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오래 전 검찰청에 근무하며 부검에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시체를 본, 처음이자 (지금까지의) 마지막 경험이었습니다.
부검 대상은 전날 새벽에 자택에서 돌연사한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성이었습니다. 남성은 사망하기 몇 시간 전, 첫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부부 싸움을 했습니다. 아내가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남편에게 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언쟁으로 번져 부부 싸움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안 방으로, 남성은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으로, 각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작은 방 컴퓨터 의자에 앉은 채 그대로 뒤로 꼬꾸라져 있는 남편을 발견했습니다. 남성은 이미 사망해 있었고, 아내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남성에게는 자살 시도의 흔적 등 외상이 전혀 없고, 평소 앓던 심각한 지병도 없었습니다. 사인 규명을 위해 유족의 동의 하에 부검을 실시했습니다. 부검에는 적어도 한 명의 유족이 참관해야하므로, 남성의 처남이 참관했습니다. 저도 바로 옆에서 부검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부검에 참관하기 위해서는 아주 아주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개복하여 오장육부 등을 확인하고, 머리를 열어 뇌를 꺼낸 후 뇌를 얇게 절단하여 특이 사항을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검을 시작한 지 1시간 이상 지났고, 사인은 뇌출혈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부검의를 통해 들은 바로는, 혈압 상승 등 요인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뇌혈관 중 한 곳에 출혈이 발생하면, 혈액이 유입되면 안되는 부분에 혈액이 퍼져 그 압력 탓에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경우에 따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5시간 이후 사망한다고 합니다. 남성은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하고 혼자 작은 방으로 들어간 후, 새벽 1시 경 뇌출혈이 발생하여 그로부터 약 3시간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만약 부부가 같은 방에 있었다면, 남성은 뇌출혈이 발생했더라도 3시간이 경과하기 전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부검의는 출혈 후 사망 전에 응급처치를 할 경우 생존가능성이 있는 케이스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수사 결과, 남성에게 뇌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벽 1시 경, 남성이 컴퓨터로 음란 동영상을 시청한 IP 접속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부부가 싸움을 하지 않았거나 컴퓨터가 없는 안 방에 부부가 함께 있었다면, 남성에게 뇌출혈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와 이런 가정 따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 또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최근 메리 로치의 "인체재활용"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시체의 무한한 활용도, 시체를 활용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 시체 실험이 우리 생활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 등을 소개하며, 시체는 망자가 남기고 간 양말과도 같은 물건일 뿐이므로 망자의 존재와 철학적으로 연관 지어서는 안된다는 메세지를 던집니다. 시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다양한 기술의 큰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훨씬 윤택해 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쉽게 말해, 막 써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책을 읽고 보니 실제로 제가 상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시체가 활용되어 왔고, 앞으로도 시체를 활용할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시체"라는 단어가 5천 번은 나온 듯 한 이 책을 읽는 동안, 부검 참관시 제 시야에 들어온 장면이 다시 눈 앞에 자주 그려졌습니다. 상세한 부검 과정을 알아버린 이상 "소중한 사람 또는 내 자신의 부검에 동의할 수 있겠냐?"라는 질문에 절대 선뜻 "Yes!"라 답할 수 없는 것으로 봐서, 이 책의 메세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네요. 아직 저는 존재와 신체의 철학적 연관성을 무시할 수가 없나봅니다.
부검 참관은 값진 경험이었지만, 한편 모르는게 약이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