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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파르 Oct 30. 2020

시험 그리고 믿음과 속음

2016년 5월


사법연수원에서의 모든 시험이 끝났습니다. 수능 준비하겠다고 녹색 책상을 두 개 붙여 3학년 10반 TV 뒤에 자리를 잡고부터 햇수로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수능, 대학 시험, 사법시험 1차, 2차, 연수원 1학기 시험, 2학기 시험, 그리고 3학기 시험까지. 매 시험마다 당시 준비하던 것이, 이보다 더 벅찬 것은 없을거다 싶었는데도, 한 고비 넘으면 더 강도 높은 것들이 나를 반겼습니다. "어서와..." 하면서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며 2시간 동안 8장의 서면을 써내는 것도 버거워 손가락에 파스를 덕지덕지 바르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 3학기 시험을 치면서 머리카락이 천장에 닿겠다 싶은 정도의 초싸이언 상태로, 빨리 감기를 한 모습 마냥, 7시간 동안 40장의 서면을 써내려가는 저를 보았습니다. 사법시험 2차 시험 때 지금의 이런 제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 듯, 제가 걸어가고 있는 길목의 아주 먼 곳에, 초싸이언으로 7시간 동안 40장의 서면을 쓰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닌 끝판 대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라는 그 믿음이,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것. 그냥 그렇게 믿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그 때, "속았다..." 하면서 또 하고, 믿고 속고, 또 믿고 속고.


이번 3학기 시험을 준비하던 기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자고,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제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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