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화. 아이앰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첫 날 /상

by 신소운

1.0 출근길


이른 아침 막 동이 튼다. 가게 앞을 청소하는 사람들, 가벼운 인사, 바쁜 걸음.. 일찌감치 지나가는 쓰레기차 뒤로 말끔히 비워진 쓰레기통, 장사 나온 1톤 트럭… 간간히 눈에 띄는 등교길 아이들과 일찌감치 문을 연 커피집... 한적하다. 아직은 여유있는 버스와 손님 기다리는 택시..


지율이 언덕길을 오르면서 점차 눈에 보이는 사람도 줄어든다. 알수없는 모양의 낙서들이 눈에 띈다. 좁은 빌라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에 한번 더 주변을 살핀다. 후미진 이런 동네에도 제법 CCTV 가 달려있다. 아는 길인듯 익숙하게 여기저기 가볍게 계단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번, 어느 반지하 철제 문 앞에 선다.

<삼원 포장>


공장 안은 이른 시간에도 일하느라 분주하다. 기계소리, 알아듣지 못할 언어,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외국인들이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커다란 비닐 뭉치를 한곳으로 옮긴다. 바짝 압축한 거라 꽤 무겁다. 시작한지 얼마 안된 초짜의 부주의를 뭐라 나무란다.

문 밖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기계 소리, 하지만 반투명 유리창으로는 뭐라도 보일듯 말듯, 쉽지 않다. 건물 옆으로 돌아 창문으로 들여다 보려 하지만, 두어겹 걸쳐놓은 천조가리 커텐에 역시 아무것도 안보인다. 때마침 철커덕 문이 열리고, 담배를 들고 걸어나오던 두 사람, 지율을 보고는 그대로 멈춰서서 눈치만 살핀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뭐 물어보러 왔어요.”

바짝 긴장한 두 외국인 노동자에게 사진을 꺼내어 보여준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건다.

“이 사람 알아요? 여기서 일해요?”


사진은 살피던 한 사람이 주저하는듯 하다가 서툰 한국말로 답한다.

“간다… 없다”

“오래됬어요? 마지막 본게 언제에요?”

“몰라... 한국말 몰라.”

“사장님 안에 있죠?”


두사람 사이를 비집고 공장 안으로 들어선다. 걱정스런 얼굴로 안쪽에다가 뭔가 수신호를 보내는 외노자. 그런 그들에게 괜찮다 손짓하는 지율.

“누구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한국인 관리자가 다가왔다. 어느새 조용해진 공장… 불안한 눈빛, 신발을 고쳐 신는 사람, 고개를 돌리는 사람, 슬쩍 기계 뒤로 숨는 사람…


“Don’t worry, guys. I’m looking for this ONE person, alright? (걱정말아요, 나는 딱 이 한사람만 찾고 있어요, 괜찮죠?)”

지율이 그들을 안심시키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다.

“외사과에서 오셨어요? 용산 경찰서?”


경찰 배지를 내보이며 재빨리 공장안을 스캔한다. 사진을 보여준다.

“이 사람 왔었죠? 마니쉬 디마트라.”

“지금은 없어요. 일을 뭐 한, 2-3주 했나? 돈도 안받아가고... 숙식은 윗층에서 했고, 일을 꽤 하길래 쓸만하다 했었는데, 말도 없이 사라졌어요. 꽤 됬는데, 지난달 초였던 것 같아요... 얘도 불법이죠?”

남자가 사진을 돌려준다.


“그걸 저한테 물으세요? 채용할때 확인 안해요?”

“에유, 아시잖아요, 이렇게 작은데는, 채용 뭐 이런 거창한 말 안써요. 그냥 누구한테 듣고 와서 일하고 싶다그러면 하는거고, 간다그러면 가는거고.. 근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아직은 모릅니다. 연락이 안되서 찾는 중이에요. 혹시 소식 듣거나 여기로 다시 돌아오면, 저한테 전화 주세요 (명함을 건넨다). 위에 기숙사 좀 둘러볼께요.”


공장 위 다세대 빌라로 안내하는 사장. 가뜩이나 좁은 복도에 천장까지 잔뜩 쌓아놓은 식료품 상자들, 각각 다른 나라 글씨다. 아무렇게나 꺼내놓은 옷가지와 신발, 배달 음식 남은 비닐 봉지와 불쾌한 냄새...

