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강술래 3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2화. 강호방은 어디가고 저 달 뜬 줄 모르는가
2.5.3 탐문
"마지막 날이요...? 어떤 마지막 날 인지... 물어봐도 되요?"
시환이 조심스레 물었다. 처음 듣는 오빠 이야기... 그가 불러주었다는 노래... 그것도 마지막 날... 지율이 답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스피커 폰을 켠다. 이석호다.
"예, 팀장님, 말씀하세요."
"도착했어요? 제보가 하나 들어왔는데, 어제 오후 2시경에, 형제 고시원에서 약40여 미터 떨어진 골목에서 누가 고양이를 죽이는 걸 목격했답니다. 사체를 종이 가방에 담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으셨는데, 부인 되시는 분이, 고시원 사건 아니냐고, 신고 하라고 했답니다. 확인하시고, 주소 찍어드릴께 그쪽에도 잠깐 들러봐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해요."
고시원 앞에 도착했다. 석호가 보낸 영상을 확인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줌으로 한껏 당겨 찍은 1분 30초 가량의 짧은 영상은, 한 청년이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로 보이는 동물의 사체를 집어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작은 종이 가방 안으로 밀어 넣는다. 주변 땅바닥에 핏자국이 보인다. 맨손으로 죽였는지, 연신 바지에 손을 문지르며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고시원 주변을 살핀다. 아주 큰 길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진곳도 아니다. 새로 달았다는 CCTV가 보이고, 주민들끼리 주차 싸움이 있는지 핸드폰 번호를 남기라는 벽보가 여러장 붙어있다. 아랫층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고, 저 멀리 골목 끝으로 노점 트럭이 서 있을 뿐, 상가도, 공장도, 학원이나 술집도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주택가 입구의 낡은 2층 건물로, 일단 밖에서 보이는 수상한 점은 없다.
“어서오세요. 차 드시게요?”
카페 사장이 맞아준다. 연두색 앞치마로 화사하게 꾸민 중년 여자다. 비슷한 나이의 여자와 나란히 앉아 서로 메니큐어를 발라주고 있다. 줄 맞춰 꽂혀있는 잡지책, 조화가 담긴 꽃병, 많지는 않지만 몇 종류의 커피가 투명한 유리병에 쪼르르 담겨있다.
“경찰입니다. 말씀 좀 여쭐려구요.”
“아, 그래요? 난 또... 잠복 나왔어요?”
“예?”
“누구 잡으러 잠복나왔냐고, 둘이 연인인척 하고..”
“아니요, 그냥, 순찰 중입니다. 잡아가야되면 잡아가야죠.”
옆에 있던 여자가 거든다.
“우리 언니가, 경찰 드라마를 엄청 좋아해요. 멋있잖아…”
시환이 웃었다. 지율은 가게 안을 살핀다.
“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한거 물어봐요. 왜? 뭐 때문에 그래요?”
“윗층 고시원이요, 누가 동물 사체를 유기한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아유, 그거... 말도 말아요, 그렇게 신고를 해도, 그냥 와서 쓱 보고 아무것도 안해요. 쥐새끼, 개새끼, 고양이… 어디서 그렇게 잘도 주워 오는지, 내가 아주 가슴이 벌컥벌컥해.”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몸서리 친다. 원두가 아닌 커피 믹스를 찢는다. 금새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커피를 가져온다. 다른 곳을 살피는 지율을 대신해 시환이 두 컵 다 받아든다.
“잘 먹겠습니다. 카페 앞에도 버린 적 있나요?”
“딱 여기 앞은 아닌데, 바로 옆에 고시원 현관문이잖아요, 유리문. 거기랑 계량기 옆에도 있었고, 계단 한 가운데 보란듯이 펼쳐놓기도 하고… 그 옆으로 돌면, 쓰레기 모아두는 데 있어요. 거기가 제일 많이 그랬어... 그리고 예전에는, 고시원 간판인데, 왜 세모나게 펴서 땅에 세워두는 거 있잖아요, 그 안에다가 칼을 딱 꽂아가지고, 팔다리 쫙 벌려서 눕혀놨었대요. 아우, 내가 아주 기절하겠어. 그걸로 꿈까지 꾸고, 화장실 갈때도 겁나지, 일 끝나고 우리집 걸어가는 것도 무섭지... 한두번도 아니고, 벌써 일년이 넘어요.”
