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강술래 2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2화. 강호방은 어디가고 저 달 뜬 줄 모르는가
2.5.1 순찰
차에 오른 두 사람. 지율이 운전석에 앉았다. 눈치를 살피던 시환이 어렵게 말문을 연다.
“아까 진우형이 말한 거요, 궁금하세요? 어떻게 알았는지?”
“팬다요? 내 옛날 별명 맞아요. 어디서 들었나보죠. 틀린 소리 한것도 아닌데요, 뭐. 신경쓰지 말아요.”
대수롭지않은 반응에 오히려 할말이 없다.
“나 일 그만두고 나서, 누가 찾으러 다녔다던데, 그 사람이 시환씨였어요? 한국 남자?”
“아뇨, 저는 그때 한국에 있었고, 진우 형 사촌분이 근처에 사셔서, 그 분이 대신 가셨습니다. 필라델피아에 가서, 명함에 찍혀있는 대로 그 경찰서에 갔는데, 차이나 타운 담당하셨다가 얼마전에 그만 두셨다고 그랬대요. 그래서 무작정 차이타 타운에 가서, 혹시 선배님 기억하는 사람이 있나 물어보신 것 같아요.”
지율이 웃는다.
“거기 아직 제 첩자가 많아요. 누가 찾으러 다니는 것 같으니까 조심하라고 연락이 왔더라구요. 원수 진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된다고..”
창밖의 거리 풍경은 아직 아무일 없다. 어느 나라든, 이른 아침에는 사고가 적다. 룰이다. 정말 나쁜 놈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현장에 오래 있었어요. 학교 가는 대신에 홈스쿨로 일찍 마쳤거든요. 대신 운동하고, 대학가고, 경찰 훈련 받아서 처음 일 시작한 곳이 필라델피아에요. 근무 시작해서 6년을, 계속 차이타나운에 있었어요. 다 그런 건 아닌데, 분위기 많이 안좋고, 전체적으로 험악해요. 대표적인 우범지역이죠."
장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 물건 내리는 트럭의 비상등… 길은 막고 있지만, 딱히 단속 대상은 아니다…
“별명이 미친 팬다였어요. 거기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는지, 중국에서 왔는지 어차피 모르니까, 좀 얕잡아보는 말이었겠죠. 미친 아시아 여자… 뭐 그런 뜻? 부상도 많았고, 죽다 살아난 적도 있고, 갱 세명에 경찰 한명 쯤 죽어나가는, 대충 그정도 비율이에요. 미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어요. 미친 팬다가 낫죠, 죽은 팬다보다, 안 그래요?”
횡단보도 불이 바뀌고 미처 반도 못 지난 할머니가 느릿느릿 보행을 계속한다. 차를 세우고 경광등을 켠다. 빙글빙글 돌며 파란 불빛으로 번쩍번쩍 시선을 끈다. 주변의 차들도 멈추고, 시환이 내려 할머니를 인도까지 모신다. 등을 끄고 다시 출발한다. 다른 차들도 서서히 움직인다. 백미러를 보며 지율이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 많이 착해요. 경찰이 서란다고 줄줄이 서서, 식권 받듯이 딱지 떼고… 거긴 그렇게 못해요. 한여름에도 방탄 조끼 입고… 조끼 입어도 총상 입거든요, 근거리는... 화상처럼, 피부가 죽어요. 엄청 아프고, 안에 있는 근육이랑 뼈도 다쳐요. 일부러 조끼 없는데만 쏘는 놈들도 있고요..”
훙터를 본적이 있다. 시환의 머릿속에, 몰래 훔쳐 본 장면이 떠오른다… 지율에게 줄 아이스 커피를 들고 가다가 체력 단련실 앞에서 멈췄다. 스포츠 브라와 반바지만 입고 혼자 샌드백을 치고 있는 지율.. 땀이 흐르는 몸에 남은 수많은 흉터... 멀리서 봐도 뚜렷한 자상, 총상, 수술 자국, 그리고 숫자와 영문이 섞여있는 메모 같은 문신들..
정신이 번쩍 나도록 요란하게 빵빵 거리며 두 사람을 추월하는 BMW. 외제차 중에서도, 유독 위반이 많은 건 우연일까. 이리저리 곡예 주행을 하며 앞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가본다. 차가 많아 엄청난 과속은 아니어도,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운전자가 발뼘 할 시에 제시할 증거가 필요하다. 말없이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던 시환이 시계를 본다.
“4분 40초 지납니다.”
“인사 좀 드려야겠죠? 많이 바쁘신가보네..”
지율이 자세를 바로하며 운전대를 고쳐잡고, 시환이 사이렌을 켠다. 위이잉... 속도를 올려 따라 잡는다. 삐요삐요… BMW가 바로 서지 않는다. 대신, 다른 차들처럼 ‘정상’ 주행인척, 눈에 띄게 속도를 줄이고 한 차선으로만 똑바로 간다. 확성기를 켠다.
