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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클루니 Sep 29. 2024

08화 굽혀지지 않는 허리

꿈이 이루어지는 길

태도는 삶을 살아가는

방향을 결정짓는 나침반과 같다.


– 존 C. 맥스웰


노량진 학원가는 항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금도 있는지 궁금한데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지도원’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대학교의 근로장학생처럼 수업료를 면제받는 대신, 칠판을 지우고 강사님들을 도우며 수업 분위기를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지도원 중에서도 대장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다가와 우유 한잔을 하자고 했다. 당시 학원에서는 건강을 챙기는 의미로 우유를 많이 마셨다.


우유 선택할 때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건강을 생각할 때는 흰 우유, 졸음을 쫓을 때는 커피우유, 달달한 게 생각날 때는 딸기우유를 골랐다. 그날 지도원은 흰 우유 두 개를 사서 하나를 내밀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올라왔길래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나요?”


그 말투는 마치 내가 산골짜기 시골에서 올라와 절박하게 공부하는 사람처럼 들렸다.


사실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서 태어나 그 지역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하지만 생김새나 느린 말투 때문인지 충청도 시골 출신으로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았다. 반대로, 우리 집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사는 지역만 얘기를 듣고 부유한 ‘오렌지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의 질문이 재밌어서 바로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되물었다.

“지도원님은 어디 사세요?”


“얘기해도 잘 모르실 텐데 저는 강북이란 곳에 살아요.”


“아~~ 네...”


그 순간, 그가 나를 시골에서 상경한 학생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는 이어서 또 물었다.

“학원생들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수험생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별명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그는 내 별명이 ‘굽혀지지 않는 허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는데 노량진에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세운 다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절대 학원에서 허리를 숙여 자지 말자!”


이런 단순한 다짐이 나에게 ‘굽혀지지 않는 허리’라는 재미진 별명을 안겨준 것이다.


시험 합격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태도로 이 과정에 임했는가였다. 그 과정에서 쌓인 시간과 노력이 결국 나를 만들어갔다.


‘굽혀지지 않는 허리’라는 별명은 단순히 공부하는 자세를 넘어, 나만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하는 숨겨둔 애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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