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강술래 5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2화. 강호방은 어디가고 저 달 뜬 줄 모르는가
2.5.7 공용 화장실
(강강술래 4편에서 계속)
... 송곳처럼 길쭉한 꼬챙이가 이미 문틈으로 들어와있다. 놈은 정확히 걸쇠 위치를 알고 있었다. 서서히.. 걸쇠를 들어 올린다...
찰칵 ... 사진을 찍었다. 꼬챙이가 멈춘다. 찰칵... 한장 더 찍었다. 남자가 피식 웃는다...
"너 지금 뭐하냐? 강도강간 기념 촬영하냐?"
강도 강간... 분명 지 입으로 말했다. 한두번 해 본 놈이 아니다. 멈췄던 칼날이 갑자기 움직인다. 걸쇠가 확 올라가는 걸 본능적으로 내리 눌렀다. 걸쇠를 사이에 두고, 위에는 핸드폰, 아래는 쇠꼬챙이... 놈이 또 웃는다..
"어쭈? 빠른데? 버티려고? 소용없어, 너 벌써 무섭잖아. 오돌오돌 떨고 있을건데 왜 개겨? 순순히 나와..."
... 너 거기 있는거, 아저씨는 다 알아. 그만 숨고 나와...
오래전 그 놈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피묻은 과도를 들이밀며 다락방 문을 열려던 중년 남자... 온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저쪽에 들리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때는 놈을 놔주었지만, 너는 그냥 보내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놈을, 잡을 차례다.. 지율은 변기위에 전화기를 내려놓고, 옆 공간으로 바짝 이동해 문과의 거리를 최대한으로 넓힌다. 기다린다...
.. 다 끝났어, 새끼야... 내 눈에 띄었으니 넌 죽은거야..
한때 저주였던 그 말을, 수천번을 되뇌어 온 그놈의 마지막 말을 이제는 주문처럼, 식전 애국가처럼, 반복한다... 쫒는다, 잡는다, 너는 끝난다...
콰쾅...
지율과 그 놈, 둘 다가 바라던 대로 걸쇠가 힘없이 올라가고, 문이 열린다. 가녀린 여자의 비명을 기대했던 놈의 바램과는 달리, 체중을 한가득 실은 발차기로 문을 걷어찬다. 무방비로 문짝에 맞은 놈이 바닥으로 나뒹군다. 저멀리로 놓쳐버린 흉기부터 싱크대로 던진다. 놈이 일어서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주먹과 발길질을 퍼붓는다. 간신히 기어서 도망가는 놈을 잡아 소변기에 머리를 세차게 들이박는다. 한번, 두번, 세번...
퍽...
소변기에 금이 가고 나서야 멈춘다. 바닥에 누은 놈과 눈을 마주본다. 무기가 하나 더 있는지 슬금슬금 손을 옷 속으로 가져간다. 발로 꾸욱 밟아버린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느낌... 혹은 갈비뼈... 지율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여러차례, 있는 힘껏 놈을 밟는다. 올라앉아 주먹을 날린다.
들린다, 보인다... 오래전 그 놈의 눈, 국방색 우비, 손에 꼭 쥐고 있던 쪽지... 문 잠궈. 절대로 나오지 마. 불도 키면 안돼. 신고했으니까 아무 소리 내지말고 기다려... 침대가 흔들리도록 내려찍는 칼날에도 아무 반응 없이 누워만 있던 오빠, 거실에 놓여있던 검정색 바디백... 양말 바닥부터 젖어들던 진득한 피와, 경찰차... 한참 뒤에서야 나타난 아버지...
"아빠야, 아빠 왔어..."
아빠다... 그제야 주먹을 멈춘다. 놈은 이미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지율의 몸에도 온통 피가 튀었다. 땀과 섞여 흘러 내린다. 손바닥으로 눈 주위를 한번 쓱 닦고, 놈의 옷을 뒤진다. 윗주머니에서 공업용 커터칼이 하나 나온다. 역시나, 손이 닿지않도록 싱크대 위로 던져놓고 놈을 일으켜 끌고 나온다. 마침 화장실 쪽으로 걸어오던 남자가 걸음을 멈춘다. 한명, 두명, 지나가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상가 복도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진다.
"화장실 사용 못하십니다. 2층 가세요..."
차라리 격투가 낫지, 자기보다 무거운 젊은 남자를 끌고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놈을 바닥에 눕혀두고 지원을 요청하려 핸드폰을 찾는다. 변기 위에 올려 두고 왔다.... 잠깐 한 숨 돌리고 일어나 다시 화장실로 향한다. 겨우 두세 걸음 옮겼을까, 종아리에 예리한 통증이 온다. 놈이다... 찔렸다...
