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강술래 1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2화 강호방은 어디가고 저 달 뜬 줄 모르는가
2.1 사무실
아침 일찌기 출근하는 종태. 먼저 와있던 은석이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다가, 소파 등받이 쪽으로 툭 튀어 나와있는 손목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아잇, 깜짝이야… 뭐야? 왜 여기서 자?”
은석은 아몬드를 먹으며 답도 없고 관심도 없다. 옆자리로 털썩 앉으며 두 알을 집어든다.
“덩치는 불곰 만한게 다람쥐인척 하냐? 맨날 콩만 까먹고 있어. 밥 좀 먹고 다녀.”
“늦게 일어났어요. 배 안고파요.”
“그놈의 땅콩에, 두유에, 콩죽… 콩 따는 아낙네가 너 때문에 힘들대.”
“아몬드에요.”
“그거나 그거나..”
종태가 아예 한주먹 움켜쥐자, 은석은 그가 먹기 좋도록 가까운 쪽으로 밀어 놓는다.
“쟤는, 손을 왜 저기다 끼고 자, 사람 무섭게?”
“저게 왜 무서워요?”
“놀랐잖아. 범죄 현장 사체도 아니고…”
은석은 그제서야 잠깐 눈을 들어 소파를 본다. 두개의 커다란 쿠션 사이에 꼭 끼워져 힘없이 늘어진 손목...
“안떨어질라고 매달려 자나? 참, 별 걸 다 해.”
종태가 컴퓨터를 켜며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전에 얘기 했냐? 어느날 있잖아, 무지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우리 딸래미가, 지엄마 자는데 몰래 거실에 나와서 친구랑 문자를 하고 있었던거야. 아빠 오는 소리가 나니까 탁자 밑으로 후다닥 숨었는데, 나는, 딱 들어갔는데 애는 없고, 시커먼 머리카락만 기다란게 이만큼 탁자 밑으로 쭈욱 나와 있는 거야. 어우~, 내 심장이... 뭐 강도라도 당했나, 약을 먹었나 …. 아니면 다른 그런 거… 하도 흉악한 인간들이 많으니까, 놀라가지고.. 바로 한 걸음에 뛰어가서 탁자를 확 제꼈는데, 애가 기겁을 해가지고 소리를 꺄악~~”
은석이 웃는다.
“형수님한테 혼났겠네.”
“엄청 혼났지, 한 밤중에… 하나는 잠안자고 문자한다고 혼나고, 하나는 애 놀래킨다고 혼나고.. 하아... 그날 잘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계속 쿵쿵쿵쿵… 한잠도 못 잤어.”
종태의 눈이 다시 소파로 향한다. 커다란 소파 한 가운데에 훅 튀어나온 여자 손...
“저것도, 이렇게 다시 보면 별거 아닌데… 현장 밥을 너무 오래 먹었어. 내 눈에만 이상한게 보여. 예전에 있었던 사건들이랑 막 겹쳐니까, 어유, 아침부터... 정신병이 이러다 오는 거야.”
조용히 문이 열리고, 옆 팀 강진우가 살금살금 들어오다가 둘을 보고 환하게 웃는다. 아이같이 뽀얀 피부에 넘쳐 흐르도록 가득한 미소. 손에는 뜨거운 커피하나, 아이스 커피 하나를 들었다.
“일찍 오셨습니다? 좋은 아침?”
“진우! 언제 올라왔어? 너네집 안가고 왜? 나 보러왔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지율이 깨워주러 왔습니다. 늦게 자서, 혹시 못 일어날까봐...”
젊음이 좋다. 한참을 지방 갔었는데, 힘든 티가 하나도 안난다. 하긴, 차에서 이삼일 잠복을 해도 얼굴에 팩 붙이고 있는 놈이다.
“강지율 알어?”
“아까 복귀하다가, 불이 켜져있어서 들어와봤더니 일하고 있더라고요. 인사 하고, 얘기도 좀 하고.. 같이 찜질방가서 자자니까 싫다그래서, 제가 아침에 깨워준다 그랬어요.”
“커피는? 쟤 줄려고? 아침부터 얼음 동동 띄워서?”
“예, 차가운 거 좋아한대요. 형님들 벌써 와 계실 줄 몰랐죠, 저도 손이 두개 밖에 없고.. 그럼 이만, 하던 일 하겠습니다. 지율아, 노올자…“
종종거리며 소파를 반바퀴 돌아 자고있는 지율 옆에 걸터앉는다. 커피를 내려놓고 지율을 툭툭 건드린다.