“경찰입니다. 3235 BMW, 길 옆으로 정차하세요.”
여전히 딱 좋은 속도를 유지하며 아닌척 빠져나가려는 BMW.
“늦었습니다. 난폭운전 하셨잖아요. 세우세요.”
경찰답지않은 친근한 말투에 지율이 웃는다. 정차하는 BMW뒤로 바짝 차를 댄다.
“거봐요, 역시 착해요…”
지율이 차량 운전자 쪽 창문을 노크한다. 배지를 내보인다.
“면허증 확인 하겠습니다. 과속에 차선 위반입니다."
“무슨 위반이요? 남들하고 딱 맞춰서 잘 가고 있었는데?”
“다 찍었습니다. 칼치기 위험한거 알면서 일부러 그러죠? 상습이에요? 보복 운전?”
“아니, 이 여자가.. 이봐요, 당신 어디 소속이야? 경찰 맞어? 사복입고 아무 차에나 등하나 달고 단속을 해? 이거 엄연히 함정 수사야!”
시끄러워지자 시환이 다가온다.
“아, 시끄러! 당신이 운전 개같이 했잖아! 얼른 면허증 주고 딱지 받어!”
조수석의 여자가 소리친다. 부부싸움 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제가 이쪽 할께요. 여자분을 맡으세요... 선배님 오늘은 가만히 근신 중..”
시환이 지율을 조수석 쪽으로 보낸다. 차량 뒤로 돌아가는데, 뒷자리에 쪼로록 아이들이 앉아있다. 게임에 열중했는지, 아니면 자주 겪는 일인지, 놀라지도 않는다.
“안녕하십까? 용산 경찰서 류시환 경위입니다. 선생님, 조금 전에 교통 위반하신거, 다 녹화되었습니다. 직접 경찰서 출석 하셔서 보시겠습니까?”
남자가 아까보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는, 다짜고짜 면허증부터 내놓으라잖아요.. 이쪽분은 교육 잘 받았네, 그렇게 상냥하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시작하면 서로 얼마나 기분이 좋아?”
“누가 선생이야? 너 어느 교대 나왔어? 몇학년 뭐 가르치는데? 바른생활? 윤리? 도덕?”
지율이 소리친다. 열받은 남자가 함께 소리를 높힌다.
“저것 봐요, 저거… 야! 왜 반말이야?”
“반말은 반말로 답한다. 대한민국 선생님들 욕먹이지말고, 면허증 내놔! 애들 태우고 어디서 난폭 운전이야? 상냥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너나 운전 똑바로 해!”
.
“아우 다들 왜이렇게 시끄러워? 짜증나. 당신 내려! 내가 운전할거야. 그놈의 성질머리 좀 고치랬지?”
지지않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조수석의 여자가 내린다. 잰걸음으로 운전석으로 달려가 남자의 멱살을 잡고 끌어낸다. 남자도 차에서 내려 여자를 밀친다. 시환이 가운데에서 말려보려 하지만 듣지 않는다. 뒷자석 아이들은 여전히 게임중이다…
이렇게해서는 시간만 간다… 지율이 번호판을 보며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용산서 강지율입니다. 차량 조회 부탁드립니다... 서울 XXX, 3235 파란색 BMW SUV, 등록된 주소지와 운전자 정보 필요합니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여기, 청파로 47, 신한은행 앞 사거리입니다. 응급은 아니고, 그냥 지원 차량 한대 부탁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아직도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자. 지율이 뒤에서 두 팔을 감는다.
“제압합니다. 인도로 올라가십시오.”
상체를 꼼짝 못하게 된 여자를 끌고 나오며 시환에게 말한다.
“가정 폭력으로 맞고소, 현재 재판 중입니다. 세금 미납으로 차량도 수배 중이라, 지원 요청했습니다. 두 사람 분리해서 면담합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남자의 태도가 급변한다.
“아니, 잠깐, 그거는, 서로 오해가 있어서 재판까지 갔는데, 지금은 얘기 잘 했구요, 세금도 내러 가는 길이에요.”
시환이 남자를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간다. 어쩌고 저쩌고 변명이 많은 남자... 그 사이에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토하는 여자. 옆에 서서 지켜본다.
“얼굴색이 안좋으세요. 구급차 불러드려요?”
“아니에요, 제가 요즘 한창 입덧이 심해서.. 그렇게 좀 살살 하라고 해도 저 인간이..!”
잠깐 생각하던 지율이 묻는다.
“가정 폭력으로 소송 중이시죠?”