"혹시 어제나 오늘, 또 버리고 갔다는 얘기는 못 들으셨나요?"
"아뇨, 마지막이 아마 한 몇 주 됬을걸요? 한두달?"
시환이 꼼꼼히 노트에 적는다.
“특별히 사이가 안 좋은 분이나, 싸우거나.. 그런거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두 여자가 손을 호호 불며 메니큐어 상자를 정리한다. 카운터 안쪽의 수납장으로 집어 넣고, 깔끔한 테이블을 한번 더 닦는다. 커텐도 먼지 하나 날리지않고, 유리창은 매일 닦는지 반짝거린다.
“고시원 사장이 좀 냉랭해요. 말수도 없고.. 오래 봤어도 건물주고 세입자고 그렇지, 속얘기하는 사이는 아니에요. 어떻게보면, 그런 사람들이 더 남하고 웬수 질 일도 없을건데.. 가끔 보면, 딸은 꽤 자주 왔다갔다 하는데, 그래도 여기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그래야 친해지지, 눈도 안마주치고 쑤욱 지나가고 그래서,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재혼 하고 나서는, 자기는 거의 안 나오고 남편만 나와서 청소하고, 일 보고 그래요.”
“재혼은 언제 하셨어요?”
“몇년 되었을건데? 올라가봐요, 남편이 있을거에요. 터키 사람인데, 오래 살아서 한국말 잘해요. 방 얻었다가 친해져가지고 결혼했는데, 아유, 남자가 수염도 기르고 그래서 나이가 들어보이지, 사실은 한 스무살 차이 나요. 사람은 참 좋아. 아침마다 골목길 혼자 다 청소하고, 사람보면 인사도 할 줄 알고.."
"그 사람이 오고 나서는 손님들이 전부 외국 사람들로 바뀌었어요. 자기들끼리 소개시켜주고 그러는지.. 인제는 완전히 외국인 숙소죠, 뭐, 싸구려 여행자 숙소."
두 여자가 번갈아 답한다.
“거기 묵었던 사람들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으세요?”
“몇명 있긴 한데, 다들 떠나서.. 재작년쯤에, 확실하지는 않은데, 대층 인도 사람 같이 생긴 남자가 어린 애기를 데리고 들어와 살았어요. 애 엄마가 없어서 이상하다 싶어서 나도 유심히 봤었는데, 얼마 안있어서 주인 여자가 경찰에 신고를 한거야, 남의 애 유괴 했다고. 아니 나같애도, 돌도 안된 애기를 보통 엄마가 데리고 나오지, 아빠가 데리고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근데 그 남자가 나중에 나갈때 주인집이랑 엄청 싸웠어요. 다 때려부수고, 경찰 오고 아주 난리를 쳤어, 엉뚱한 사람 신고해서 피해봤다고, 물어내라고.”
“그게 언제쯤인지 기억하세요?”
“뭐 대충 겨울 끝무렵이었을거에요. 하긴, 그러고 좀 지나서부터 쥐새끼 죽은 게 한두개씩 던져져 있고 그랬었는데, 그때는 길고양이가 그랬는지, 그 사람이 그랬는지 몰랐지."
"그리고, 그때는 이럴게까지 오래 할 줄 몰랐죠. 신고 다 한거니까 찾아봐요, 기록 남죠?”
“그럼요, 저희가 찾아볼께요. 또, 뭐 다른 거 말씀해 주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니, 사실 그전에, 그건 훨씬 오래전인데, 어떤 필리핀 여자가 여기 오래 살다가, 옆방 살던 남자랑 눈맞아서 살림차려서 나갔는데, 근데 나갈때, 이방 저방에서 돈을 빌려다가 안 갚고, 그나마 낮에 아무도 없을때 문을 따고 들어가서 돈이랑 좋은 물건은 다 훔쳐갔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돈 없어서 고시원비 못낸다고, 좀 깎아달라, 늦춰달라, 주인집이랑 시끄러웠어. 결국 몇명은 돈 없어서 쫒겨나고.. 간다, 못간다, 싸움나서.. 사람 사는데 잖아요. 얘기거리야 엄청 많죠.”