“친구야, 눈 떠봐, 일어나야지?”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꼭 막둥이 깨우는 엄마같다. 종태가 끼어든다.
“누가 친구야? 걔가 너보다 어릴 껄?”
“친구하기로 했어요. 위아래 다섯살이야 친구죠, 물론! 은석이 형님 빼고!”
모니터 앞에서 혼자 바쁜 은석을 본다. 지율이 누운채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아이구, 잘했어요. 일어나서 커피 마셔야지.”
양팔로 잡아올리는 진우에 이끌려 겨우 바로 앉았다. 산발한 머리에 눈도 안뜨고 소파에 얼굴을 비비적댄다. 대신 머리카락을 치워주며 입술에 빨대를 물려주는 진우. 한번에 쭈욱 들이킨다.
“잠 좀 깼어?”
머리만 끄덕거리다가 간신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핀다. 종태와 은석을 보자 손을 들어 경례하는 척 한다. 어이없는 두사람. 반응이 없다.
“안되겠네, 여기… 지율아, 너 우리 팀 가자, 사람들이 말이야, 깨워주지도 않고, 인사도 안 받아주고.. 분위기 완전 별로인데?”
“너 그럴려고 커피 사왔어? 애 빼가려고?”
“아뇨, 빼갈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같이 뛸 일 많을텐데.. 손 꼭 잡고 범인 잡으러 갑니다... 지율이 아침 안먹어? 나갈까?”
슬리퍼를 끌며 일어난다.
“됐어, 출근 다 했어. 씻을께. 커피 고마워.”
“얼마든지. 야, 다음에는 찜질방 가자. 잠은 편하게 자야지, 골병 들어.”
안그래도 뻐근한 목과 어깨를 돌리며 캐비넷 앞으로 간다. 구깃해진 티셔츠를 벗어 책상 위로 툭 던진다. 나시 티 하나로는 다 가리지 못한 울긋불긋한 피멍. 잔뜩 부풀어 오른 살갗에 피가 비친다. 놀란 진우와 못마땅한 표정의 종태. 고개를 돌리는 은석. 지율이 자기 사물함 자물쇠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 뭐였더라… 몇번을 해도 안열린다. 짜증이다. 이마로 콩콩콩 철제 뚜껑을 두드린다.
종태가 한숨을 쉬고는 여기저기 책상을 뒤진다. 정리되지않아 지저분한 서랍 안에서 약을 찾아보지만, 다 썼거나, 오래되었거나.. 진작에 파손되었거나… 버릴 물건들 뿐이다. 옆자리 은석의 서랍을 연다. 슬쩍 옆으로 비켜 앉으며 다리를 치워준다. 뚜껑도 따지않은 새 물파스를 집어들었다. 손톱으로 랩 포장을 뜯는다. 노안이라 어디를 긁어낼지 잘 보이지가 않는다.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는 시환의 손에 약봉지 몇개가 들려있다.
“안녕하십니까? 어? 형 왔네? 어땠어?”
“어떻긴, 헛수고지. 둘 잡고 끝. 눈치 깠는지 안 나타나... 약이야?”
“어. 선배님꺼.. 뭐하세요? 안 열려요?”
종태가 겨우 깐 물파스를 다시 서랍에 던져넣고 쿵.. 닫아버린다.
“이거 번호가 뭐였죠? 어제 들었는데 잊어버렸어요.”
“제가 열어드릴께요.”
왼쪽오른쪽 두어번 돌리더니 철컥, 캐비넷을 열었다. 허무하게 웃는 지율의 상처를 보며 시환이 걱정한다.
“씻고 오세요, 어제보다 완전 더 심해요.”
“너 그래서 팬다야? 멍이 많이 들어서?”
진우가 묻는다. 순간 당황한 시환이 조용히 하라고 시킨다. 지율이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돌아선다.
“아니... 미친 팬다 얘기야? 어디서 들었어?”
“전에 시환이가 너 찾을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애가 그러더라. 거기서 악명 높은…”
“선배님, 얼른 갔다오세요. 팀장님 오시기 전에 약 좀 바르게..”
지율이 옷을 챙겨 나가고, 시환이 진우에게 투정을 부린다.
“아, 형!그걸 다 말하냐? 내가 꼭 선배 뒷조사 한 것 같잖아.”
