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클루니 Aug 18. 2024

1화 유치원에서 생긴 일

꿈이 이루어지는 길

지진은 샘을 드러낸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과 동물원과 산과 바다 다녀온 그림을 그리는데 나는 네모난 카스텔라 빵을 그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원장 선생님께서 멈추어 서서 그림을 지켜보시다 물으셨다.

" 이건 무슨 그림이야? "
" 배가 고파서요. "
" 배가 고파서? "
" 네~ 먹고 싶은 카스텔라 빵이에요."
" 왜? 아침식사를 못했구나? "
" 네~ 배가 고파요... "
하는 대답과 함께 눈물이 카스텔라 빵 그림 위로 뚝뚝 떨어졌다.

전날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시고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고 어머니는 다툼에 지치셔서 누워계셨다.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식사를 챙겨주던 연재 누나도 없어서 저녁과 아침 못 얻고 먹고 우울한 마음으로 유치원 버스를 타고 등원을 했다.

그림을 그리다 원장선생님의 질문에 눈물을 흘리던 나를
선생님께서는 유치원의 내실로 데리고 가시더니 정말 내가 그린 그림과 닮은 네모나고 노랗게 보이는 카스텔라 빵과 따뜻한 우유를 한잔 주셔서 그 자리에서 울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을 떠올리면 행복했던 기억보다 무섭고 두려움 느낌으로 가득 찬다.

잦은 부모님의 다툼에 집안 살림들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날들이 많았다.

내가 태어난 신사동은 강남이지만 다른 강남 동네에 비해 상가들이 많았고 당시에는 빈민지역에 가까웠다.
그래서 불량기 있는 형들도 많았고 실제로 고등학교에 가보니 일진에 포함되어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동네에 무서운 형들도 나랑 두 살 어린 남동생은 건드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동생이 노는 형들과 어울려 오락실에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동생을 끌고 다니면서 그 형들을 찾으러 다녔다.
어렸을 때 우리 키보다 큰 각목으로 동생을 때리면서 찾아다녔으니 무서운 형들도 우리 아버지 보기를 호랑이 보듯 했을 것이다.
그때 동네 주민들이 신고를 해서 경찰들이 출동을 해서 아버지를 잡아 간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마음에 안 드는걸 특히 못 참았다. 특히 거짓말하는 걸 싫어했다. 한 번은 시험을 보고 혼나는 게 두려워 성적표에 틀린 개수를 고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귀신처럼 알아내셨다.

저녁에 방에 들어오시더니 갑자기 냉면 사발을 갖고 오셔서 거기에 물을 붓더니

무슨 약을 타는데 갑자기 물이 붉은색으로 점점 변해갔다.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몸싸움을 하시면서 대신 마시려고 하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던 게 기억난다.

그 당시에는 동네에 쥐가 많아서 죽이게 하는 약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고 그 뒤로는 아버지 앞에만 서면 붉은색 물이 떠오르며 두려움에 앞뒤로 흔들리는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나는 아버지 앞에만 서면 어지러움증이 생겼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겁이 별로 없었다. 우리 둘 다 다양한 체벌과 폭력에 익숙해져서 맷집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성실하시고 책임감은 정말 강하셨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들거나 거짓말하면 무섭게 돌변했다.
어느 겨울에는 국민학교 저학년인 동생과 내가 뭐가 그리 큰 잘 못을 했다고 추운데 옷을 벗기고 맷돌을 머리 위로 올리게 하고 더 춥게 한다고 찬물을 끼얹었던 적도 있었다.

무섭기로 유명한 아버지 덕분에 동네 형들에게는 괴롭힘 없이 지냈지만 우리 형제는 늘 두려움에 떨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