"꺄아악~~"
2.5.8. 힌트
말 한마디 하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히 식사를 마무리 하는 팀원들. 모두의 핸드폰에 동시에 신고 문자가 뜬다.
/원효로 용산 경찰서 뒤편, 한영 빌딩 1층 화장실 폭행 혹은 강도로 의심됨, 2명 중상, 흉기소지 주의바람/
"뭐야? 여기잖아?"
"강지율이 안들어왔지?"
문종태가 가게 안을 둘러본다. 사태를 파악한 듯 전속력으로 튀어나가는 시환.
"지율이 막어!"
뒤따라가는 차은석과 진우에게 종태가 소리친다. 막 나가려는 동료들을 멈춰 세운다.
"정환이는 출동했다고 알리고, 건물 입구 막아. 박 형사는 구급차 부르고, 민규, 사람들 내보내."
"구급차요? 부상자 확인을 먼저 해야.."
"그때는 영구차가 불러야돼."
조팀장과 함께 식당을 나서는 종태. 문 앞까지 사람들이 모여있다.
"경찰입니다, 나가세요. 출입구 봉쇄합니다, 건물 밖으로 나가주세요.."
은석이 보인다. 무전기를 들고 있다. 종태와 눈이 마주친다. 정면으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사건 종료, 원효로 한영 빌딩 폭행 사건, 종료합니다. 흉기 소지 20대 남자, 현장에서 검거 했습니다. 구급차 지원 바랍니다. 부상자 두명, 병원으로 속히 이송 바랍니다..."
종태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다. 머리카락을 잡고 기쁜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수없는 신음소리를 낸다. 은석의 발 아래에는, 피범벅이 된 남자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수갑을 차고 누워있다. 헐떡헐떡 숨은 잘 쉬는 걸 보니 아직은 살아있나 보다. 화장실에서부터 바닥으로 질질 끌려나온듯한 핏자국... 그 옆에, 역시 지친 지율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진우가 셔츠로 다리를 지혈하고 있다.
"찔렸어?"
조 팀장이 물었다.
"꽂혀있다가 지금 막 뺐습니다. 큰 부상은 피한 것 같은데, 깊이가 꽤 됩니다."
진우가 바닥에 내려놨던 송곳을 들어 보여준다. 3-4센치 이상 피가 묻어있다.
"약은?"
"류 형사가 가지러 갔습니다."
문종태가 남자 쪽을 다시 한번 보고, 지율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대고 앉는다. 왠일로 화를 내지않고, 한참 누그러진 말투다.
"2타석 2홈런... 이틀 연짱 대박을 치는구나."
"2명 쫒아서 2명 잡았으니까, 검거율 백프로 잖아요. 좋은거죠? 그것도 하루에 한놈씩..."
"우리 아직 팀 인원도 다 안꾸려졌어. 누구 짤리거나 문제 생기면, 시작도 못해보고 해체 될거야. 살살 하랬지? 다른 사람들도 많아, 니가 다 안잡아도 돼."
"그게 이유에요? 내가 범인 잡는게 싫어요?"
종태가 가만히 지율을 본다. 얼굴이 엉망이다. 진우가 누르고 있는 셔츠 자락을 당겨 대충 닦아준다. 눈만 감았다 떴다 하며 얌전히 있는 지율. 닦아도 흉하다...
"저런 놈 만나면, 지원 요청하라 그랬지? 이런거 찔리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소리를 지르라고... 도와달라고, 저 놈 잡으라고... 오늘 아니면 내일 잡으면 되고, 저정도 패 놨으면 멀리 도망도 못가잖아. 왜 꼭 니 몸 다칠때까지 붙잡고 늘어져? 여자애가 겁도 없냐?"
"경찰이니까."
지율이 답한다.
"경찰이니까, 경찰이 잡아야지, 누구한테 저놈 잡아주세요, 그래요? 내가 봤으니까, 내가 잡는거고, 오늘 봤으니까 오늘 잡는 거고... 내일 같은거 없어요. 옛날에 한번,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앉아서 보내줬는데,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다 되도록 못 잡았어요. 삼촌이 말려도, 난 내 방식대로 해요."
"언제부터 내가 니 삼촌이냐?"
지율이 종태를 바라본다. 배시시 웃는다.
