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강 술래 4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2화. 강호방은 어디가고 저 달 뜬 줄 모르는가
2.5.6 식당
"얼른 와 앉아, 이 맴버 모이기 진짜 힘들어. 있다가 순찰 갈 거 얘기 좀 하자."
한쪽 벽을 길게 차지한 두 팀 사람들. 이석호 팀장은 보이지 않고, 대신 문종태, 차은석, 그리고 강력팀 네명이 앉아있다. 단단한 체형에 습관적으로 계속 주변을 살피는 눈동자.. 배지를 빼면 솔직히 경찰인지 조직인지, 어쩌면 운동팀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오늘은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팀을 짜서 같이 한비퀴 돌아볼 예정이다. 상인들이 바빠지기 전에, 특별팀도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용산서에 처음 온 초짜들에게 베푸는, 강력팀의 선심이다.
"이리와! 여기 비었어."
점심치고는 많이 늦어 식당이 한산하다. 앉아있는 손님들 마저도 대부분은 경찰서 사람들이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진우가 옆자리를 가리키며 손짓한다. 재빨리 시환이 앉는다.
"너 말고 지율이 오라고."
무시한다. 재빨리 옆 테이블 찌개를 훔쳐본다.
"선배님, 이쪽에 앉으세요. 부대찌개 드시는 거 같은데, 우린 다른 거 시킬까요?"
인사는 했지만, 불편하다. 벌써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낌이 좋지않다. 시환의 맞은 편에 앉아 일행에게 약간 등을 돌리듯이, 삐딱하게 앉았다. 미리 주문해 놓은 찌개와 찬이 가득 놓여있는데, 똑바로 보지를 못한다. 시환도 이쪽저쪽 눈치보느라 불안해진다. 기름이 벌겋게 뜬 찌개와 배추 김치, 도라지 오이 무침, 어묵 조림, 마늘 장아찌... 그리고 오징어 젓갈 ... 시환이 반찬 그릇을 진우 쪽으로 밀고 수저통과 냅킨으로 가린다. 사장이 공기밥 두개를 가져온다.
"찌개 잘 끓었어요. 지금 막 불 껐는데, 시간 딱 맞춰 오셨네. 반찬 더 필요하면 얘기해요."
"사장님, 단무지 있죠? 사이다 두개하고요, 죄송한데, 혹시 계란 후라이 하나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젊은 형사님은 잘 먹어둬야돼."
사장님이 흔쾌히 허락하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단무지는 뭐하게,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너 그거 사장님 모독이야."
진우의 속닥거림에도꿋꿋하게, 공기밥의 반을 덜어 앞접시에 얇게 편다. 지율 앞으로 놓는다. 시환과 몇번이나 눈을 마주치며 망설이던 지율이 드디어 입을 연다.
"조팀장님, 선배님들,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먼저 말씀을 드리는게 나을 같아서요. 제가 섭식장애가 있습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먹고요, 이거저거 섞이거나, 뭐가 뭔지 안보이면 못 먹습니다. 밥 먹다가 토할때도 있구요.. 그래서 사실 지금까지, 남들하고 식사를 같이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혹시 불쾌하실까봐, 미리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왜? 먹으면 토해? 야, 그럼 병원을 가야지? 약 같은거 따로 먹어?"
"병원 다니는데, 의사가, 숨기지말고 다 얘기하래. 그래야 도움도 받고, 치료에도 진전있다고.."
"언제부터 그랬는데?"
진우가 묻는다. 국자 가득 찌개를 퍼올린다. 지율이 다른 곳을 본다...
"오래됐어... 어릴때부터... 한.. 15-6년?"
"15-6년? 그게 가능해?"
"요즘이 제일 잘 먹는 거야. 심할때는 그러다 죽는 줄 알았대."
긴장한 탓에 호흡이 자꾸 짧아진다. 다른 사람들이 앉은 쪽은 쳐다도 못보겠다. 둔한 침묵이 더 힘들다... 진우에게 말하듯, 최대한 편안하게 스스로 긴장을 풀어본다.
"오래 전에 사고가 있었어. 거의 20년 다 되어가. 많이 좋아졌는데, 음식물은 어떻게 잘 안돼네.. 어렸을때, 누가 냉장고에 뭐 이상한 걸 넣었어. 모르고 조금 먹고 나서, 좀 있다가 그, 그릇 안에 그게 남아 있는 걸 봤어..."