다 마신 커피컵을 버린다. 손을 쑤욱 깊히 집어 넣어 쓰레기통 안쪽을 들여다 본다. 다른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걸로 보아 손님이 별로 없었나보다. 여기에서 장사가 될까? 월세가 비싸보이지는 않지만, 동네 장사만으로 남는게 있을까 궁금하다. 여자가 문쪽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근데 사실, 저 터키 남자도요, 주인 여자랑 결혼할때, 양다리였어. 같은 나라 여자였는데, 솔직히 부인일지도 모르잖아. 난 뭐라는지 못알아들으니까.. 근데, 그 여자 버리고 이 나이 많은 건물주 할머니랑 결혼을 한거지. 안그래도 돈 보고 했다고 말이 엄청 많았어요. 그쪽 여자가 몇번을 찾아오고, 뭐 크게 싸우고 그런 건 아니고, 여기 들어와서 둘이 말로 뭐라뭐라 하더라구요. 이쪽 테이블에 앉았었어요. 여자는 말하다, 울다... 다음에 또 와서 또 울고.. 그러다가 요새는 안 와요. 지네 나라로 갔는지..”
여자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찾는다.
“위층 살던 사람 중에, 지금은 수원에 사는 여자가 있는데 연락 해볼래요? 우리 카페에서 몇번 일도 하고 그랬는데, 여기 이 사람이에요. 애기 엄마인데, 세상에 남편 놈이, 맨밥하고 물만 주면서, 가둬놓고 일만 시켜서, 애기를 데리고 가출했어요.”
“그래, 맞아, 맞아.. 그 남자 여기 여러번 왔었지?"
"그랬지. 잘 숨어 있었는데, 그 놈이 어디서 듣고 잡으러 온거야... 애 뺏길까봐 바로 도망가서 지금까지 잘 숨어 있는 것 같애요. 동네 사람들 붙잡고 그 여자 어디있는지 말하라고 난리를 쳤었어요. 근데 그 인상이 왜, 꼭.. 사람 죽일 것 같은 얼굴 있잖아요, 왕년에 깡패같은..."
"내가 평생 본 사람 중에, 그 사람이 제일 무섭게 생겼어.”
여자가 보여주는 번호로 통화를 시도하지만, 받지 않는다. 모르는 번호라 그렇겠지 싶어 메세지를 남겼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카페 문을 나섰다. 스무 발자국 옆으로 고시원 올라가는 유리문… 따로 잠금 장치가 되어 있지는 않다. 말끔히 청소를 한 뒤라 동물 흔적은 없지만, 상상은 간다. 계량기, 쓰레기장, 계단… 이렇게 들어와서 여기다가 내려놨을거다... 시환이 입을 연다.
“이렇게 오래 가는 걸 보면, 원한 관계일텐데.. 누굴까요?”
“탐문 더 해보고, 거론된 사람들 현재 위치 파악해야죠. 최소한 작년부터 지금까지 장기간 국내에 있는 사람, 감정이 많이 상한 사람, 그리고 동물을 죽이고 만지고, 여기까지 들고 올 수 있을만큼 비위가 좋은 사람.”
“카페 사장님은 아닌거죠?”
“제 생각에는 아니에요. 복장이나 가게 상태로 봐서, 고시원이랑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어도, 그렇게 사이가 나빠 보이지도 않아요. 윌세를 잘 내는지 정도는 알아봐야겠지만, 저정도로 깔끔하면 쥐 죽은거 못 만져요.”
“…저도 못 만져요..”
시환의 농담에 지율이 미소짓는다. 왠지, 농담이 아닐것 같다..
2.5.4. 고시원
또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은 커피 믹스 두 잔. 해가 잘 들지않아 어두운 주방 식탁에 남편이라는 사람과 마주 앉았다. 좁은 곳이라 한눈에 다 들어온다. 세칸뿐인 수납장, 싱크, 씻어놓은 플라스틱 식기 몇 가지, 아마 저기에다가 살충제를 뿌렸겠지...
"원한 없어요. 전에 회사 사장, 월급 때문에 싸웠어요. 그런데, 나 여기 사는 거 몰라요. 사장이 돈 안줘서, 내가 화나서 테러하지, 사장이 나 테러 안해요."
