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 톨스토이 -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학교에 왜 오나요? 축구하러 오나요?"
당시 공부는 뒷전이었고, 운동장에서 뛰어다니기 바빴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셨지만, 나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서운 아버지가 외국으로 떠나신 후 집에서는 해방감을 느꼈지만,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었다. 축구를 잘 못했던 나는 공을 뺏기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곤 했다. 덕분에 친구들은 나를 피하게 되었고, 축구팀에서도 항상 마지막에 선택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나는 더욱 과격해졌다.
어느 날, 또 거친 축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그렇게 하면 친구가 없을 거야."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싸우자는 거야?"
다행히 주변 친구들이 나를 말려 싸움은 피할 수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내게는 진정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축구를 하면서 거친 몸싸움을 자제하고 페어 플레이 하기로 결심했다. 내 안의 아버지의 폭력으로 거칠어진 마음은 운동장에서 뛰는 것으로 풀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은 물론, 축구 실력도 나아졌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그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축구와 농구를 하며 운동장에서 살았다. 덕분에 실력도 늘었고 친구들도 많아졌다. 결국 고3 때, 체육대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비록 목표였던 전기 서울의 명문 대학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운 좋게 후기 대학교 사회체육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했고, 제대 후 2학년을 마쳤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주어졌다.
하나는 체육교직을 이수하면서 선배들이 제안한 4개 체육 관련 학과 연합 회장을 맡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친한 친구가 추천한 영어학과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영어가 앞으로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서울캠퍼스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결국, 영어학과 복수전공을 결정했다.
영어는 거의 못하는 상태였지만, 어느새 나는 서울캠퍼스 영어학과 첫 수업의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날 칠판에는 이전 수업의 판서가 가득했다. 수업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아무도 칠판을 지우지 않았다. 첫 수업인데 교수님이 불편해하실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가 칠판을 지웠다.
낯선 내가 그런 행동을 하니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칠판을 깨끗하게 닦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 이후, 들어가는 대부분의 수업에서 칠판이 지저분하면 계속해서 지워냈다. 반복적으로 칠판을 지우니까 마음도 함께 정화되는 것 같았고, 교수님과 학우들을 위해 작은 기여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수업에서 칠판을 지우는 사나이가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는 칠판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아무도 칠판을 지우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을 하다가 수업 시간마다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가 곧 졸업을 합니다. 저는 근로장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이 작은 행동이 수업 분위기에 기여하고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떠나더라도 후배님들 중에 누군가 용기를 내어 칠판을 지우는 분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대학교를 떠났다. 지금도 가끔 칠판을 떠올린다. 과연 누가 그 칠판을 지우고 있을까, 칠판은 여전히 깨끗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