숨이 가쁘다. 잔뜩 몸을 비 틀고있는 소새지와 축늘어진 김치... 시환이 거든다.
"그래서, 내용물이 안보이면 못 드셔. 양념으로 덮혀있는거 못 먹고, 빨간 양념, 짜장...맨밥도, 지금처럼 이렇게 얇게 펴져있으면, 안에 이상한거 없다는 걸 확실히 아니까, 그런거는 좀 드시는데, 뭐든 수북히 쌓아놓으면 쳐다도 못봐. 그러다 배 많이 고프면 과자랑 사이다.. 단무지, 당근.. 그런거 먹고.."
진우가 좀 전에 시환이 덜어놓은 앞접시를 본다. 납작하게 깔린 하얀 밥이 다 식었다. 지율이 젓가락으로 밥풀 몇개를 집는다.
"진짜 많이 좋아진거야. 컵이나 그릇이 투명하면 좀 더 참을만하고.. 안이 안보이면 그것도.."
"너 그럼, 커피컵도 종이컵 못써서 아이스 먹는거야? 안에 다 보여서?"
"그런셈인데, 뜨거운 것도 투명한 컵으로는 괜찮아."
"야, 근데, 20년 전이면 엄청 어릴때네? 몇살이야? 열 몇살 되나? 초딩? 중딩?"
진우가 묻는다. 조팀장이 끼어든다.
"강 형사야, 너 생각보다 깡다구가 별로 없네? 임마, 그정도 지났으면 잊어야지. 맨날 죽은 놈, 죽인 놈 따라다니면서 더러운거 후벼파는 게 경찰인데, 어쩔려고 그러냐?"
"어릴때니까 트라우마가 더 심할 수도 있죠. 팀장님은 뭐 없어요? 진저리나게 싫은거, 무서운거.. 다들 하나씩은 있잖아요."
진우가 편을 든다. 조 팀장이 큰소리 친다.
"없어. 그런건 초짜 때 잠깐이지, 지금 몇년차인데.."
"어떻게 없어요? 뭐라도 있지... 나는 쓰레기 하치장 싫더라. 형들은 뭐 없어?"
"나는 차 트렁트, 아니면 지하실에 불 안켜지는 거."
"내가 수영을 엄청 좋아하는데, 왠만하면 밤에는 안 가. 호텔 수영장 이래도 밤에는..."
각자 자기 한마디씩 한다. 조용히 있던 문종태가 끼어든다.
"여행가방... 나는 그게 그렇게 싫어. 요즘은 왜들 자꾸 거기서 나오시는지. 그거 여는 거 싫어서 그 팀 그만 둔거야."
다들 웃는다. 종태가 정색한다.
"진짜라니까? 나는, 가족들하고 여행을 가도, 내 짐은 배낭에다가 따로 싸. 여행가방 절대 안 만져. 무서워서 못 열어. 야, 조상현 팀장님, 너 그런거 안열어 봤지? 경대 출신들이야 우리가 다 열어놓으면 나중에 쭐래쭐래 오잖아. 그러니까 그런걸 모르는 거야."
"왜 이래요, 형? 나도 쫄따구때는 현장 많이 나갔잖아요. 어쨌든 강형사는, 이젠 좀 참고 먹어봐. 뭐가 걱정이야? 여기 이렇게 든든한 오빠들이 한가득인데?"
진우가 당황하며 지율의 눈치를 본다.
"팀장님, 경찰이 무슨 오빠에요.. 그냥 친구지."
"친구는..? 내가 니 친구냐? 내 말은, 오빠라고 부르라는게 아니라, 다들 오빠, 형, 삼촌, 아빠... 뭐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거지. 믿고 의지하라고."
지율이 밥 몇알을 삼키며 답한다.
"저 오빠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해요. 좋은 기억이 없어요. 둘이 있었는데, 한명은, 하나도 안 친한데 계속 봐야되고... 또 한명은, 많이 친했는데 죽었어요."
"..."
아까보다 더 한 침묵... 진우가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친구하기로 했잖아, 처음 만난날... 그랬지? 오빠 아니기로.. 야, 더 먹어, 일해야지."
마침 단무지와 계란 후라이를 가져온 사장님. 지율이 사이다를 따서 바로 몇모금 마신다. 손끝이 차고 떨리는 것 같다.
"선배님, 괜찮아요?"
시환이 조용히 묻는다. 다른 쪽을 보는 척, 고개를 가로젓는 지율. 낯빛이 안좋다. 사이다 캔을 붙잡고 참아보려다 결국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고, 모두들 먹다말고 난감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왜?"
