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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Hee Oct 03. 2024

무심코 장난으로 던진 돌이었을까

퇴사를 결심하게 된 순간들


어느 평범한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 우리는 밥을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했다.


지나가는 길에 뻗어진 손과 전단지. 이 또한 익숙한 일상이었다.

팀장님이 선뜻 받으셨고, 우리는 그 길을 지나 같이 걸었다.


팀장님께서 종이를 접어들고 다니시는 게 신경 쓰여 찾다 보니, 내 옷이 배에 주머니가 있는 후드가 아닌가! 가벼운 마음으로 "종이 넣어드릴까요?"라고 여쭈었더니 돌아온 말은


"들고 다니기 싫어서 받지 않은 거 아니에요? 원래 이런 거 안 받죠?"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황당하기도 하고, 주로 받으려 하는 내가 억울하기도 하여 "원래 잘 받아요."라고 했지만, 그날 들은 한마디는 평소에 이분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대화였는데, 그 안에 내포된 이기적, 개인적, 무심한 이미지가 연상되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느 날은 개인 성과 지표를 두고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업무량, 직무, 개인과 팀의 성장, 적성 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에 최대한 솔직하게 임하고 싶었다.


오랜 기간 3인 체제에서 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을 받아왔던 터라,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도 팀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며 일하고 싶어요. 지금은 약간... 살짝 겉돌고 있는 느낌이에요.”

나의 바람과 솔직함이 튀어나오면서 내색은 안 했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 울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우리 둘은 서로 업무 얘기밖에 하지 않아요."라는, 더 이상 조언이나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냉담한 대답이었다. 개별 면담이기에 더 솔직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내게 더 큰 허무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필 같은 날, 팀장님이 내가 나 자신을 셀프 평가한 항목을 캡처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내 솔직한 이야기를 할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여쭈어 보니 내 이름을 보았냐는 질문과 “오늘 면담을 위해 캡처했다”는 한마디뿐이었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팀장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또 나누지 말아야 할 부분을 누군가에게 쉽게 공유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날 느꼈던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많은 업무 부분에서 허덕이고 있었을 때, 그녀가 내게 업무가 많냐고 물었다. 주말에 고민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주말 동안 정리해 보니, 두 업무를 덜어낸다면 내가 좀 더 나아질 것 같았다. 실제로 백엔드 포스가 많았던 업무들이었으므로, 더 집중해서 남은 것들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두 업무를 말씀드리자 바로 손을 떼라고 하셨고, 그날부터 나의 일일 보고가 시작되었다. 나의 퇴근 시간까지 공개될 수 있게, 다음 날이 아닌 퇴근 전에 꼭 보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일일 보고는 퇴사 날까지 계속되었다. 업무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면 편하지만, 그간 4개월간 나에게만 요구되는 부분이었으므로 공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다른 방법으로 나와 소통할 수는 없었을까 싶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 생각, 말투 모두 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를 함께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감정과 생각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행동했다. 없으면 좋고, 더 빨리 사라지면 좋고,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들은 무심코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피하지도 않고 너무 정통으로 맞은 것 같다. 셋 중에 둘이 이상하다고 하니, 결국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되는 순간도 많아졌다. 계속 쌓여 이러한 순간들만 내게 남으니, 결국 나는 서 있을 자리조차, 숨 쉴 구멍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내 감정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아픈 부분들을 돌보고 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믿고,

아직은 얼떨떨한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앞으로는 나를 위한 결정을 결코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큰 배움을 얻었는데, 나름 호되게 배우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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