"죄송합니다. 있다가 치우라고 할께요. 소방점검 나와서 벌금 낸지 얼마 안됬는데 또 이래요.."

사장이 먼저 투덜거린다. 앞장 서 걸으며 발로 툭툭 밀어 길을 터준다.


꼭꼭 닫힌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외국어... 즐거운 일이 있는지 호탕하게 웃는다. 회색빛 현관문을 여는 순간 언뜻 등뒤에서 짧게 들려온 인기척... 그러나 그 뿐, 순식간에 멈춘것 같다. 지율은 못들은 척, 문 안으로 사장을 따라 들어가 조용히 하라 손짓한다.

"왜요, 뭐.."

"쉿..."


작은 구멍으로 복도를 살핀다. 역시나 윗층에서 살금살금 내려오는 중년 남자. 셔츠에 어울리지 않는 등산 모자를 썼다. 벌컥 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지율을 피해 도망친다. 질주.. 좁은 계단에 쌓인 물건들을 피한다. 사력을 다하는 남자와 역시 전력 질주하는 지율. 몇번을 잡고 뿌리치고를 반복하며 넘어지고 구른다. 골목길 콘트리트 바닥에 던지고 던져지고.. 옷이 찢기는 것도 모르고 거친 몸싸움을 계속한다.


"어, 어, 아이쿠..."

집앞의 쓰레기를 줍던 아주머니를 밀치고 도망가는 놈.

"괜찮으세요?"


여자를 일으켜주고 놈이 뛰어간 쪽을 침착하게 스캔한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급정거 소리.. 욕하는 소리.. 혼자 중얼중얼하며 소리 나는 쪽으로 이동하는 지율. 싸늘한 눈빛에 살기가 돈다.

"다 끝났어, 새끼야... 내 눈에 띄었으니 넌 죽은거야..."

다 끝났어, 새끼야... 내 눈에 띄었으니 넌 죽은거야.. 지율의 혼자말 뒤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메아리친다. 여유있게 내려닫는 걸음걸음, 큰 길로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훔쳐보지만, 지율은 딱 한곳만 응시할 뿐이다... 저기... 그 놈이 있다...


절뚝거리며 간신히 사거리까지 도망나온 남자가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려고 애써봐도, 아침부터 피를 뚝뚝 흘리는 사람을 태워줄 택시는 없다.

"저, 저, 저... 미쳤나.. 어디서 술처먹고 갇혀있다 도망나온거 아냐?"


위험하다며 경적을 올리는 자동차들. 결국 남자는 건너편의 빈택시를 발견하고 중앙선을 향해 뛴다. 빨간불이다. 끼이익... 빠아앙... 뒤에서 날아와 남자를 덮치는 지율. 꺄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버스 앞을 비켜간다. 데구르르 바닥에 뒹구는 두사람,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한쪽 손에 언제 채웠는지 이미 수갑이 걸려있다. 여유롭게 등위로 올라탄 지율이 남은 한쪽팔을 꺾어 수갑을 마저 채운다.


"아아악!!!"

“아저씨 색맹이야? 빨간불에는 ‘멈춰라’... 몰라?”


숨가뿐 것도 잠시, 남자를 끌고 도로 밖으로 나오며, 귓등에 대고 단숨에 미란다 고지를 읊는다. 잠시 멈춰섰던 차들이 금새 다시 주행을 시작한다. 수근거리며 핸드폰을 들고 모여드는 사람들.


"우와, 대박.. 뭐냐 아침부터..?"

"얼굴이 다 찢어졌네나봐 어떻해.."

“경찰입니다. 찍지 마세요. 아니면 이 사람이랑 같이 엮어서 경찰서로 모십니다.”


쭈삣쭈삣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비틀거리는 남자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고 걷는다. 뒤통수에 걸린 등산 모자도 다시 덮는다.

"아, 진짜 아프다고! 다 부러진거 같애!"

"진짜로? 나랑 똑같네? 찌찌뽕?"


아침이라 몸이 덜 풀렸나보다. 뻐근하다. 투둑투둑.. 목 관절을 움직여본다. 자꾸 얼굴에 내려오는 머리칼을 입으로 불어 치운다. 긴 호흡도 한다. 아, 늘 기분좋은 아침... 건물 꼭대기에 올라선 햇살이 눈부시다. 땀이 흐르는 것 같다. 한쪽 어깨로 쓰윽 닦아낸다. 귓볼 아래에 피가 번진다.