"그냥, 남이 먹는 것 보는 것도 안되나..? 쟤랑 밥 못먹겠네."
따라 나가려는 시환을 잡아 앉히는 사람들. 질문을 시작한다.
"놔둬, 놔둬. 다 컸는데 토하는것도 따라 다니냐?"
"근데 넌, 쟤 저런거 알고 있었어? 둘 다 용산이 첫 발령지 아냐?"
"여기 오기 전에 잠깐 경찰 학교에서 만났습니다."
"애들을 가르쳤다고?"
"예. 과수대에 있다가, 특별팀 생기면 과수대 업무까지 같이 한다 그래서 지원 먼저 해 놓고, 발령 기다리는 동안 잠깐 내려갔었습니다. 갑자기 티오가 나서 포렌직 수업을 몇 달 맡았는데, 그때 강지율 선배가 저보다 먼저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렇게 선배님, 선배님하면서 모시고 다니냐? 몇살 차이 안 날텐데 완전 상전이야."
"나이 차이가 아니라, 제가 선배한테 큰 신세를 져서, 은혜를 갚는 중입니다."
"은혜? 어떤 대단한 신세를 졌길래? 너 또 사고 쳤냐?"
"생명의 은인이에요, 지율이가... 야, 당연히 모셔야지. 나같으면 평생 밥도 떠먹인다. 한톨씩, 한톨씩.."
진우가 말을 막는다. 시환이 피식 웃는다.
"그만 하고, 식사들 하세요. 다 식었어요."
부르스타에 다시 불을 켠다. 탱탱 불어가던 라면을 건져내며 조팀장이 묻는다.
"쟤는 아까.. 사이다 먹었다고 토하는 거야?"
"아닐거에요. 사이다는 어렸을때, 그 이상한거 삼켰을때 누가 그랬대요. 사이다 마시면 뱃속에서 다 없어진다고.. 속아프고 힘든거 다 없어지는 것 같은, 일종의 안정제인것 같아요."
"그때 도데체 뭘 잘못 먹었는데? 넌 알지? 약물 같은거야?"
다들 시환을 본다. 말을 해야하나 망설이는 시환.
"그거는, 제가 이야기 하기가 좀... 본인이 알리고 싶어할지 잘 모르겠어서.."
댕댕댕댕... 종태가 남비를 두드린다.
"아우, 고만해. 밥 좀 먹자. 너 우리 애한테 관심 꺼!""
"먹어요, 형님. 밥 먹을건데, 우리도 알고 있어야 조심할거 아냐? 만약에 뭐 무지 놀란게 있는데, 우리가 걔 앞에서 그걸 시켜먹는다던가, 다 같이 먹으러 가자 그런다던가, 그러면 안돼잖아요. 지율이 생각해서 그러는거지. 류시환, 아는 거 있으면 다 풀어!"
시환이 진우를 보며 어떻할까 물어보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오히려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말하라고 부추기는 진우.
"말해봐, 나도 궁금해."
눈은 시환에게 고정시키고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는다. 국물을 뜬다.. 호오.. 불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게..사람... 손가락이요... 끝에 살점만 잘라낸 거.."
입술에 닿은 국물이 그대로 흘러내리는 진우. 다같이 멈춰버렸다.
"그게 반찬통에 들어있었대요, 어렸을때 혼자 밥 먹는데.."
"아이씨, 그러니까 너는 지금 그런걸 왜 물어봐? 밥맛 떨어지잖아!"
조 팀장에게 화를 내는 종태. 결국 집어 던지듯,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엉망이 된 분위기에 양 팀의 막내 진우와 시환이 당황한다.
"다들 밥 먹어! 찌개로 누룽지 만들거야?"
조 팀장의 타박에 어느때보다 무거운 식사가 다시 시작된다. 의자 등받이로 기대며 종태가 한숨을 쉰다.
"아, 진짜... 열살 짜리 밥그릇에 사람 손가락이면... 미칠만 하네."
"혹시 아까, 오빠 죽었다는 거랑 관련이 있어요?"
차은석이 묻는다.
"그거는 저도 아직.."
"설마... 에이, 아냐, 아니겠지. 만약 그게 오빠꺼였으면 정말 최악이고..."
조팀장이 중얼거린다. 문종태가 찬물 한컵을 집어든다. 크게 꿀꺽 한모금 삼키고 시환을 바라본다.
