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초적인 모형, ㅇ
남편 일정에 맞춰 떠난 1박 2일 제주 여행.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곳에서 특별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제주국제아트페어."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한 작품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나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입니다. 제가 작품에 대해 잠시 설명드려도 될까요?"
"동그라미. 참 쉽고 기본적인 모양이죠?
저는 이 단순하고, 가장 원초적인 동그라미를 사용해 작품을 그립니다.
동그라미는 기본적이고,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아주 쉬운 모양이죠.
저는 그 익숙한 모양을 통해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고 싶어요."
그녀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그 단순함 속에 나를 내려놓았다.
매일 우리는 동그란 원을 그리며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원이 완성되지 않음에 자꾸만 집착해 왔다.
그런데 겹겹이 쌓인 동그라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미 완성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묘한 위로를 받았다.
작가는 말을 이어갔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매 순간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매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죠.
그 순간, 내가 동그라미 속에서 찾은 위로가 더 선명해졌다.
겹겹이 쌓여있는 동그라미는 우리의 삶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이어져 동그라미처럼 끝없이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작가는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불멍 대신 자주 '작품멍'을 해요.
퇴근 후 좋아하는 작품을 와인과 함께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거죠."
어쩌면 나 역시 그림 앞에서 나만의 '작품멍'을 즐기고 있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