1.1 용산 경찰서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 이거 완전 강제 내근이야. 나 이런거 너~~무 좋아.”


삐딱하게 앉았다. 빈 종이컵 서너개를 쌓았다, 무너뜨렸다, 놀면서 문종태가 실실 웃는다. 이미 오래전에 회의를 마친 둥근 테이블에 몇몇이 앉아 전화기만 살핀다. 비어있는 딱 한 자리에 유독 흐트러진 서류들.


“내가 별별 애들 다 봤지만, 새 근무지 첫날에 지 인사 시키는데 지각하는 놈은 처음 봐. 뭘 믿고 그러지? 이 팀장님 후배야? 경대?”


차분히 앉아있긴하지만, 연신 시간만 체크하던 이석호 경감이 억지로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아닙니다. 특채라고 들었습니다.”

“오~~ 특채씩이나… 늦을만하네. 어쩐지, 아까 사람들 다 강당에서 기다리는데 빵꾸 냈잖아, 근데도 서장님이 그냥 넘어가더라 이거지. 내가 표정 한번 싸악 봤는데, 분명 똥씹은 얼굴이기는 한데, 왜 있잖아, 그런거.. 탐탁치는 않은데, 우리한테 하듯이 막 그렇게 성질내고 그럴것 같지는 않더라 이거야. 간만에 여자애라 그런가?”


“강.지.율. 경위입니다. ‘여자애’ 아닙니다.”

“아, 미안해. 그래, 조심해야지, 성차별로 투서 들어가니까, 응? 그건 내 잘못! ... 그러니까 우리 강, 지, 율, 경위님은, 아까 설명이 그게 다야? 뭐 아는 거 좀 얘기해봐요. 이름 세글자에, 특기는 외국어, 새로 온 경위… 너무 하잖아. 누구 다른 거 뭐 들은거 없어?”


한참 선배인 문경위의 질문에 다들 침묵한다.

“이거, 점점 이상한데? 너무 쉬쉬하는 건 있잖아, 나중에 보면 다 낙하산이더란 말이지. 얘는 뭐, 청장 전용기에서 내려 꽂았나? 학교, 고향, 전에 어디서 일했는지, 아니면 경찰 경력은 있는지… 왜 말을 안해?”


맞은편에 앉은 류시환 경위가 한껏 불쾌한 표정이다. 꾹 잠고 일어나 어지러운 서류들을 가지런히 모아 폴더에 정리한다.

“오시면 직접 물어보십시오.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시키지 마시구요.”

“류 경위는 뭐 좀 알지? 이건 뒷담화가 아니라 사전 정보를 공유하자는 거잖아. 어떤 꼴통이 첫날부터 이 모양이냐고? 경찰이 장난이야?”


“지각 아닙니다. 실종자에 관련된 제보가 있어서, 잠깐 들렀다가 오신다고 미리 보고 하셨습니다. 이제 도착 하실때 다 되었구요.”

“다 되긴? 아까 전화한게 언제인데? 나같으면, 거기서 여기, 다섯번은 왔다갔다 했어. 야, 그리고, 얘 원래 지난 월요일에 첫 출근한다 그랬었잖아? 그때도 안나왔지, 집안일 있다고? 직장이 지 맘대로야.”


류시환이 발끈한다.

“아, 그때는 가족 누가 위급하시다 그랬고, 오늘은 택시가 안잡힌다잖아요? 그럼 수갑 채우고 걸어와요?”

“승질이야? 계급 같다고 아주, 경대 아니면 선배도 아니냐? 내가 임마 이 짓을 몇년을 했는데? 너 코 흘릴 때 난 경찰이었어!”


회의실이 점점 소란스러워지고, 마침 들어 온 지율. 꼬질꼬질한 모습에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반쯤 뜯긴 머리, 입주변의 마른 핏자국, 셔츠는 단추까지 뜯겨 다 벌어지고, 까진 팔꿈치와 턱에서 아직도 피가 흐른다. 모두 멍 하니 침묵한 가운데, 아무렇지않게 회의실을 한바퀴 둘러보던 지율이 만년 경위 문종태를 발견한다.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 순간, 종태가 먼저 입을 연다.


“이야, 이거… 첫 출근 말아먹고 사복까지 입으셨어요? 진짜 낙하산 맞네. 오늘 아침에 서장님께서, 강 경위 소개한다고, 교대가는 사람들까지 전부 다 집합 시킨거 알아요, 몰라요? 오늘 하루 정복 출근하라는 건 아예 전달 못 받았나?”