"멀쩡한 놈이 없어. 현장 경력 하나 없는 팀장은 맨날 외부 미팅 가느라 콧배기도 안보이고, 저 놈은 아무 때나 실실 쪼개다 진즉에 찍혔고, 분노 조절 못하는 또 한놈은... 이제보니 밥도 혼자 못 먹어. 하아... 좀 쉽게 일하자고 옮긴건데, 똥 밟았어. 안그러냐, 은석아?"
은석은 말없이 밥그릇을 비운다.종태가 물을 마저 마신다.
"잊고 있었다. 나머지 한놈은 말을 안해요...젠장."
2.5.7. 공용 화장실
같은 시간, 긴 복도 끝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향한다. 몇 걸음 앞인데 결국 못참고, 입안 가득 물고 있던 것들을 쏟아낸다. 한낮에 술취한 여자처럼 휘청거린다. 심한 위경련까지 합세해 허리도 똑바로 펴기 힘들다. 바지와 신발에 잔뜩 튀었다. 멀찌기 둘러서 피해가는 사람들... 혼자 또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하나뿐인 세면대에서 화장을 고치던 젊은 여자가 힐끔 쳐다본다. 변기에 제대로 토하려고 들어갔지만, 게워낼 것도 없다. 힘겨운 헛구역질 끝에 노란 위액을 뽑아낸다. 두어번 물을 더 내린다. 사이다 생각 뿐이다...
세면대 쪽으로 다가가니, 여자가 얼굴 찌푸리며 자리를 비켜준다. 시큼한 입을 헹군다. 혀로 구석구석 문지른다. 여전히 숨 쉴때마다 냄새가 올라온다. 뚝뚝 방울져 떨어지는 땀도 씻어낸다. 수건이 없어 셔츠를 집어올려 물기를 닦는다. 거울 속 화장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어린 시절, 그 날이 생각난다...
**** 회상 - 20년 전 1월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는 여자 아이. 소아 환자복을 입었다. 햇반을 데우고 김치와 김, 조개젓을 얹어 밥을 먹는다. 너무 조용한 집. 불도 안켜고, 그림자 내려진 거실 탁자에서 수저만 달그락 거린다. 젓갈통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만히 들어올린다. 왼손 검지손가락까지 동원해 잘 펼쳐서, 창문 쪽 햇살에 비추어 본다. 빨간 양념이 묻었지만, 눈에 보일만큼 선명한, 구불구불한 줄무늬... 아이가 불을 켠다. 싱크대에서 물에 살살 헹구어 다시 본다. 조심스럽게 지퍼백을 꺼내 집어 넣는다. 조개젓 통 뚜껑도 힘껏 닫는다. 지퍼백을 젓갈통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만 본다.
체했는지 가슴을 두드린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어수선한 광경... 바닥에 그려진 사람 형태 그림, 방문 앞에 붙은 노란색 경찰 테이프... 벽, 바닥, 가구 여기저기 잔뜩 뿜어진 핏자국... 그리고 그 피 묻은 발자국...
골목길을 걷는다. 젓갈통을 꼭 안고 걸어나왔다. 아는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 수퍼까지 온 아이.. 코트를 입었어도 추워서 파랗게 질렸다.
"아줌마,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
"응? 어머, 어머! 너 저 집 막내잖아! 괜찮니? 혼자 왔어?"
하이톤의 소리를 듣고 하나둘씩 주위로 모여드는 사럼들.
"얘가 그 ... 사건 난 집 애야?"
"어, 얘가 막내.. 아이구, 꼬마야, 누구 같이 있을 사람 없어? 혼자 다니면 어떻해. 병원에서 그냥 온거야? 집에 가볼려구?"
추울까봐 가게 안 담요를 가져다 아이를 감싼다. 아줌마의 눈가가 붉어진다. 여전히 무표정한 아이.
"핸드폰 잠깐만 빌려주세요. 지금 꼭 전화 할 데가 있어요."
"야 이 자식아, 너 말도 안하고 막 사라지면 어떻해?"
뒤에서 뛰어올라오는 젊은 남자. 하얀 입김을 가득 뿜으며 달려와 아이를 와락 껴안는다.
"누가 데려간 줄 알고 기절할뻔 했잖아. 잠깐 창밖에 본다더니 왜 여기를 와? 얼마나 찾았는데?"
"배고파서 밥 먹을라고.."
"아직 집에 못 들어가. 병원 가자. 데려다 줄께."
손을 잡아 당긴다. 버티는 아이.
