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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클루니 Sep 22. 2024

07화 마법지팡이가 있다면

꿈이 이루어지는 길

꿈이 없는 인생은

목표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


- 스티븐 코비 -


2000년 봄, 다시 대학교 4학년으로 돌아왔다. IMF로 인해 제적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재입학을 했고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체육학과 영어학을 복수 전공을 했지만, 내세울 만한 특별한 능력은 없었고,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두 전공을 살리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마음을 사로잡은 소명이 청와대 경호실이었다.


나는 가정이든 회사든 어떤 조직이건 대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라의 대장을 모시는 일이라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을 존경하는 시기라 기회가 된다면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한 번은 대학 교양수업에서 꿈에 대해 발표할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청와대 경호실장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내 꿈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때 나에게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마법지팡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청와대 경호실장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첫 번째는 청와대 7급 공무원으로 시험에 합격해 임용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이 제한이 28세 이하였기에 늦게 시작한 나는 서둘러야 했다.


두 번째는 경찰 9급 공무원 101 경비단 시험을 보고 들어가 근무하며 우수한 평가를 받아 경호실로 특채가 되는 길이었다.


나는 27세에 조금 늦게 시험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로 노량진 학원가 근처의 1.5평의 고시원에서 수험생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반년 만에 처음 치른 경찰 101 경비단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이어진 체력 테스트도 무난히 통과했다. 이제 친가와 외가 8촌까지 신원 조사와 최종 면접만 남겨두었을 때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고향 선배분이 청와대 고위직에 계신다며, 그분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셨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배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낮은 톤의 굵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권위와 무게감이 강렬했다. 그분은 내가 101 경비단에 들어와 근무 잘하면 청와대 경호실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감사한 마음에 두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다음 날 아버지에게서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그 선배분이 도움을 주는 대가로 먼저 500만 원을 요구했고, 합격 후에는 추가로 500만 원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이야기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소명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그 일에 그런 치사한 방식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아버지께 단호히 말했다.


"아버지, 저는 그렇게 청와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제 실력으로 당당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만약 떨어진다면, 그 돈으로 더 노력해서 수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볼게요"


아버지는 고민 끝에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결국 그 청탁을 거절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 면접에서 이유도 모른 채 떨어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몹시 아쉬워하시며 며칠 동안 술을 드셨고, 나는 다시 열심히 준비해 꼭 합격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수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2년마다 치러지는 경호실 시험은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이번에는 필기시험에서 탈락을 했고 나이 제한으로 인해 다음 경호실 7급 공무원 시험은 더 이상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안 하던 공부 한다고 눈도 나빠져 고가의 라섹 수술까지 받으며 다음 경찰 101 경비단 시험을 준비했다. 그때 들인 수술비며 학원비에 고시원 비용을 합치면 청탁 비용의  두 배는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많이 상심하셨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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