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5화. 아이앰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첫 날 / 중

by 신소운

1.3 뭐하던 놈이냐


샤워를 마친 지율이 거울 앞에 섰다. 핏자국은 지웠지만 슬슬 부어오르고 시퍼렇게 변색되어 가는 게 며칠 걸리지 싶다. 찰칵, 찰칵... 핸드폰으로 몇 장 더 사진을 남기고 대충 연고를 바른다. 더러워진 옷가지를 둘둘 말아 아무렇게나 가방에 던져 넣고 복도로 나선다.

"안녕하세요?"

"예에... 안녕하세요?"


복도를 오가는 낯선 사람들의 인사가 어색하다. 목에 건 신분증 배지를 만지작 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기다렸다는 듯, 벼락같은 호통.

"강지율, 야 이 자식아! 너 제 정신이야? 사기로 수배된 인간을 쪼가리를 내서 끌고 와? 미쳤어?"

문종태다. 조사실에 다녀 온 모양이다. 잡혀온 놈이 오바 좀 떨고 엄살 피우나보다. 눈썹 하나 떨리지않는 지율과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종태. 다른 팀 사람들까지 우르르 모여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변수가 조금 있었습니다."

태연하게, 아주 담담하게 대답하는 지율에 종태는 더 혈압이 오른다.

"그걸 말이라고해? 그 자식 지금 CT 찍으러 병원갔어. 너, 고소 당하고, 우리 경찰서 뉴스에 나오면 어쩔꺼야? 조폭도 아니고 살인범도 아닌데, 그냥 사기 전과 몇개있는 찌질한 놈을 개 패듯이 패? 거기다가 너, 걔 수갑 채운채로 길거리에 질질 끌고 다녔다며? 영상 벌써 올라왔어, 어떡할꺼야?"


"영상은, 특별한 위법사항이 없는 한, 개인의 소유라 저희가 삭제 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신분이나 개인 정보 등이 노출되었다면, 초상권 침해와 공무 집행 방해 정도로 공지하고, 스스로 삭제하도록 권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끌고 다닌 게 아니라, 체포 직후에 교통 수단을 찾는 동안.."


"누가! 지금! 너더러! 메뉴얼! 읽으래?!"

한단어, 한단어에 힘을 주며 탕! 탕! 탕! 탕! 탕!...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다들 깜작깜짝 놀란다.

"영상 속에 네가! 그 잘난 경찰 배지 버젓이 보여주면서, 그것도 출근길에 효창원로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피흘리는 사람 끄댕이를 잡고 걸어가... 빼도박도 못해! 누가봐도 인권 침해야!"

"경찰차 기다리는동안, 시간 절약하려고 경찰서 방면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미터 가지도 못했고, 바로 따라왔길래 얻어타고 들어왔습니다."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지율이 수건을 집어들어 닦는다. 종태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다.

"자랑이냐? 훈장 탈거야? 왜 이렇게 당당해? 서장님까지 쫙 다 봤어. 다친 사람 치료는 안하고, 일부러 팔까지 수직으로 꺾어서 잡고있는 거.. 니가, 경찰이야? 주변에 보는 눈이 있으면, 거짓말로라도 놀라는 척, 당황하는 척, 구급차 불러주세요, 신고하세요... 그거 한마디만 했으면 됐을 걸, 그걸 못 해?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어?"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종태 때문에 지율도 슬슬 언짢아진다. 물기를 닦던 수건을 내려놓는다.

"그 자식이 먼저 도망쳤고, 체포 과정에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초반에 몇대 주고 받은 건 사실이지만 저는 분명히, 최소한의 방어였습니다. 지가 도로에 뛰어들어서 버스에 치일뻔 한 것도, 제가 뛰어들어 살리구요. 가서 물어보세요. CCTV, 목격자 진술, 파보면 다 나오잖아요."

"저 자식이 끝까지.."


종태가 책상위 크리넥스 통을 찾아 집어 던지려한다. 옆팀의 동료가 막아선다.

"아, 그만해요, 우리끼리 왜그래요?"

"저거, 태도 안 보여? 잘못 1도 안했다잖아! 경찰이 깡패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폭력 경찰이 시민 때렸다.. 그런거 하나 터져서 줄줄이 징계 받는 거 몰라?"


"지만 다쳤습니까? 저도 맞았어요, 안보입니까?"

"너는 경찰이야, 이 자식아! 얻어 터질 각오하고 사는 거고, 니가 팬 그 인간은 민간인라고! 사람들이 어느 편일것 같애?"

"민간인은 민간인 편이겠죠... 그럼 경찰은 경찰 편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기가 막힌 문용태. 두 손을 부르르 떨며 이석호 팀장을 바라본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하는 침묵의 괴성.. 마지못해 석호가 나선다.

"일단은 서장님 호출이니까, 강 경위는 저랑 잠깐 올라가구요, 나머지 분들은 각자 자리에서 대기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대기가 돼요, 이 상황에? 아까 그자식 병원간다고 변호사 부르라고 난리를치고, 유투브 다 돌고, 벌써 전화 오기 시작했어, 쟤 신상 까라고.. 기자들 뜨는거 순식간이야. 평생 주둥이로 사기만 친 새끼야. 가만있을 것 같애? "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옵니까? 부상 정도를 알아야 대책을.."