"삼촌, 나 이상한 거 먹었어. 위세척 해야돼."
"네가 몇살인데 위 세척이야? 뭘 먹었는데...손에 든 건 뭐야?"
"할머니가 준 조개젓.. 이 안에 사람 지문이 있어."
남자가 통을 받아든다. 기겁하는 사람들....
"내가 몇개 삼킨 거 같애. 지금 토하면 다시 찾을수 있나? 삼촌들이 그랬잖아. 그놈 지문이 다 짤려나가고 없다고.. 그 사람이, 여기다가 숨겨놨었나봐."
아이를 평상에 앉히고 젓갈통을 열어 살핀다. 아이가 주머니에서 지퍼백을 건넨다. 조그만 덩어리... 표정이 굳어버리는 남자.
"그건 내가 물에 씻었어. 자세히 볼라구.. 몇개는 안에 더 있을거야. 모자라는 건 아마 내가 삼킨거고.."
"아니야, 이거 지문 아니야. 젓갈 담으시다가 뭐 다른게 들어간거야."
안심하는 사람들.. 남자가 지퍼백을 주머니 안에 넣는다.
"이거보고 놀란거야? 에이, 사람 손끝이 이렇게 안생겼어. 그건 삼촌이 잘 알잖아. 토 안해도 돼.. 왜? 속이 안좋은것 같애? 사이다 하나 사줄까?"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 따뜻한 가게 안에서 사이다를 마신다.
"아빠한테 비밀이다. 병원에서 혼자 걸어온거, 집 안에 들어간거, 내가 사이다 사준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괜히 생각하지도 말고 .. 진짜, 정말, 절대 없었던 일이야.. 알았지?"
"응."
"사이다가 있잖아, 뱃속에서 뽀글뽀글하잖아, 이게 나쁜거, 이상한거, 불편한거 다 없애주느라 그래. 삼촌도, 속 아프고, 화나고, 슬프면, 이거 마셔. 한번에 싹 다 좋아지거든. 머리속, 뱃속, 마음속... 전부 다 깨끗해지는 거야..."
남자의 자켓 속에 들어 앉은 아이... 그 눈에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꼭 멀리 숨겨 들고 있는 젓갈통. 남자가 애쓰는 걸 아는 듯, 아이는 못본척 하기로 했다. 혼자 입술을 물고, 주먹만 쥐었다 폈다... 불편한 속을 다스려본다...
*****
다시 세면대 거울 앞.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생각에 잠긴 지율.
"저기요, 거울 다 쓰셨어요?"
여자가 묻는다.
"아, 예, 죄송합니다. 쓰세요."
물을 닦아 축축한 셔츠를 손으로 펄럭거리며 복도를 걷는다. 식당 쪽으로 꺾어지려는 순간, 가볍게 뛰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 꾹 눌러쓴 모자 위로 한겹 더 뒤집어 쓴 모자티.. 다른 사람들을 피하려는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걷는다. 지율은 재빨리 천장과 벽을 살폈다. CCTV가 높이 달려있어 얼굴은 하나도 못 찍는다.. 옆을 스쳐 화장실 방향으로 직진한다. 좋은 일을 상상하는지, 슬쩍 웃고 있다... 저벅저벅저벅.. 철커덕.. 쿵.. 멀리서 화장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린다.. 그 여자... 혹시 아까 그 여자가 나오는 소리일까 잠시 기다려본다... 여자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따라 들어간 지율이 철문을 벌컥 열었다. 혼자 있던 여자가 깜짝 놀란다. 누구와 전화 중이었나보다. 다행이다... 소변기 쪽에는 아무도 없다. 좌변기가 놓여있는 두 칸 중 하나가 잠겨있다. 남자를 찾았다... 여자가 짜증 난 얼굴로 가방을 챙겨들고 나간다.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나서야 지율도 귀를 기울여본다. 화장실 볼일이 있는 사람 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소리를 죽이고, 열려있는 옆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칸막이 사이 사이와 위 아래까지 꼼곰히 살핀다. 핸드폰이 들어 올 틈은 없다. 변기 속까지 다 들여다 봐도 카메라가 없다.. 시환에게 보낼 문자를 친다..
'1층 공용 화장실 몰카범 추정 남..'
순간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곳처럼 길쭉한 꼬챙이가 이미 문틈으로 들어와있다. 놈은 정확히 걸쇠 위치를 알고 있었다. 서서히.. 걸쇠를 들어 올린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