“형님, 나중에 해요, 사람이 다쳤는데, 안부부터 물어야죠.”

슬쩍 말려보는 팀원들. 그제서야 사태 파악하고 들어올렸던 손을 어색하게 내리는 지율.

“죄송합니다. 잠깐 들렀다가 온다는게, 다른 일이 생겨서 좀 오래걸렸습니다.”

“그 다른일도 말입니다, 2인 1조가 원칙이잖아요. 파트너 두고 혼자 싸돌아다니니까, 그 꼴이 나지요. 특채들은 그런 교육도 안 받고 배치부터 하나?”


종태의 타박에 그제서야 헝클어진 옷자락을 내려다 보는 지율, 먼지를 툭툭 턴다. 시환이 다가가 살핀다.

“어떻게 된거에요? 금방 오신다더니..”

"그러게요, 그게..."


이석호 팀장이 급하게 마무리 한다.

“다들 바쁘시니까 오늘은 간단히 통성명만 하죠. 이쪽이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된 강지율 경위입니다. 다른 팀원들하고는 차차 알아가는 걸로 하고, 일단 저랑.. (지율을 보고 잠시 멈칫한다).. 정리하실 거 먼저 정리하고 오세요, 지시사항이 좀 있어요.”

괜찮습니다, 지금 말씀 하세요.”


종태가 끼어든다.

“강 경위님, 가서 씻고 오라구요. 거울 안 봐요? 경찰이 아니라, 경찰에 끌려온 사람 같애요, 지금. 그것도 벌건 대낮에 주폭으로..”

“글쎄, 형님 좀..”

말리는 척 하면서 큭큭 웃는 사람들. 하나둘씩 빠져나가며 지율과 가벼운 목례를 한다.


“내가 뭘 어쨌다그래, 지들도 똑같이 생각하면서…”

궁시렁거리며 마지막에 일어선 종태, 멋적게 핏자국을 긁어내던 지율과 눈을 마주친다. 엉망이 된 얼굴에 마음이 편치 않다. 옆으로 비켜가며 툭.. 한마디 던진다.

“여기 싸움 잘 하는 애들 많아요. 꼭 좀 데리고 다닙시다. 꼬라지가 그게 뭡니까?”

“예… 저기 근데, 문 형사님.. 3번 조사실에 오형철씨 있습니다. 지능팀에서 취조 준비 중입니다.”


종태가 갸우뚱한다.

“오형철이요? 뭐지? 내 사건이야?”

“2016년 용안동 포장마차요, 문경위님 사건이었습니다. 사건번호 3837-오6- 399, 폭행치사.. 주범 이기훈은 검거되었고, 공범 오형철은 목격자인척 참고인 조사만 받고 빠져나갔습니다. 가짜 신분증을 써서, 지능팀 수배자인걸 모르고 그냥 내보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 그놈이 왔다고? 어떻게? 자수야?”

“아뇨, 아까 다른 일로 탐문 나갔다가, 저를 보고 도망 치길래 일단 데려왔습니다. 지금 막 지문 떴고, 오형철로 확인했습니다.”

“제발 저렸네, 제발 저렸어.. 역시 죄짓고는 못살아. 수고했어.”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종태. 옆에 서서 듣고 있던 차은석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리로 돌아와 갈아입을 옷을 챙기는 지율과 어느새 비상약통을 들고 오는 시환. 가까워보이는 두 사람은 친한 사이인 듯 곧 키득거리며 장난을 친다. 잠시 후 씻으러 일어나는 지율과 따라나서려는 시환, 지율은 옷으로 시환의 얼굴을 눌러 의자에 주저앉히고 혼자 나선다. 그 뒷모습을 보며 혼자 미소짓는 시환. 서랍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 지율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차은석이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린다. 2016년 용안동 포장마차… 이기훈… 오형철… 사건 기록을 검색한다. 그다지 주목받던 사건도 아니다. 새벽 시간에 흔한 퍽치기로 시작해 강도 사건이 되어버렸었다. 파트너였던 자신도 가물가물한 일을, 새로 부임한 사람이 알고 있다..? 첫 출근부터 억세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 그렇다치고, 사건번호까지 줄줄이 외우는 건 좀 이상하다…

‘...2016년 용안동 포장마차요, 문경위님 사건이었습니다. 사건번호 3837-오6- 399, 폭행치사.. 주범 이기훈은 검거되었고, 공범 오형철은 목격자인척 참고인 조사만 받고 빠져나갔습니다. 가짜 신분증을 써서, 지능팀 수배자인걸 모르고 그냥 내보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박또박… 지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뭘 알지? 언제부터? 왜? 은석은 두어번 머리를 흔들고 헛기침으로 정신을 차린다.

