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맞아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상처와 고통과 아픔... 절대 사라지지않는 악몽이 되어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높은 곳에 올라가고, 험한 물줄기를 내려다 본다. 두병 가득 채운 하얀 알약을 차분히 세어 본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않는 하찮은 삶... 죽을 힘을 다해 헤쳐 온 지금까지의 장애물보다 훨씬 더 힘들고, 잔인한 많은 것들이, 마구잡이로 내게 덤빈다.
내 잘못 아닌 다른 사람의 허물로, 대신 나라도 값을 치루려 침묵으로 버텼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선 비난과 비웃음을 참아낸다. 오늘도 또 살았다고, 살아있다고, 살아져왔다고 위로하며 1분 1초마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계속 살기로, 조금만 더 살아보기로..
그렇게 벌어 들인 돈은, 매 한대 값, 하루 일당, 주급, 월급… 그리고 이제 다 끝났으니 더더욱 볼일 없다, 끊어지고 차여 퇴직금처럼 던져졌다. 매. 값.... 멍이 들고 피고름 흐르는 지금까지의 일들은 모두 ‘끝이다’ 라고 말한다. 맞고 산 내가 아닌, 때리고 산 그들이,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부추기던 인간들이… 모른척 잊은 척 하던 저것들이, 내게 ‘끝’을 명한다.
매값은 그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적당히 잘 치뤘으니 다 없던 일로 해라, 성의 표시다, 안 죽었으면 됐지, 네가 망친 우리 인생은 어쩔껀데?? 너 하나 때문에 완벽하던 우리 가족이 다 까발려졌다, 명예 훼손이고 가정 파탄이다, 너 까짓것 때문에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입는 피해는 뭘로 보상할거냐...
‘매 값’
당신의 매 값은 얼마인가? 얼마면, 맞아주겠는가? 평생, 매일, 죽을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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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보스’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여러 차례 방송을 타며 조금 유명세를 겪었지요. 올해 40세인 카라는 미국 입양아입니다. 2살로 추정되는 어린 나이에 이름도 이야기하며 대답도 하는 똑똑한 아기였다고 서류에 써있습니다. 83년도에 비싼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충청도의 한 시골 동네에서 발견되었지요. 기독교 집안에 입양되었고, 공부을 마친 후에는 네델란드에서 가정을 꾸립니다. 그곳에서도, 입양아 모임을 주도합니다.
저하고는 미국 입양아 모임 (온라인) 에서 알게 되었고, 가끔 안부나 묻고 한국 실정이나 법률 서류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냥 수많은 SNS친구 중 하나입니다. 처음 한국에서 아버지를 찾았다고 했을때 함께 기뻐하고, 그쪽이 여러 차례 만나기를 거부하면서 같이 열내고… 소송 끝에 겨우 명령이 떨어져 드디어 만난다 잠시 착각했지만, 결국 선글라스에 모자로 온통 얼굴을 가리고 경호원까지 대동한 생쑈를 보고... 미안함에 차마 위로 조차 하지 못해 혼자 분을 삭히던…
이어지던 잡음, 뉴스, 방송... 몇번이고 계속된 업다운에 지쳐 댓글마저 쉬던 어느 날, 다시 메세지가 떴습니다. 법적으로 형부되는 사람이 이매일을 보냈다지요. 언니가 셋이나 있는데도, 형부라는 사람이 보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례는 이미 다 끝났으며,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가족 증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첨부 파일에 등본 사본이 있었습니다. 늦둥이 막내 딸이었습니다.
강남의 재력가셨습니다. 카라 위로 나이차 많은 세 언니는 모두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잘 성장했으며, 쉽게 인터넷으로도 검색이 되는 유명인입니다. 정말 화가 나는 건… 그 어린 카라를 아무 연고 없는 시골까지 데려가 버스 터미널에 유기하던 그 무렵에, 귀하신 첫째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참 잔인하지 않나요… 박사 마치고 돌아와 현재는 음대 교수를 하고 있다네요. 친부께서 클래식을 좋아하셨다지요...