"죄송하지만, 전에 여자 친구분도 여러번 왔었다고.."
"두번이요. 많이 아니고... 얘기 잘 하고 이별했어요. 지금 터키 살아요. 그 여자 아니에요. 이제 결혼해서, 페이스북 사진 있어요."
"누구, 짐작 가는 사람 있으세요?"
지율이 묻는다. 남자는 대답없이 고개를 흔든다. 정말 없는건지, 귀찮아서 없다고 하는 건지, 태도가 애매하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의심 안 해요?"
"진짜 아니에요. 여기 닫으면 갈 집 없어요. 여기, 좋아해요."
"혹시라도 동네 사람들 중에서, 외국인이 싫어서 시비 걸거나, 싸움 걸거나 하는 일은요?"
남자가 입을 다문다. 가만히 시환의 얼굴을 본다.
"그런 거는 항상, 매일, 있어요. 어느 거가 싸움, 어느 거가 매일, 잘 몰라요. 그래도 다친 사람, 죽은 사람, 없어요."
지율이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꼭 다치고 죽어야만 범죄인건 아니다. 처음으로, 남자에게 묻는다.
"주로 어떤 피해죠? 다른 사람 이야기도 괜찮아요. 얘기해 주세요."
"침 뱉고, 흙 던지고, 뒤에 따라 걸으면서 껌 붙이고.. 그런건 귀엽죠?"
한 남자가 주방으로 들어온다. 한국말이 유창하다.
"경찰이에요? 오랜만에 오셨네.. 저는 존 이에요. 존 바울..."
악수를 청하는데 술냄새가 확 풍긴다. 본인도 아는지 입을 가린다.
"죄송해요, 아직 이를 안 닦았어요. 해장 라면 하나 하고 샤워 할라고.."
남자가 전기 포트 버튼을 누르고 라면을 뜯는다. 앉을 의자가 없어 싱트에 기대어 섰다.
"나 여기 몇 달 살았는데, 사람들 많이 당해요. 나는 백인이고 미국 사람이라서, 별일 없어요. 그런데, 옆방 사람이, 편의점 앞에 걸어가는데, 와서 머리에다가 소주 부었어요. 또 다른 사람은 물건 산거 다 뺏기고, 자기 돈 주고 샀는데, 모르는 남자 세명이 소리를 지르면서 막 쫒아와서, 다 던져주고 도망왔어요. 툭하면 불법이라고 멱살 잡고, 베트콩, 베트콩 하면서 때리는 척 주먹으로 위협 해요."
시환이 놀란다.
"이 동네에서요? 신고 들어온 거 별로 없는데? 이태원이 가까워서, 다른 데 보다 외국인한테 친절한 줄 알았어요."
"돈 쓰는 사람들한테만, 관광객들한테만 친절해요. 쇼핑, 술집, 클럽 오는 손님들한테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아주 나빠요."
전기 포트에 물이 끓는다. 존이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시환이 살짝 주제를 바꿔본다.
"해장 라면이 그거에요? 브런치?"
"응, 이거는 용산 스타일! 에~~~ 오빤 용산 스타일!"
존이 익살스럽게 살찐 배를 흔들며 춤을 춘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나중에 경찰서 한번 와주실래요? 증언 필요하거나 그럴때.."
"그래요. 아마 사람들 많이는 못 갈거에요, 비자 없으면...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갈 수 있어요. 술 안 취했을때 불러요. 이 닦고 갈께요. 오케이? 픽 미, 픽 미, 픽 미 업!"
존이 라면을 들고 주방에서 나가고, 시환과 지율도 일어선다. 명함을 건넨다.
"어제 저녁에, 누가 고양이 죽이는 걸 본 사람이 있어요. 건물 주변 둘러보시다가 사체 발견하시면, 버리거나 치우지 마시고, 바로 연락 주세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장님하고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거든요. 전화 한번 부탁 드릴께요. 직접 오셔도 좋구요."
남자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오른다. 마지막으로 주위를 훑어보지만, 눈에 보이는 동물 사체는 없다.
"뭘까요, 어제 죽은 고양이? 아직 안 갖다 놓은 거 보면, 이 일과 상관없는 단순한 길고양이 학대이거나, 아니면,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여기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잠깐 숨었거나..?"