“했잖아. 연락이 끊겼는데 찾을 수 없냐고, 그래서 그 동네 다 뒤졌잖아.”
“야, 야, 잠깐. 너네는 쟤, 전부터 알고 있었어? 필라델피아에서 왔대?”
종태가 묻는다. 은석도 관심이 있는지 잠시 일을 멈추고 바라본다.
“그냥, 별거 아니에요. 형 진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가지고.”
“야, 살인미소, 네가 나를 구박 할 짬밥은 아니지?”
“얘들이 진짜.. 살인 미소는 또 뭐야? 시환이가 아무때나 잘 웃기는 해도, 그정도는 아니지 않어?”
“연예인들의 그런 살인 미소가 아니구요, 얘 공식 별명이...”
“가, 빨리.. 출근 좀 해!”
시환이 진우를 밀어낸다.
“어쭈, 밀어? 손 댄다 이거지? 너 경찰 몸에 손대면 벌금이야, 경찰은 국민의 지팡이, 국가의 자산! 몰라?”
복도로 쫒겨난 진우가 장난스럽게 혼자 웃으며 문자를 하나 보낸다. 카톡… 종태와 은석이 동시에 전화기를 본다.
/류시환이요, 예전에 성동구 연쇄 살인 사건 브리핑하면서 실실 쪼개다가 청장님한테 디지게 까이고, 경찰대 학장님한테 불려가고.. 그다음부터 별명이 살인 미소에요. 살인사건 보면서 헤벌레 웃는다고/
종태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슬슬 시환을 약올린다.
“류시환, 너는 살인 사건 브리핑하면서도 웃냐?”
“아이, 진짜… 그건, 제가 좀 웃는 얼굴이라서... 그때는 막, 사람들이 저보고 경찰청 대변인 감 이라고, 말 잘한다고 특별히 추천까지 받아서 뽑힌건데, 연습도 진짜 많이 하고요,"
"그럼 잘 했어야지?"
"할때는 바짝 긴장해서 잘 했어요. 근데, 끝에, 자기들끼리 질문하고 싸우고… 높은 분들이 막 그러는 거 보고 저도 모르게, 좀 웃었나봐요. 그때는 그 사건이, 범인도 못 잡고 매스컴 타고, 엄청 커서.. 비상 대책 세운다고 간부들 다 모인건데.. 욕 엄청 먹고, 나중에 평가 점수 다 깎이고...”
“그래서 꼴찌 졸업했구나. 너 여기 올때까지 계속 밀렸다면서?”
“꼴찌는 아닙니다. 대기가 길어진 건.. 부상... 때문에 그랬구요.”
시환이 목 언저리를 머리카락으로 가린다. 귀를 지나 옷 속으로 내려가는 뚜렷한 흉터... 안보일리 없는데, 종태가 계속 얄밉게 군다.
“핑계대지마. 성적이 안좋으니까 발령이 안 나지. 그래서 과학 수사대 간거야? 경대 나와서 과수대 쫄따구로 가는 건, 아마 너 밖에 없지 않냐? 잘 하는 애들은 다 간부로 가잖아, 성적 순인데..”
”뭐, 경찰대는, 다 공부 잘해요? 전부 수석만 하나? 하여간, 드라마, 영화, 그거 다 말도 안되는 거에요. 뭐만 하면 수석이래. 주인공은 다 경찰대 수석, 하바드 수석, 서울대 수석… 의사는 죄다 존스 홉킨스 수석…”
“서울에 남으려면 그정도는 해야지. 우리 이석호 팀장도 수석에 차석에, 인기 많았다던데? 진우도 날렸다 그러고..”
“그런다고 월급 더 줘요? 다 똑같지. 그리고 경찰대 그거 꼴랑 몇명 되지도 않는거, 1등 못해본 사람이 어디있어?”
귀가 벌개진 시환.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는다.
“야, 너 딱 보니까, 철딱서니가 없어서 발령 못 받았다. 왜? 집에 누나 한 다섯명에 막내냐?”
“외아들이에요! 무녀독남 5대 독자! 뭐 보태준거 있어요?”
뜻밖의 큰 소리에 웃음을 터뜨리는 종태와 은석. 약 좀 올린다고 바르르 떠는 게, 클려면 한참 멀었다.