방송 보신 분들이 더 잘 아실겁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었었습니다. 이십여만명의 입양인 중에 정말 한두명이 누리는 영광… 방송이라는 걸 탔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후폭풍 (저한테만 보이는??) 이 만만치 않습니다. 카라가 한국말을 잘 몰라 게시판을 보지 못하는게 다행입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유산으로 30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돈 있는 집 딸이었으니까 당연히 (정말 당연히 !) 자기 몫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기사를 보고 이렇게 놀라고 실망하는 이유는, 그 돈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30억 받았으면 조용히 살아라… 가족들 착하네, 나눠주고… 잘 살고 있는데 이복 동생 나타나면 나같아도 끔찍하겠다… 잘 사는 집이던데 완전 개망신 쓰고도 나눠주다니… 다들 안만나주는 걸 만나고, 인정하고, 호적 해줬음 다 해 준거지 왜 계속 질척거려… 가족들 신상 다 털렸던데 스트레스 받겠다 불쌍해… 친부모 형제 신상도 개인정보다. 함부로 알려주면 안되지… 입양가서 학대 받은 적도 없고 잘 살았다며 왜 저래… 친아버지 망신줘서 좋냐… 친엄마 찾아 뭐할라고? 궁금해 하지 마, 다방이나 술집 작부야… 좋겠다, 부잣집인거 알고 덤비는 거지…
이게 댓글들의 일부입니다. 저는 방송도 못봤고, 안 볼거고… 너무 화가 나서 절대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틈틈히 올라오는 짧은 한두 문장들이 정말 가슴을 후벼 파네요. 다들 제 정신인가요...?
한동안 시끄러웠던 다른 뉴스가 생각났습니다. 어떤 정신 나간 고용주가 ‘매값’을 주고 야구 방망이로 직원을 폭행했다는 그 뉴스요. 카라가 받았다는 30억을 계산 해 보았습니다. 정말 받았다면, 80살까지 산다고 치고, 하루에 십만원이네요. 평생의 고통을 위로할 매값… 이정도면 쏠쏠한가요. 돈 있으면 버려도 되나요..
학대가 없었으니 입양이어도 잘 산거다 비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해서라도, 미국에서 좋은 학교 나왔으니 유럽가서 잘 사는거 아니냐, 술집 딸로 밑바닥을 기어봤어야 입양간거 고마워하지… 다들 말하기 전에, 비약하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평생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 같은 객식구, 이방인의 마음을 생각해 봤습니까?
지금까지 40년, 그리고 앞으로 남은 40년 + 동안도, 무너지는 맨탈을 추스리고 다독거려야 할 위험 요소가 가득합니다. 아마도 매일 밤, 깨지고 부서진 영혼을 꿰매고 붙여야 하는, 지쳐 쓰러져 내일의 존재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그 상상하기 힘든 설움이, 30억에 덮어지나요. 상처와 아픔을 낫게 할 ‘매값’은 정말 그것들을 깨끗하게, 말끔히 낫게 해 주던가요?
30억이면, 당신은 부모와 바꿀수 있습니까? 하루 십만원이면, 부모를 버릴 수 있나요? 아니면, 그정도 돈이라면, 자식을 ‘좋은 집’에 넘길 수 있나요? 모든게 용서되고 잊혀지고… 모두가 윈윈이라 행복한가요. 그러니 너도, 입양아 주제에 유명해지고 부자 되었으니 조용히 살아라, 말하고 있나요.
저의 서툰 글들 중에 입양 이야기들이 몇편 있습니다. 대부분은 소설이고, 어느 잡지에 기사로 냈던 <해외 입양 20만명, 그들의 이야기> https://brunch.co.kr/@smilekay/76 는 실제 입양되신 분들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입양아들의 자살 소식이 입양 모임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요즘, 입양아들의 자살률은 일반인의 4배가 넘는다는 통계를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흘려 듣습니다. 피하기만 하느라 그들의 입장을 전혀 모르니까요.. 천한 혼외자라 손가락질하며 욕하기 바쁘니까요.
얼마전 카라가 올린 사진 한장이 자꾸 생각납니다. 한국 믹스 커피 한 봉지와 커피 컵.. 그리고 제목을 한글로, 이렇게 썼습니다...
"엄마는 다방 여자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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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면피 친부, 양심없는 가족들, 끝내 나타나지 않는 친엄마... 카라가 알게된 건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더러운 아이 취급하는 불쾌한 시선과 혐오, 돈 때문이라는 오명, 환영해 주지 않는 고국.. 카라가 한국어를 많이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건 제가 언제든지 번역 해줄테니까, 인터넷 댓글들을 절대, 평생.. 읽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페북 입양아 친구의 액자입니다. 발견 당시에 입었던 옷과 보내기 직전에 찍는 기록 사진들입니다. 가슴에 입양 번호 카드를 붙이고 있고, 어린 아이들은 위탁모가 안고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