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는다.
- 공자 -
영어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원서로 된 교재를 받았을 때, 아는 단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보통은 모르는 단어에 형광펜을 칠하고 사전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때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는 단어에만 형광펜을 칠하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일주일 내내 원서를 들여다보며 해석이라기보다는 단어 찾기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열심히 단어를 찾고 있던 내게 한 남학생이 다가와 메모를 건네며 잠깐 밖에서 보자고 했다. 의아해서 나가 보니, 본인은 신입생인데 영어 해석이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잘 모르겠다며 도움을 청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솔직하게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도서관에서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나를 봤다며 그리 어려운 문장은 아닐 거라며 다시 부탁을 했다. 그 순간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문장을 받아 들고 도서관 안에서 도움을 줄 다른 영어학과 학생들을 찾으려 했지만 그날따라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자리로 돌아와 사전과 씨름하며 문장 속 단어들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생이 다가와 해석이 다 끝났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잠시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단어들을 어렵게 찾아낸 후, 대충 의미를 끼워 맞추어 그럴듯하게 해석 아닌 해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 반드시 다시 확인해 보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 후 신입생은 고맙다며 내 자리 위에 커피 한 잔을 두고 갔다. 하지만 달콤해야 할 커피는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몇 주 뒤, 본관 1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신입생을 우연히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나를 못 본 척했다. 내가 해준 해석이 맞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을 겪었던 걸까?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생각난다.
어릴 적부터 축구와 농구를 즐기며 운동장에서 뛰어다닌 덕분에 피부는 항상 검게 그을려 있었다. 복수전공을 하면서도 틈틈이 농구를 하다 보니 내 피부는 여전히 그랬다. 그러던 중, 아랍어 학과 다니는 후배와 농구를 하며 알게 되었다. 그는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금세 친해졌고, 우리는 서로 존대를 하며 지냈다. 어느 날 그가 내 전공을 물었고, 나는 사회체육학과를 다니다가 지금은 영어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한동안 그 후배를 보지 못했는데, 어느 날 본관 1층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오랜만이라 눈인사만 하려는데, 그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선배님, 북한학과 다니시죠?"
그날따라 엘리베이터 안은 여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당황한 나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니에요."
그러자 그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에이, 선배님 북한학과 맞으시잖아요."
" ... "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여학생들이 힐끔거리며 내 까만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참는 모습이 보였다. 창피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내릴 층에 도착해서 변명도 못하고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사실 그 시기에 북한 벌목공이 뉴욕 타임스 표지 모델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야외 운동을 즐기다 보니 피부가 까맣고 생김새도 벌목공과 닮았다며 종종 놀리곤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북한학과’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난감했다.
며칠 후, 그 후배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보니, 그는 웃으며 본인이 기억을 잘 못 했다며 사과를 했다.
어쩌면 그날 엘리베이터에 있던 여학생들은 아직도 나를 북한학과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면 오래전 만났던 신입생과 아랍어학과 후배의 안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