"우리 말고도, 지켜보는 카메라들이 많잖아요. 이 시간까지도 주차된 차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블랙박스도 있을거고... CCTV 달기 전 하고는 다르겠죠."
2.5.5 골목길
석호가 보낸 주소지에서 탐문 수사를 하는 두 사람. 주변을 살피다 길가쪽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카운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눈다. 물건을 정리하던 다른 알바생을 부르는 직원. 그를 유심히 훑어보는 지율. 왠일로 시환보다 먼저 질문을 던진다.
"어제 저녁 시간 손님 중에, 요만한 종이가방을 들고 온 사람 있었어요? 아니면, 평소하고 행동이 좀 달라 보였다던지?"
"모르겠는데요, 여긴 다 동네 사람들이라서.. 이상한 사람 별로 없어요."
알바생이 답한다. 요즘 아이들 머리 모양, 요즘 아이들 복장... 별다르지 않고 평범하다.
"근처에 중고등 학교가 없나봐요? 학생들이 별로 안보여요."
"멀어요. 버스로 한 20분?"
"손님 중에, 학생 또래들이 좀 있어요?"
"아뇨, 없어요. 어른들이나 외국 사람들은 많아요."
지율이 유리벽 밖을 내다 보는 척 하며 거울로 알바생을 살핀다.
"그렇구나..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들 학군 좋은데로 가나?"
"재개발 한다 그러면서, 분위기 나빠지고, 외국 사람들 많이 들어오고.. 그래서 이사 많이 나갔대요."
"아, 외국인들, 노동자들, 막 불법으로 들어오니까? 동네 많이 안 좋아졌대요?"
"잘은 모르겠어요. 여기 안 살아서.."
학생이 구체적인 답을 피한다.
"모르는데 고양이는 왜 죽였어요?"
"예?"
알바생만큼이나 시환도 놀란다.
"어제 낮에 고양이 죽였잖아요. 저기 보이는 3층 빌라들 사이 골목에서. 거기 사는 사람이 핸드폰으로 다 찍었어요. 몰랐죠? 오늘 신고 들어왔는데."
"저 아닌데요."
"사체 죽은거 아직 가지고 있어요? 잘 싸서 버려야지.. 우리가 먼저 찾으면, 거기서 DNA 나오는 거 알죠? 학생이 손댄거, 신발로 밟은 거, 침, 땀, 머리 비듬 한조각까지 다 증거에요. 큰 거 뒤집어 쓰지말고, 잘 숨겨요. 앞으로는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대답이 없다.
"학교 안 다니죠? 낮부터 일 열심히 하네. 힘들어서 짜증이 났을까? 왜 죄없는 고양이한테 화풀이지?"
"...."
"죽여서 뭐했어요? 형제 고시원에 던졌어요?"
"아니에요. 저 죽인적 없어요. 고시원에도 간 적 없구요."
"그거야 CCTV 보면 다 나와요.. 그 앞에서 몇번을 왔다갔다 했는지, 전부 다... 카메라 무서워서 못 던지고 망설였겠죠."
시선을 피한다.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를 죽인거면 시체는 놔두고 갔을 거에요. 종이 가방에 담아 갔다는 건,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는 거고.. 그 종이 가방도 미리 준비한거면, 계획 범죄네? 주인 있는 고양이라면, 재물손괴죄 추가.. 아직 미성년자라고 촉법 청소년이라 우기면, 형사 처벌은 면할거에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밖으로 나간다. 사장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
"이유야 어쨌든, 고시원에 던지지는 않았으니까, 이번은 그냥 넘어갈께요. 근데, 하나는 잘 기억하고 살아요. 세상에는 CCTV 보다 무서운 것들이 널 지켜봐요. 네 양심, 네 정신머리, 네 싸가지... 그런거 던져놓고 사람들이 겁먹으면, 네가 엄청 우월한 것 같애요? 따라 할 걸 따라해야지, 세상에 좋은거 많은데, 그딴 걸 흉내내요?"
아무 말도 없는 알바생. 지율이 한숨 한번 쉬고,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덧붙인다.
