그래서 막 다루어졌던 것들이 가치를 지니게 되는 순간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또 너무 요란스럽게 예찬하게 되는 지점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숨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정작 달항아리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여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고, 수많은 얼룩들과 크랙들이 마치 나이테처럼 숨겨져 있지요. 약한 몸(흙)으로 불길을 견뎌야 했으니 불길 지나간 자국들이 남아 있을 거고, 유약이 녹아 몸을 코팅하게 되는 순간들에는 들리지 않는 수많은 아우성들이 크랙이 되었을 거예요.  달 같다. 푸근해 보인다, 멋있다,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정작 달항아리 자체는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나는 항아리일 뿐... 이런 느낌이랄까요.  사람들이 예찬하는 순간에는 존재감 뿜뿜 드러내지만, 사실 그냥 구석에 두면 또 공간 속으로 쓱 사라지기도 잘해요. 마치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지~! 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요.  


그래서 달항아리에 호기심이 많이 생겼어요. 제가 달항아리가 좋다 하니, 최근 가까이 지내고 계신 분이 갑자기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오... 그럼 나도 말로만 좋아한다고 하지 말고 한번 그려보자. 그렇게 시작된 9월의 에일라(Ayla도 터키어로 달무리, 달이라는 뜻이에요.) 의 달항아리 탐색전. 앞으로도 주욱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달항아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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