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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클루니 Sep 15. 2024

06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꿈이 이루어지는 길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비비안 그린 -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용인 캠퍼스에서 사회체육을 전공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었을 때는 영어학과를 복수 전공하게 되어 주로 서울 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었다.


학업도 중요했지만, 나는 서울 YMCA 소속 체육대학 연합 서클의 회장을 맡으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1999년, IMF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가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국가적 경제 위기는 우리 가정에도 영향을 미쳤고, 등록금을 마련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고, 학교는 등록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제적하겠다는 공지를 발표했다.


나는 그때 바쁜 일상에 휩쓸려 그 공지의 중요성을 모르고 지나쳤다. 한 달 후, 가까스로 등록금을 마련해 학생처를 찾았지만, 이미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제적 처리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가 올해 졸업을 앞둔 4학년이라구요."


믿기 어려웠던 나는 강하게 항의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 측은 운동권 학생들을 제적하는 과정에서 불행하게 포함되었다고 설명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제적되었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IMF로 인해 가정 형편의 어려워져 등록금 납부 지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내 책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항의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편지지를 사서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은 혼란스럽고 힘들겠지만, 이 상황을 받아들이자. 시간이 지나면 이 일에도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거야. 그러니 잘 이겨내 보자.’


그 후 남은 등록금을 어떻게 쓸지 고민 끝에, 평소 어렵게만 느껴졌던 영어 공부를 위해 강남역 부근에 있는 학원을 등록했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곳에 등록금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적된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특히 나를 신뢰해 주던 선후배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고, 서클 회장 역할도 이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았다.


꿈속에서 흙탕물에 휩쓸려 내려가며 아무리 도움을 청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악몽처럼, 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그러던 중, 종로 YMCA에서 수상 인명구조원 자격증 과정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1학년 때 수영을 배우려다 황당한 사고로 귀를 다쳐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제적이라는 정신적 고통을 신체적 도전으로 극복해 보자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신청했다.


테스트 날에 낡고 오래된 종로 YMCA 수영장에 들어가 보니
물왁스 냄새가 진하게 나고 굳게 닫힌 낡은 철문을 보는데 내가 도대체 여기에 왜 와 있나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에 간신히 테스트를 치렀다.


지원자 중 수영 실력이 가장 부족했지만, 연합 서클 회장이라는 이유로 자격증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매일 8시간씩 15일간 수영과 워터 레슬링 등 혹독한 훈련을 반복했다.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텨야만 했다. 내가 속한 서클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으니까.


특히 3미터가 넘는 깊이의 수영장에서 진행된 워터 레슬링 훈련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방어만 가능한 상황에서 나를 공격하던 덩치가 가장 좋은 강사는, 우리 서클과 경쟁 관계에 있던 종로 YMCA 부회장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물속의 사지로 몰아붙였지만, 결국 끝까지 견뎌냈고 마침내 인명구조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YMCA 인명구조원 자격증은 단순한 자격증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이겨내고 나 자신과 싸워 얻은 소중한 마음의 훈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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