지율이 들어온다. 시환은 금새 밝아진 얼굴로 약 봉지를 집어든다. 여기저기 자세히 들여다 보며 대화를 한다. 자연스럽게 옷 속으로 손까지 넣고 등에 연고를 발라준다. 젖은 머리를 잡아들고 가만히 서 있는 지율.. 남은 약을 건네받아 보이는 데에 문지르고 옷을 추스린다. 그제서야 모니터로 눈을 돌리는 종태. 아무리 동료라고 해도 여자애를.. 못마땅하다. 이석호가 들어온다.
“일찍 오셨네요. 강 경위는 몸 좀 어때요?”
“좋습니다.”
기계적인 대답… 좋긴 뭐가 좋아, 온몸이 시커먼게 아플텐데.. 종태가 혼자 중얼거린다.
“간단하게 오늘 스케줄만 좀 보죠. 문형사님 차형사님은 전에 맡으셨던 일들 마무리 부탁드리구요, 끝나는대로, 넘어온 사건들 나누겠습니다.”
“거의 다 됬습니다. 별일 없으면 오늘 밤이면 충분합니다.”
차은석이 답한다. 석호가 그의 책상위에 수북히 쌓인 화일을 내려다 본다. 많지만, 은석이라면 다 할거다.
“문 형사님, 유학생 성매매 알선책 잡으신거요, 영장 나온거 보셨죠? 오전에 거주지 압수수색 갑니다. 상황 종료 하시고, 검찰로 바로 보고서 올려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 경위랑 류 경위는, 근처 순찰 돌면서 지리만 좀 익혀둬요. 수상하다고 그냥 뛰어들지 말고, 꼭 지원 요청 하라는 지시 있었습니다.”
“좋겠다, 쉽네. 우리 팀이 그렇게 일이 없나?”
문종태가 한마디 꼰다.
“서장님 뵙고 오는 길입니다. 징계는 아니고, 따로 전달 사항이 있을때까지, 다른 일 없이, 조용히 있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윗분들하고 이야기 중이시랍니다.”
“강지율, 좋은 서장 만난 줄 알어. 경찰이 그런 야바위를 까? 그것도 자기 부하라고 니편 들더라. 너 CCTV 앞에서 쇼하는 거, 잘 다듬어서 이쁜것만 골라가셨어. 위에다가 전부 다 보여주면 안된다고.. 똑바로해? 내가 지켜 볼거야.”
종태의 질책에 눈치보는 시환. 지율도 입을 꼭 다물고 고개만 까닥.. 한다.
“그럼 두 사람 순찰 중에, 청파 초등학교 앞에, 형제 고시원을 잠깐 들렀으면 합니다. 그 주변으로 동물 시체를 갖다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여러번 신고가 들어왔는데, 구체적인 인명 피해가 없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은석의 제안에 시환이 갸우뚱한다.
“그거는, 우리보다는 생활 안전이 맡을 일 아닌가요?”
“그랬었는데, 거기 방 얻어 사는 사람들이 다 외국인들이야. 혐오 범죄 아니냐고 자꾸 말이 나와서, 뭐 대충 둘러보는 척 하다가 별거 없으면 비자라도 확인 하고 오던지. 장사 못하게 하려고 옆집에서 장난 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인간관계도 좀 뒤져보구.”
종태의 말에 차은석이 보탠다.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두달 전에 다른 범죄 정황도 있었다고 합니다. 주방을 같이 쓰는데, 물컵에다가 살충제를 뿌려놨답니다. 두명이 실려가고, 위세척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종태가 나갈 준비를 한다. 가벼운 잠바 차림에 아까 찾은 물파스를 꺼내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피해자 둘 다 불체자였어. 신고를 못했으니까 수사 기록도 없고, 본인 확인도 안되서 사실 여부도 몰라. 그때 어디서 누가 그랬다더라, 소문들은 사람들이 옮기고 또 옮기고 하는 거지. 거기 두 분은, 할 일 없으니까 가서 얘기나 들어드려요. 주인이 60대 아주머니야. 어차피 외노자들 많은 동네니까, 나중에 일 생겼을때 필요할수도 있잖아. 알아둬서 나쁠거 없지.”
문을 나선다.
"그리고 일 할때는 말이야, 둘이..."
뒤돌아 두 사람을 바라본다. 적당한 말을 찾으려는 종태..
"딱 파트너만큼만 해. 이 직업은 있잖아, 신발 하나 꾸겨신어도, 껌 한조각만 씹고 다녀도 말이 나와. 알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