“됐다.. 알든지 말던지..”

혼자 중얼거린다. 하던 일에나 마무리하자... 책상 위에 수북한 사건 폴더를 바로 세우고, 자세를 잡는다.

이석호 팀장이 시환에게 다가온다. 책상위의 약통과 과자를 본다. 칸쵸다.

"저 서장님 뵈러 갑니다. 강 경위 오면 그리로 오라고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나가려다 멈추고 덧붙인다.

"필요하면 의무실 들렀다 와도 되요. 급한거 아니에요."

"여쭤보겠습니다. 다녀 오십시오."

그제서야 마음놓고 돌아서는 석호. 새까만 경대 후배 시환이 귀엽다. 깍듯한 인사와는 상반되게 반달 웃음을 친다.



1.2 서장실


"범인 잡다 늦었다는데 뭘 뭐라 그래. 운이 좋네? 엉뚱한 데서 하나 물어오게."

말은 그렇게 해도, 서장도 잔뜩 짜증이 난 기색이다. 분명히 아침내내 혼자 화를 삭히고 있었을거다.


"죄송합니다. 발령 나고 첫 제보라 의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출근 먼저 했다가 같이 가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강지율이가, 말을 잘 안 들을거라는 그러더라고. 내가 전에 일러 줬잖아, 그 자식 좀 트러블이 있을거라고.. 일은 잘 할거라더니, 그말도 맞네.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데리고 있을만 하겠어?"

"뭐, 아직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까 잠깐 얼굴만 봤습니다."


서장이 웃는다.

"흐흐.. 맘에 안들었구만, 사람좋은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왜? 개판이야?"

"아닙니다. 제가 잘 신경 쓰겠습니다."

"그래야지. 골치 좀 썩을거야. 경찰대 후배도 아니고, 남자놈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서 경찰 해 본 적도 없잖아. 걔도 지금 많이 헷갈릴거니까, 잘 몰라서 그렇다 이해하고."

"예."


"특채 들어오는 친구들은 많이 봤는데 말이야... 국적까지 바꿔서 굳이 한국에서 경찰 하는 놈은 처음인것 같애. 거기서 계속 하지 왜 왔을까? 사고라도 치고 도망 온건지, 좀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 건 요즘 다 프라이버시라고들.. 물어보기는 좀 그렇지? 자네는 방법이 있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요."

"그래, 그래. 남 얘기 듣고 선입견 생기는 것 보다는, 본인이 판단하는 게 좋지. 아무튼 애들 관리 잘 해. 괜히 누구 다칠까봐 그래. 그런데, 류시환이 하고는 어때? 둘이 잘 맞는 것 같나?"

석호가 미소 짓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장은 특별히 시환을 아낀다. 근무 시작 전날 석호를 불러 인사까지 시켰다.


"둘이 친한거 같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전부터 알던 사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강 경위 편만 듭니다."

"아이구, 자식 참... 그 놈은 너무 순해서 그냥 겉과 속이 하나도 없어. 훤히 다 보이니... 쯧쯧쯧.. 시환이 며칠 지켜보니 뭐가 좀 보여? 일은 잘 할것 같애?"

"성향이 많이 달라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맞습니다. 류시환 경위가 잘 맞춰주는 것 같습니다."

"음, 그래, 한쪽이 그래야지. 시환이 말이야, 녀석이 별로 평이 안좋아서..."


전화벨이 울린다.

"어, 나에요, 말씀하세요 ...뭐? 아니, 아침 댓바람부터 도데체 언제...? ... 어떤 자식이? ... 강지율이가...?"

서장의 얼굴이 잔뜩 찌그러진다. 놀라움이라기보다는 분노가 가득찬 눈으로 석호를 본다. 석호가 뭔가 눈치를 채고 재빨리 자리를 뜬다. 등뒤로 닫히는 서장실 문틈으로 자주 듣기 힘든 비명 소리가 난다.


"야! 이 팀장! 강지율이 당장 데려와!"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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