"그 사람들, 가족이 있어. 부모가 있고, 아이가 있고.. 너처럼 일하고, 돈 벌고.. 똑같애. 너랑 얼굴만 다른, 똑같은 사람이야. 네가 정말 잘났으면, 건들지마."
한숨 한번 쉬고 뒤돌아 나간다. 시환이 명함을 내민다.
"여기서 알바 오래오래 하면서, 이상한 사람 있으면 전화줘. 딱 너같은 사람 찾으면 돼. 약간 불안정해보이거나, 불쾌하게 땍땍 거리거나, 뭔가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는 사람..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한테 불만있는 사람.. 알았지? 잘 찾아봐. 넌 알아볼거야. 전화해?"
나가려던 시환이 다시 돌아선다.
"밥은 먹었어? 그런거 처음 죽이고 그러면 밥 잘 못 먹는데.. 어우, 막 토 나오지? 며칠 지나면 괜찮아져. 바나나 우유나 마시면서 버텨. 벌 받는 거야."
빠른 걸음으로 지율을 쫒는다. 벌써 차에 올랐다. 짜증이 나는지, 표정이 안 좋다. 시동을 건다.
"어떻게 아셨어요? 화질도 안좋고, 얼굴도 안보이는데?"
"찍었어요. 영상 속 에 바지가... 통이 좁고 딱 달라붙는, 저 나이때 애들이 입는 스키니진 이잖아요. 알바생 보니까 비슷한 나이에,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가방에 사체 넣는 손놀림도 서툴고, 장갑도 없이 맨손인데다가.. 자꾸 지 옷에다가 손을 닦길래, 많이 해본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기 입으로 그러잖아요, 이 동네에 고딩 없다고.. 그럼 본인 하나인거죠, 내가 찾는 사람이.. 50대 50으로 넘겨짚었는데, 애가 거짓말을 잘 못하네요. 시시하게.."
스키니 진...! 흐릿하게 찍힌 얼굴과 머리모양, 체형만 추측하려고 했지, 바지 스타일을 생각 못했다. 역시 현장 경력은 무시할수 없다. 지율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살짝 아쉽다. 알 수 있었는데.. 놓친거다.
"쟤는 모방이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네요. 아직은 용의자로 단정 지을 사람도 없고..."
"천천히 나오겠죠. 저쪽도 별로 급해 보이지가 않아요. 1년 반동안 띄엄띄엄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엄청나게 크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가까이에 맴돌면서 괴롭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세게 나가면 아마 바로 그만두고 사라질지도 몰라요."
"주변에 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그럴거에요. 사실,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왜요? 가까이에 있으면, 언젠가는 잡히지 않을까요?"
"피해 정도가 약해요. 이런 사건은 아마,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만 하게 될거에요."
"피해자가 범인의 구속을 원하지 않으면, 놔줘야 한다?"
"그렇겠죠."
전화가 울린다. 문종태다.
"아직 멀었어? 24시야. 얼마나 걸려?"
"아, 저희가... 거의 다 왔습니다...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안먹었지? 시켜놓는다. 빨리 와."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조심스레 묻는다.
"선배님, 24시 안 가보셨죠? 식당인데, 경찰서 사람들이 자주 가요. 같이 식사 하시고 들어가세요."
"...."
지율이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예스도 노도 아닌 어정쩡한 침묵..
"안그래도, 먼저 여쭈어 볼걸 그랬나 생각했는데, 문 형사님이 바로 끊으셔서.. 그리고, 어차피 이제 한팀이니까, 싫든좋든, 같이 먹을 일이 많을 거에요. 미리 말씀을 드려놓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옆에 붙어 있을께요. 괜찮죠?"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본다. 시환이 지율의 팔을 툭툭툭 다독이다 힘주어 꼭 잡는다.
'정말로 괜찮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누구보다도 문종태의 반응을 예상 못 하겠다. 또 얼마나 시비를 걸려나... 차는 어느새 속도를 줄이며 경찰서 건물이 보이는 뒷골목에 들어선다. 지율의 시야에 꽉 차도록 들어오는 부담스러운 간판 하나 - <이태원 24시>
긴장한 탓에 두 눈을 꼭 감아버리는 지율.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신다. 범인 쫒는 것 보다 이 순간이 더 힘들다.
"가요, 선배님. 사이다 시켜야죠."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