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자신에 대한 자각
나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는 아주 얕은 경계선이 있다.
마치 물이 가득 찬 유리잔이 작은 진동에 넘칠 수 있는 것처럼,
이 두 감정의 경계 역시 종이 한 장만큼이나 얇고 가볍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감정이 풍부하다고 했다.
기쁨도 그만큼 자주 느끼지만, 금세 잊어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식어버린 나는 요즘 부쩍
"아니, 행복하지 않아."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
하루빨리 다시 일어서서, 건강을 회복해서, 아무렇지 않게
그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겼다.
그래야만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상태가 되어 내 자신이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상황과 사람 때문에 힘들었으니,
그것을 이겨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듯하다.
아니, 이런 마음이라면 그들을 의식하다가
내 풀에 지쳐 쓰러질 것 같다.
‘그들 말이 다 맞았다’라며
반박 한 번 할 수 없이 말이다.
진정한 복수는 세상에 없다. 그들은 내게 다시 조언을 줄 사이도, 다시 만날 사이도 아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나의 페이스를 찾는 것만이 올바른 답이었다.
결국 나 자신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필통 안에는 쓰던 두 개의 검은 펜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두 펜 모두 잉크가 바닥났다.
계속 써보려 해도 펜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펜 심을 교체하거나 새로 사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힘이 바닥났다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에너지를 꾸준히 채워줘야 한다.
나의 경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과 여행이 주는 쉼이 크게 작용하므로 내 시간 안에서 허락된 여행과 배움, 휴식을 계획해 본다.
일상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도, 내 삶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도
나의 속도대로, 나의 방향대로 하면 된다.
무엇을 더 원하고 바라기보다, 일상에서 내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기쁨은 더 깊게, 오래 남을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생각나는 지인의 말이 있다.
“파도가 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해. 파도가 한참 멀리 있는데 지금부터 헤엄쳐 간다면, 파도가 도착했을 때 이미 지쳐서 파도를 탈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잠잠히 기다리고, 파도가 오는 타이밍까지 기다린다면 도착하는 타이밍에 멋지게 파도를 탈 수 있겠지.”
나에게 기다림과 인내는 항상 어렵다.
무한 루프처럼 인내와 조바심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잘 알지만,
결국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나의 배움을 좌우할 것이라 생각한다.
파도가 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
헤엄쳐 오는 파도와 짠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