"결과 기다릴 필요도 없어요, 맨눈으로 봐도 최소 대여섯 군데는 골절이야. 들었어, 강지율? 내가 맨눈으로 봐도, 부러지고, 찢어지고... 못나와도 전치 8주야. 너, 솔직히 말해. 데리고 올때, 시간 지나면서 땡땡 붓는거, 분명히 네 눈에도 보였을거야, 그치? 근데 왜 의무실도 안가고, 119도 안부르고... 왜 니 맘대로 조사실에 집어 넣어? 아프다고 했다는데 왜! 그냥 방치했냐고?"


"엄살인줄 알았습니다."

눈빛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하다.

"엄살? 니가 패놓고 엄살이다? ... 하, 나참... 야, 니가 지금까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경찰 들어왔으면, 기본은 할거 아냐. 훈련받은 놈이 민간인을 때려놓고 아플 줄 몰랐다? 말이 돼?"

"저한테 맞았다고 합니까?"

"...뭐...?"


"때린 적 없습니다."

일동 잠시 멈추고, 혼란에 빠진다. 지율에게 쏠리는 시선...

"상대가 공격을 하니까 당연히 맞받아치기는 했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정식 훈련까지 받은 제가, 고의로 도주자를 폭행한 일은 없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사무실 바닥만 응시하고 있던 차은석이 처음으로 지율을 바라본다. 시환은 이 사람 저사람 눈치만 살피며 안절부절이다.

"저도, 여기서 지문조회 하기 전까지는, 무슨 죄를 지은 사람인지도 모르고 데려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폭력을 쓴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처음에 저를 보자마자 도망가길래 같이 따라 뛴것 뿐이고, 순순히 잡혔으면 둘 다 부상 입을 일이 없었겠지만, 그쪽에서 상당히 거칠게 공격을 했습니다. 자세히는 기억은 안나도, 일부러 폭행한 적은 없습니다."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깊은 숨을 들이쉬는 종태... 차은석이 묻는다.

"사실이죠?"

"뭐가 사실이야? 거짓말하는 거 안 보여? 그럼 그 놈은 그냥 가만있다 지 혼자 부러졌어?"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면 받겠습니다."

"저게 진짜 끝까지..."


"거기까지만 하시구요.."

석호가 막는다.

"위에서 기다리시니까, 강 경위는 잠깐 나랑 올라가요. 다들 서장님 전달 사항이 있을때까지, 말 나오지 않게 주의 부탁드립니다. 다녀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석호의 말에 지율이 일어선다. 손가락으로 젖은 머리를 대충 털며 따라 나선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환과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종태.

사무실에 가득 찼던 인원들이 하나 둘 흩어진다. 슬금슬금 종태의 표정을 살피며 다가오는 한 사람.

"아, 형님, 막판에 좀 쉽게 가자고 여기로 오셨는데, 저놈, 저거, 별로 안 쉬울 것 같은데요. 진짜로, 어디서 뭐하던 놈이래?"

강력계 조 팀장이다. 특유의 말투로 속을 긁는다.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호흡이 가쁜 종태.

"가라. 싸움난다."

"그럼요, 가요. 우리도 바빠요... 가긴 가는데, 에이구, 저런 애들, 진짜 가르칠거 많은데... 힘들면 다시 돌아와요, 예? 차은석 수고! 너는 괜히 따라 나와서 개고생이냐."


쿵... 문 닫히는 소리...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화가 치민다. 저 자식을... 심호흡으로 간신히 꾸욱 눌러 삼킨다.

"모여봐."

사무실 한쪽의 긴 소파로 팀원들을 부른다. 팀이라봐야 몇명 되지가 않는다. 서장실 불려간 두명을 제외하면, 장기 병가중인 한명, 파견 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는 한명... 남은 건 문종태 자신과 차은석, 그리고 이미 기가 팍 죽어있는 류시환 뿐이다. 신뢰도 1%의 시환에게 지시한다.

"시환이는, 저 또라이 아침에 어디있었는지, 발자국 한쪽까지 다 찾아내. CCTV, 블랙박스 몽땅 수거하고, 은석이도 같이 가서, 효창원로에서 검거 당시의 상황, 영상이랑 목격자 증언 확보해. 우리쪽 과잉 행위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 자식이 뭐 흉기라도 하나 들었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우리한테 유리한 거 뭐라도 있으면, 싹 다 가져와. 나는 사이버팀 연락해서 영상부터 지우도록 해 볼테니까, 최대한 서둘러."

"예."


일어서는 두 사람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한테 불리한게 나오면... "

잠시 말을 멈추는 종태. 최악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백프로 지율을 믿을 수도 없다. 어떤게 나올지는 까봐야 안다...

"... 괜히 이상한거 나와서 좋을 거 없으니까, 우리끼리만 진행한다. 알겠나?"

"예... 그런데, 경위님.."

시환이 어렵게 입을 연다.


"진짜로, 혹시 뭐 다른게 나오면요, 증거인데... 만약에 문제가 생길것 같으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쭈삣쭈삣 대답을 기다리는 시환... 그리고 그런 그가 답답해 한숨 내쉬는 은석. 문종태가 답한다.

"류 경위님. 그렇다고 우린 경찰인데, 증거를 일부러 없애서는 안되죠."

"아, 그럼요, 안되죠. 알겠습니.."

"류 경위가 책임지고 분실합니다."

차은석이 지시한다. 어리둥절한 시환.

"예?"


은석이 시환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반복한다.

"류시환 경위가, 책임지고, 분.실.합니다."

"...?!"

"아, 뭐해? 빨리 데리고 나가!"


둘을 내보내고 사무실에 혼자 남은 종태. 멍하니 벽시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한다. 12시도 안되었다.

"아, 완전 똥이네... 출근한지 얼마 됬다고 이 난리야...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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