“아뇨, 저 아니구요. 쟤, 저기 제일 째끄만 애, 걔 엄마가요. 위자료 소송도 같이 붙어서, 서로 아주 똥물 싸움이에요. 아우, 지겨워!”
차안에서 게임하는 아이들을 돌아본다. 위로 두 형들과 조금 나이차이가 있어보이는 세째, 그리고 여자 뱃속에 들어있다는 네째.. 임산부 답지않은 짙은 화장과 악세사리, 뾰쪽한 명품 하이힐…
“내가 잘못 골랐지, 저게 쌍판 좀 생기고, 돈 꽤나 있어보여서 혹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애까지 줄줄이 달려가지고요, 성질은 아주 얼마나 화르르 지랄 맞은지 말도 못해요..”
할말이 없다. 지율이 노트를 덮으며 한마디 한다.
“잘 사실 거에요, 비슷해 보여요.”
“… 뭐.. 뭐라구요?? ”
“힘드시니까 조수석으로 들어가 앉으세요. 곧 경찰차가 올거에요. 그쪽에서 알아서 해줄거니까... 그때까지 운전 못 하시구요, 아이들도 안전상 차량 안에 남습니다. 남자분은 저희가 밖에서 대기시키겠습니다.”
할말이 많은 듯한 여자를 차에 밀어넣고 문을 닫아버린다. 저만치에서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잘 커버하고 있는 시환이 보인다. 남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오바스럽다.
“지랄 맞은거 맞네.. 주제에 선생님 소리는 듣고 싶냐? 애들이 본다, 인간아.”
혼자 중얼거리는 지율 뒤로, 싸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2.5.2
남자를 경찰차에 태우고 돌아서는 시환. 지원 나온 동료들에게 꼬박꼬박 인사하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미소가 닮았다... 사이다 캔 두개를 들고 지율 쪽으로 걸어오며 활짝 웃는 얼굴 위로, 교복을 입은 남학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하얀 반팔 남방에 베이지 색 바지, 반달 눈웃음이 똑같다. 내민 손을 꼭 잡는다. 메아리 친다...
"다리 아프게 왜 나와있어? 들어가서 기다리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
"다리 아프게 왜 나와있어요? 차에서 기다리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죠?"
시환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다. 짧은 몇 초 였지만, 잊은 줄 알았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 그 말투, 딱 그 톤 이었다...
"선배님, 괜찮아요? 무슨, 다른 일 있어요?"
"아니요, 아니에요... 갑자기 옛날 일이 하나 생각났어요... 늦기전에 가야죠, 고시원?"
"예... 제가 운전 하겠습니다. 이거 드시면서 좀 쉬세요. 피곤해 보여요."
차 안. 사이다 캔을 옆에 놓고 목적지로 향하면서도 옆자리 지율이 신경쓰인다. 지율은 아무 말없이, 표정도 없이 창 밖만 내다보고 있다. 시환이 묻는다.
"잠깐 주무실래요? 아니면, 음악 이라도 틀을까요?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대답없던 지율이 핸드폰을 꺼낸다. 노래가 나온다... 전자 악기가 강한 비트를 내는, 전주부터 벌써 옛날 노래같다. 허스키한 보컬의 목소리... 어디서 들어봤다...?
Rainy night and we worked all day
We both got jobs 'cause there's bills to pay
We got something they can't take away
Our love, our lives
(오늘 밤은 비가 와요,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둘 다 일을 하죠,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래도 절대 버릴 수 없는게 있어요
우리 사랑, 우리 삶이죠)
지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묻지않고 가만히 듣는다. 누구 목소리더라...? 후렴으로 넘어간다.
You were born to be my baby
And baby, I was made to be your man
We got something to believe in
Even if we don't know where we stand
(당신은 내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내 사랑, 나는 애당초 당신의 남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믿는게 있어요
비록 우리가 지금은 잘 모르더라도)
Only God would know the reasons
But I bet he must have had a plan
'Cause you were born to be my baby
And baby, I was made to be your man
(오직 신깨서만 이유를 아실겁니다
분명 계획이 다 있으시리라 믿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내 여자로 태어났고
내 사랑, 나는 당신의 남자로 만들어졌으니까요)
1절이 끝나고 간주가 시작된다. 확신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 본조비 좋아해요? 이거 맞죠? 목소리가 비슷한데... 무슨 노래더라?"
지율이 뒤로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는다.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아, 이거 진짜 들어본 것 같은데... 뭐지? 제목이 생각 안나네.."
"Born To Be My Baby (내 여자로 태어났다)."
"아, 아... 그 부분만 생각이 나요.. 한참 옛날 노래인데, 이걸 좋아하세요?"
"이것만 들어요... 예전에 한국에 살았을 때, 오빠가 많이 불러줬었던 것 같아요. 교복 입고, 기타 치면서...?"
지율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확실치는 않은데,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마지막 날에도..."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