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0대가 고작 6개월 남았습니다. 저의 20대는 치열했습니다.
초기에는, 제가 20대가 되었다는 기쁨 탓인지 해보고 싶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 두려움 보다 훨씬 더 컸던 열정으로 겁 없이 이것 저것 도전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초기가 끝났다고 볼 수 없을 무렵, 파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됐고, 어린 주제에 건강을 꽤 잃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만큼 지고 싶지 않아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고시 합격 후 공대로 돌아갔을 때 20대 중반이었습니다. 나름의 전성기를 즐기는 듯 보였을테고, 실제로도 20대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분 단위로 쪼개 쓰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습니다. 기차 엔진을 폭발 직전까지 돌려 목적지에 도착했고 기찻길은 끊겨 앞으로 갈 수 없는데 엔진을 멈추지 못해 뜨겁게 공회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엔진이 터질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종교가 없어 상대방도 없는 공허한 기도였습니다.
제게 자라난 큰 가시들을 그렇게 없애던 중 사법연수원에 입소했습니다. 중반이라고 해도 되겠지 싶었던 27살에 사법연수생이 됐습니다. 또 다른 '참고 견디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쫓아가야 할 커리큘럼만으로 벅찼지만, 저에 대한 생각을 놓치게 되면 다시금 공회전하는 기차가 되어 버릴까 두려웠습니다. 교과와 무관한 책을 언제나 곁에 두었고, 생각했습니다.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을 내려야 새로운 것을 손에 쥘 수 있음도 배웠습니다. 절대 주먹을 있는 힘껏 쥐지 않았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초기보다 아주 조금은 현명하게 참고 견뎠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기관에 몸담아 2년 동안 갈고 닦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니 29살이 되어 있었습니다. 빼도 박도 못할 후반이었습니다. 사회라는 호수에 엄지발가락을 담궈 보았습니다. 호수는 눈으로 보는 것 보다 많이 차가웠습니다. 얼음 낚싯대를 가져올까 싶을 만큼. 같은 호수에 엄지를 담그고 있는 동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대에 마냥 멋져 보이는 것, 있어 보이는 길을 택했고 그 길의 끝에 있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걸어왔는데, 요즘 그렇게 경솔한 20대를 보낸데 대한 벌을 크게 받고 있는 것 같다."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종일 그 말만으로 머릿속을 꽉 채울만큼.
남은 6개월의 20대는 어떨까요. 물리적인 것들은 대충 예상이 되지만, 그 속에서 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작년까지만 해도 20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아온 제 20대에 자신있었습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태어난 이후 처음 했습니다. 10대 때 뿌리 뽑지 못한 질풍노도의 씨앗이 다시 자라나고 있나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