"삼촌, 오빠, 아빠... 믿고 의지하라잖아요. 왜요? 싫어요? 남들처럼 형님, 할까요? 이상할껄?"
"많이 이상하지... 둘 다 이상해... 니가 제일 이상해.. 너 같이 큰 조카가 없어봐서... 몇살이냐?"
지율이 뭔가 생각난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답한다.
"... 열, 스물 하나."
종태가 웃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통달했다.
"열, 스물 하나... 오랜만에 듣네... 찔린데는? 아프지? 걸을수 있어?"
시환이 뛰어온다. 구급 약품과 과수대 키트를 가지고 왔다. 종태가 약품 통을 받아든다.
"내가 할께. 류 형사는 저놈 혈흔이랑 증거 될만한거 다 수집하고, 미성년자일수도 있으니까 지금 정신 없을때 지문 열개 몽땅 떠. 서에 돌아가면, 주변에 미제 사건들하고 맞춰봐. 다 밝혀야돼. 알지?"
"알겠습니다. 선배님, 괜찮은거죠?"
"빵꾸 하나 더 났어요. 걱정말아요. 거기 화장실 싱크에, 칼인지 송곳인지, 두개 던져 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좀있다 사무실에서 뵈요."
시환이 누워있는 놈의 옆으로 가 지문 채취 키트를 꺼낸다. 은석이 돕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종태.
"흉기를 세개나 가지고 있었다? 많이 해 본 놈이네."
구급 약통을 열고 소독약을 꺼낸다. 거즈에 콸콸 부어 상처에 댄다.
"아.. 프다.... 방심하다 찔렸어요. 두개 뺏었으니까 인제 없겠지 했는데.."
"상처가 깊다. 병원가서 제대로 치료하고, 파상풍 주사 맞을때 됬으면 그것도 다시 맞고 와."
진우에게 거즈를 맡기고 일어선다. 지율이 묻는다.
"삼촌 딸 이뻐요?"
종태와 진우, 둘 다 어이없는 얼굴로 지율을 본다.
"우리 딸? 지금? 이 난리통에, 내 딸 이쁘냐고?"
"형사는 예쁜 여자랑 결혼 한대요. 사모님이 이쁘면, 딸도 이쁘겠지? 삼촌 닮았으면 꽝이고.."
"사모님 진짜 미인이야. 요 앞에 종합 병원 간호사."
진우가 거든다.
"오호, 딸래미는 흙먼지 안묻히고 살겠네. 학교 맨날 업어다 주고?"
"누가 그렇게 키우냐, 버릇 나빠지게.. 마음은 다 공주로 키우고 싶지만... 강지율, 잘은 모르겠지만, 너희 부모님도 그런 마음이실거야. 최소한, 몸이라도 안다치게, 적당히, 살살 좀 하자, 응?"
입구가 시끄러워진다.
"야, 정신없다. 119 왔으니까, 진우가 데리고 가서 진료 받아. 쟤 헛소리 하는 거 보니까, 혈압 떨어지나보다."
종태가 돌아선다. 수갑 찬 채로 들것에 실려 나가는 그 놈, 따라 나가는 강력팀 박형사, 조 팀장과 소곤소곤 의논하는 종태를 보며, 지율도 일어선다.
"사람이 말이야... 머리가 나쁘면 눈썰미라도 있어야지."
"누구? 문 형사님?"
"힌트를 그렇게 많이 주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네."
"뭔 소리야?"
"그런게 있어."
진우의 어깨를 잡고 한발로 깡총깡총 뛰어 구급차에 오른다.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된 은석. 종태와 지율을 번갈아 바라본다.
2.5.9. 영상
병원놀이하는 여자 아이와 남자.
"아픈 사람은 삼촌이 할게, 너는 의사만 해. 우리 공주님는 다치면 안돼."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나중에 삼촌도 너같은 딸 낳을거다? 먼지 하나도 안묻히고 업어서 키울거야. 똑똑하고, 예쁘고... 많이 웃게 해주고 싶어."
"남자애면 어떻해? 공주 못하는데?"
"아냐, 분명히 예쁜 공주님이야. 형사는, 예쁜 언니랑 결혼하거든. 딸 하나만 낳아서, 셋이 좋은데 많이 놀러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거야."
"삼촌 몇살에 결혼해?"
"모르지. 지금이 열 스물 한살 이니까, 5년만 더 있다가, 열 스물 여섯에 할까?"
햇빛 잘 드는 작은 집 창가. 벗어놓은 겉옷에 새겨진 이름표.
<순경 문종태>