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후지산의 높이는 3,776m 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이 1,915m인 것에 비하면, 아주 높습니다.
후지산은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자연 보존을 위해 연중 7, 8월 두 달 동안만 개방됩니다. 산 아래부터 정상까지 1 고메부터 10 고메까지로 구분해두었고, 버스를 타고 중턱인 5 고메(고도 약 2,400m)에 도착해 그 곳에서부터 정상까지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고도가 높아 산소가 부족합니다.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야마구치 산장은 7 고메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지기 전에 산장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서두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서두르면 호흡이 가빠지고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산소가 부족해서 고통스럽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쉬지 않고 나만의 템포에 맞게 꾸준히 발을 옮기는 방법 뿐입니다. 후지산 아래에서는 등산객을 위해 부탄가스 모양의 소형 산소통을 판매합니다. 산소통을 사려고 했던 제게 동행자인 친구들이 "쫄보가?" 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저는 마음을 돌려 산소통을 사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폐가 큰 남자는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는데, 쫄보냐고 제게 큰소리 쳤던 친구는 야마구치 산장에서 (아주 비싼) 기계식 산소 호흡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때 평정심을 잃고 거친 언어를 입에 담았는데, 같은 산장에 있던 서양인들은 어쩌고쉐키, 저쩌고쉐키 하는 저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야마구치 산장은 (후지산이라 그런지..) 후집니다. 하지만, 숙박비는 1박에 한화로 약 6만 원 가량입니다. 국내 국립공원 대피소의 숙박비가 1박에 1만 원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지요. 산장에서 판매하는 기린 맥주는 1만 5천 원, 우동은 2만 원입니다. 자연 보호를 위해 물자 운송을 위한 트레일러 또는 헬리콥터 착륙장 등을 전혀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산장의 모든 물건은, 제가 제 몸 하나 건사하면서도 오기 힘든 이곳까지 누군가가 지게를 지고 운반했다는 뜻입니다. 세 배는 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산장에서 저는 누운 상태에서 몸을 회전만 하더라도 양 옆사람 둘에게 강력한 어깨빵을 할 수 밖에 없는 좁은 폭의 공간에서 자야만 했습니다. 제가 어깨가 넓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렇게 쪽잠을 잔 후 새벽 2시에 일어나 10 고메로 향했습니다. 비 오는 새벽 2시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회의감으로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3시간 뒤, 3,776m 후지산 정상 매점에서 마신 호또 고히(hot coffee)는 그야 말로 예술이었습니다. 거지꼴이나 다름 없었지만, 제 몸을 가득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깥으로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이 충만했던 그 성취감은, 그 순간 저를 누구도 부럽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밀당의 고수인 산은 항상 이렇게 제 마음을 농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